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점 별점 기준에 대해 생각하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3.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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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 감상했던 영화, 드라마, 공연, 도서를 한 번에 평가한 기억이 있다. 늘 작품을 개별적으로 평가했을 뿐,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여러 작품을 평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의 평가는 기준이 정말 단순했다. 총 세 단계였는데 사실상 두 단계였다. 왜냐하면 감상한 작품 /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 / 뛰어난 작품성을 넘어 나에게 변화를 줄 만큼 감명 깊었던 작품, 이렇게 나누어 평가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왓챠라는 리뷰 어플을 이용하게 되면서 5점 별점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왓챠 어플은 영화, TV 프로그램, 드라마, 도서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평가할 수 있고 추천해 주기도 하는 어플이다. 내가 작품을 평가하면 데이터가 쌓이는데, 저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가 좋아할 확률이 높은 작품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추천이 다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추천받은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때면 왓챠에 큰 감동을 느끼곤 한다.

왓챠에서는 0.5점을 시작으로 0.5의 간격으로 5점까지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총 열 단계에 달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감상 기준이 세 단계밖에 없었던 내가 세분화된 열 단계의 기준을 접하게 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감상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나의 5점 별점 기준


 

5점

후유증이 1주 이상 가는 ‘인생작’. 반드시 다시 감상하고 싶은 작품.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는 작품이며, 인생관을 형성하거나 바꾼 작품.


4.5점

5점 기준에서 2% 부족하지만 여전히 강력히 추천하는 작품.


4점

이 정도면 여전히 감상과 추천의 가치가 있는 작품.


3.5점

평균 이상으로 괜찮긴 하지만 스며들진 않는 작품.


3점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이 공존하는 작품.


2.5점

그냥저냥 한 작품.


2점

끝까지 감상하긴 했지만,

재미도 감동도 교훈도,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작품.


1.5점

감상 시간이 아까워라.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작품.


1점

누가 평가를 물으면 뜯어말릴 작품.

 

 
나는 이렇게 0.5점을 뺀 나머지 점수로 9단계의 기준을 마련했다. 크게 보면 상위 3개의 기준이 ‘상’, 그 아래 3개가 ‘중’, 하위 3개의 기준이 ‘하’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다. 사실 ‘하’ 기준은 살벌하게 적어두었지만, ‘하’를 준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마음에 맞지 않는 작품을 생각보다 많이 접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왓챠 어플에 따르면, 내가 많이 준 별점은 3점, 별점 평균은 3.6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 별점은요~

 
5점에 해당하는 작품은 정말 ‘인생작’이라 불릴 만큼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다. 나의 별점 기준에 따르면 사실 4점 이상은 작품성이 뛰어나고 모두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이다. 하지만 근소하게 0.5점씩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앞서 기술했듯이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 작품을 평가할 때 5점을 부여함에 있어 가장 차별을 두는 지점은 ‘이 작품이 나의 인생관을 바꾸었는가? 혹은 새롭게 형성했는가?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질문의 통과 여부이다.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의 존재가 바로 ‘5점’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기준을 통과하여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훌륭한 작품들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우선 영화에서는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마크 허만 감독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다.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는 이 영화는 단순히 시대의 비극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비극의 시대로 불러들여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한 영화였다.
 
또 다른 5점 별점의 영화로는 이안 감독의 <색, 계>가 있다. 어쩌다 보니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두 편이나 추천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의 선호 장르가 역사,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야한 장면이 몇 차례에 걸쳐 있지만, 그저 야한 영화로 치부되기엔 억울한 명작이다. 사랑할 수 없는 남녀의 감정선을 농밀하게 담았고 당시 상하이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중국 내에서 <색, 계>를 둘러싼 논쟁들이 뜨거웠기 때문에 읽을 자료들이 많아 참고하며 감상하기에 좋다.
 
도서에서 ‘인생작’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가장 최근에 강렬하게 읽었던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이다. 천 페이지에 걸친 주드의 자기혐오 일대기를 살피고 있노라면 눈물이 미친 듯이 떨어진다. 나는 완독 후에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탈진했다. 3주째 책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데 그건 <리틀 라이프>가 담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거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완독을 하자마자 재독을 하게 된 유일한 소설이다.
 
 

1부터 5까지의 숫자를 부여하며

 
사실 나는 원래 5점 별점 평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을 숫자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점 평가의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작품을 점수라는 틀에 가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로 따지자면 작품 속 모든 연기와 연출과 스토리와 그 외에 많은 것들, 도서로 따지자면 내용과 문체와 취향 그 이외의 많은 것들을 수치화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작품을 평가할 땐 오직 문장을 사용할 뿐, 숫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별점 평가를 한다는 것을 안 이후로, 별점 평가에 대한 열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편협하게 한 가지 방법으로만 작품을 평가하려 한 건 아닐까? 어떤 작품에나 적용될만한 기준을 두고 각각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고집한 ‘오로지 개별 평가’보다 훨씬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늘 같은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한다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내가 지키는 감상의 원칙은 감상 전에 어떠한 평점이나 코멘트도 찾아보지 않는 것이다. 감상 전에 타인의 평가를 보게 되면 그것을 잣대로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서 나만의 온전한 감상이라 볼 수 없다.
 
또 하나의 감상 원칙은 감상 후 바로 작품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감상 직후에는 좋았든 나빴든 작품이 주는 여운에 젖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 감상 후 평가하고 싶은 점들을 하나하나 적어보고 반나절 혹은 하루 정도가 지난 후에 별점을 매기는 것이 가장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뭐 이렇게까지 복잡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감상의 기준을 확립하고, 감상의 원칙을 세운 이유는 주관적인 감상 안에서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준을 정해놓으면 다소 감정적인 내가 그날 그날의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나만의 기준에 따라 작품들을 분류하면서 취향 패턴을 뚜렷이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감상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일은 나를 잘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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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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