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컬트 장르가 뭔지도 모르면서 봤더라? ① [TV/드라마]

한국에는 원래 엑소시스트가 없었다
글 입력 2020.03.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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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르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로맨스식 박진감에는 내성이 생긴터라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오컬트’라고 홍보하는 미디어들이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우선 시청자가 되고 봤다. 퇴마영화가 오컬트인줄만 알았는데 요즘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것만도 아닌 것 같고, 결론은 아직도 오컬트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더라! 그래서 찾아봤다.


공포라는 장르는 너무 좁았다. 순정만화, 로맨틱 코미디, 로맨스, 사랑 이야기는 인류의 오랜 관심사였던 만큼 갈래가 세분화되어 있다. 귀신이 인간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시대는 한물 간 지 오래다. 인간이 귀신에 빙의되기도 하고, 퇴마의식을 치루기도 하며, 귀신을 이용하기도 하는 이른바 ‘오컬트(occultism)’ 장르가 자리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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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오컬트(occultism)는 일반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을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pmg 지식엔진연구소. 2020). ‘귀신’이라는 소재 자체가 오컬티즘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귀신(鬼神)은 좁은 뜻으로는 죽은 이의 넋이지만,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신이다.

이러한 정의도 참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사람에게나 오컬트 장르가 세분화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판타지 정도일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어려우니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 장르에 대해 약간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융합


오컬트 장르의 미쳐있는 한 사람의 내공을 발휘해보며, 한국의 공포영화를 4가지,융합, 퇴마, 전쟁, 사이비로 구분해보고자 한다. 영상 문화는 해외에서 한국에 유입된 형식이기 때문에 유행하는 양식도 공유하고 있다.

즉 다양한 종류의 귀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고전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는 익히 구미호, 저승사자, 도깨비 등을 고루 이용했다. 문화교차가 일어나면서 샤머니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소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
한국형 엑소시즘

오컬트 유행의 시초이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2015)>. 물론 이전에도 한국에서 카톨릭의 퇴마 소재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생소했던 소재로 신인감독상과 백상에서 여자신인연기상, 청룡영화상에서도 여우조연상 등을 휩쓸어버린 배우 박소담의 빙의 연기는 오컬트 장르를 메이저에 올려 놓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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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사제들>

 


<검은 사제들>이 후한 평을 받은 이유에는 융합하기 힘든 ‘한국’과 ‘엑소시즘’을 버무렸음에도 어색함 없이 몰입하게 하기 때문이다.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 기존에도 많이 이용하던 형사물의 플롯을 이용해 사건을 풀었고, 연기력과 티켓파워가 보장된 김윤석과 강동원 배우를 포진해 놓기도 했다. 한국 샤머니즘에서 많이 이용하는 돼지를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 드라마가 한국적 소재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편견을 깼다.

영화 <엑소시스트>는 1973년에 개봉한 전형적인 서구 오컬트의 클래식 작품이다. 고전은 항상 돌아오기 마련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며 생산된 이 새로운 한국식 엑소시즘의 고전이 된 <검은 사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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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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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좀비

최근 시즌 2까지 넷플릭스에서 승승장구 중인 <킹덤> 시리즈가 융합 부분에서 빠질 수 없다. <킹덤>은 <검은 사제들>보다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옛 모습과 왕정에 좀비라는 소재를 대야에 넣고 휘휘 섞어버렸다. 한국에는 소복귀신, 구미호가 있다면 외국에는 좀비가 있어야 마땅하거늘, 좀비가 한양산성에 당도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좀비라는 소재보다 한국의 전통 의상, 그 중에서도 갓에 집중한다는 것이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대본이라는 것이다. 시즌2가 오픈되기 하루 전날에서야 아껴뒀던 시즌 1을 보고 남은 6시간조차 초조해 하면서 기다렸었다. 좀비에 한의학을 더했더니, 좀비가 된 원인을 밝혀낸 스토리라인이 여러모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좀비는 진화했다. 좀비란 자고로 햇빛을 무서워하며, 사지가 꺾인 채로 다리 한쪽을 질질 끌며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킹덤>의 좀비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며 서로를 밟고 높은 곳까지 쫓아온다. 태양이 아닌 기온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전에 없던 설정이다. 영화 <28일 후>가 나에게 첫 좀비였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구체적인 세계관으로 진화해 어쩌면 오컬트의 절정을 이룬 것이 아닐까.

