[Review] 가늘고 길게 역사를 지배하다 - 총보다 강한 실

글 입력 2020.03.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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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의 시발점은 여러 문제에 대한 반성이었다. 심적인 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독서를 미룬 점, 독서 취향이 문학에만 집중된 점… 결정적으로 4년 전에 산 <총, 균, 쇠>를 여태 읽지 않고 있다는 점. 당시 <총, 균, 쇠>는 서울대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빌린 책이라며 한창 미디어에서 많이 언급되었다. 여러 독서 팟캐스트에서도 다루기에 주류에 편승하려 과감히 샀지만, 몇 쪽 읽고는 곧바로 책장에 꽂았다. 그렇게 꽂힌 책은 지금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정 시대, 특성 계급의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선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고 싶다는 갈증은 있었지만, <총, 균, 쇠>의 엄청난 분량과 내 모자란 식견 때문에 나의 갈증은 채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총보다 강하게, 균보다 끈질기게, 쇠보다 오래 인간의 역사를 움직여온 ‘실’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총, 균, 쇠>가 채워주지 못한 갈증이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일지라도 결은 같을 것 같았다. 이 독서는 책장에 꽂힌 책을 다시 꺼내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충분히 뉘우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총, 균, 쇠>로 해소하지 못한 (않은) 갈증이 해소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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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삶에 집중하는 그 잠깐을 좋아한다. 비문학은 딱딱하고 학문적인 얘기만 들어있다는, 사람 냄새는 문학만 풍길 수 있다는 편견으로 문학 위주의 독서만 해왔다. <총보다 강한 실>을 읽으면서 그 편견을 타파하게 되었다. 비문학에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가상의 한 명이 아닌 현실에 있는 우리 모두였다.

 

책은 ‘실’을 중심으로 이집트 미라 얘기부터 중국 비단길을 거쳐 중세 유럽까지 시대와 대륙을 넘나드는 역사를 전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정말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실감했다. 실과 관련해서 여러 실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그보다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부분들이 훨씬 재밌었다. 역사적으로 이 수많은 사람이 ‘실’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스러웠다. 실이 인류의 역사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니. 실은 서로 다른 나라의 외교와 무역을 이끌기도 하고, 옷으로 탄생해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 곳곳이 실로 가득했지만, 그만큼 만만하고 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가늘다는 특성은 곧 약하다는 편견으로 이어졌다. 실은 가늘지만 약하지 않았다. 일상 곳곳에 있을 만큼 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실을 통해 흘러갔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총, 균, 쇠>를 여태 읽지 않았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총, 균, 쇠와 실이 어떻게 다른 결을 지녔는지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총, 균, 쇠 모두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순식간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 척 봐도 나약해 보이고 빠르게 파급력을 자랑하지도 못한다.

 

가늘고 긴 모양새는 실이 역사를 지배했던 방법 자체로 보인다. 주변에서 흔히 ‘가늘고 길게’보다 ‘짧고 굵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굵게 사는 것일까? 그들은 입을 모아 꿈을 이루는 삶, 화려한 명성을 누리는 삶,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삶 등이 굵게 산 삶이라고 한다. 그러나 총, 균, 쇠와 같이 짧고 굵은 존재는 그에 따른 부작용도 갖는다. 그것은 바로 파괴력이다. 그들이 역사를 지배한 방법은 다른 누군가를 파괴하며 이기면서 살아남은 것이었다. 화려하지도, 파괴력도 없는 실은 인류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아닌 한 발자국 멀리 선 위치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책을 읽으면서 실이 페미니즘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옷이 신분을 상징하는 요소라는 부분을 읽을 때, 특히 노예의 특징 중 그들이 입는 옷에 집중했다는 부분에서 ‘탈코르셋’ 운동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여성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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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패션을 선보이는 온라인 의류 브랜드 <퓨즈 서울>

 


나는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후드티와 청바지를 교복처럼 매일 입는다. 코르셋을 타파한다는 명목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이게 편해서다. 나는 원래부터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자 모두가 꾸미기에 잠시 따라 해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거울을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예뻐 보일까.’를 고민했다.

 

유행에 따라 예뻐 보이기 위해 산 옷들을 모두 버리고 편한 옷들만 남겼다. 옷장에 옷들이 확 줄었다. 얼마 없는 옷을 돌려 입으며 생활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편한 것도 좋지만, 예쁘게 꾸미고 나가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준비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편안함이 더해질 뿐이었다.

 

꾸미는 건 개인 만족이지 그게 무슨 코르셋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꾸미는 게 편한 사람한테 굳이 나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고작 덜 치장하는 게 무슨 의미냐는 의견엔 동의할 수 없다. 예뻐 보이기 위해 옷을 입은 나와 편하기 위해 옷을 입은 나는 겉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이 사실은 명확하다.

 

‘탈코르셋’ 운동은 총, 균, 쇠처럼 순식간에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실처럼 가늘고 길게, 서서히 여성들의 삶과 사회의 인식을 바꾼다. 나는 짧고 굵은 충격으로 바뀐 세상보다 가늘고 긴 영향력으로 바뀐 세상이 훨씬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총보다 실이 더 강한 것처럼 말이다.

 

*PS : 이젠 정말 <총, 균, 쇠>를 읽어야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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