 

킹덤.png



이외에도 귀신과 형사가 함께 수사를 하는 드라마 <처용> 등을 통해 귀신물이 하얀 소복차림으로 나타나는 처녀귀신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고사>, <여우계단>시리즈가 2010년대 중반까지 이끌었던 것과는 아예 다른 구분이 필요하지 싶다.
 
 

퇴마


부적. 나는 부적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맸다. 울상을 짓는 나에게 동생은 네잎클로버를 하나 건넸고, 그걸로 책갈피를 만들어서 좋아하는 책에 꽂아 놓았었다.

엄마는 나에게는 언급하기를 꺼려하셨지만 간혹 점을 보셨다. 그런 날이면 혹시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내 배겟잎에 노란색 종이에 빨간 글씨가 써진 부적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뒤적거렸다. 이우혁 작가님의 책 퇴마록을 읽다가 처음으로 가위를 눌렸을 때를 생각하면 나도 퇴마가 필요한 사람인가 걱정했던 시절도 생각난다.

한문서적에서 퇴마(退魔)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도 강동원 배우가 하는 일은 구마(驅魔) 사제 역할이다. 무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무당이 퇴마사의 역할도 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무당은 접신하여 대화를 통해 한을 풀어주는 역할이고 엑소시스트가 서양에서 들어오면서 생긴 작업이 퇴마이다. 오컬트라는 것이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생소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화 <검은 사제들>이 빼놓을 수 없는 퇴마 작품이다. 십자가와 성수를 이용해 인간의 몸에 들어온 마귀를 괴롭게 하여 쫓아내는 것이다. <검은 사제들>이 한국 영화판에 소개된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그 등장만으로도 센세이션했기 때문에 뒤를 줄줄이 이어 퇴마 또는 구마를 소재로 한 컨텐츠가 생산되었다. 드라마 <손 the guest>가 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손 더 게스트 2.jpg
드라마 <손 the guest>

 


<손 the guest>가 1%의 시청률에서 4%의 시청률 추이를 보이며 인기를 끈 것은 인성론에 대한 기존 논의(성선설과 성악설, 또는 백지설)와 단순한 권선징악에서 선과 악을 판별하는 기준을 애매모호하게 만들면서 절대악과 절대선에 대해서 다른 의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손 the guest>는 정의롭고 깔끔하게 문제를 헤쳐 나가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대신, ‘빙의되었을 때는 어쩔 수 없다’는 면죄부를 주기도 하면서 선악에 대한 고찰과 사회문제를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다.

역시 한국화 된 엑소시즘답게 <손 the guest> 역시, 사제의 구마 뿐만이 아닌 악마성의 혈연유전과 예지몽, 누름굿, 무당이 한 공간에서 묘사된다. 이런 장르물은 대개로 빙의가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퇴마를 거쳐 소멸하는 과정을 드라마 <프리스트(2019)> 등과 공유한다.

2020년인 지금까지 유행이 이어지는 오컬트, 퇴마 장르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흔해져버린 것이 익숙함의 이유일 수도 있다.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회고하기에 탁월함을 가지고 있는 이 소재는 퇴마를 통해 그 지나침을 경고하기 위해 종종 쓰인다.

 
손 더 게스트.jpg
드라마 <손 the guest>

 

 

*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는 <엑소시스트>가 1973년 작인 것과는 비교될 정도로 늦은 시대에 흐름을 타고 있다. 그 사이 사회는 고도화되었다. 악을 그려내는 이 장르 역시 복잡성을 기본으로 전제해 개인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오컬트 장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내면의 불편함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내면의 인간성, 삶, 고민, 가치관과 결부되기 때문에 종교적 서사와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깊이 파고들어 있는 욕망은 선(善)의 외형으로도 그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선 (1992). 사제와 무당. 세계의 신학(17). 97-108.
백소연 (2019). 「손 the guest」에 나타난 악의 재현 방식과 그 의미. 어문론집,80. 213-239
pmg 지식엔진연구소 (2020). 시사상식사전.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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