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세이를 읽고 에세이를 썼다 [사람]

글 입력 2020.03.18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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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한동안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 처음 에세이를 읽었을 때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과 이리도 사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남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그럴듯한 말로 꾸며놓은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는 전부 거기서 거기였다. 이러다가는 평생 남의 이야기만 보다가 끝날 것 같아 다른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글 한 토막을 발견했다.

 

같은 노래일지라도 언제 듣느냐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한때는 너무 공감이 되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노래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이해할 수 없던 노래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때가 있다. 책도 그랬다. 철저히 타인의 이야기 중 하나로만 느껴지던 것이 시선을 잡아 끌 때가 있다. 에세이는 이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한 토막이 잊히지 않아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집 근처의 중고 서점에 딱 하나 남은 이 책을 누가 먼저 사갈까 봐 안절부절했고,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품에 꼬옥 안고 돌아왔다.

 

에세이를 읽고 나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없다. 그저 편안하게 누군가 가지런히 적어 놓은 생각들을 하나 둘 읽었을 뿐이고 그중 몇 가지가 마음 문 앞까지 와서 그 문을 조용히 똑똑 두드린 거다. 그것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이 에세이의 매력이다. 고요함 속에 오늘의 내 마음을 두드린 그 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도 사적이고 산발적이라 사실상 리뷰보다는 미셀러니에 가까운 글이 될 것 같다.

 

 


 

 

겪은 사람만 아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존재조차 모를 두려움을 알고 있다는 건 취향을 수집하는 일과 또 다른 방향으로 내 삶을 떠받쳐 왔다. -57p


 

두려움은 불필요한 감정이 아니다. 특정 경험으로부터 얻은 두려움은 어찌 보면 특별함이다. 나는 남들보다 예민하고 소심하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보다 조금 어릴 때는 알지 못했다. 소풍과 체육시간에 주는 자유시간이 싫었다. 소풍을 갈 땐 친한 친구와 두 명씩 짝을 지어 앉아야 했었는데 내게는 그런 친구가 없었다. 또 자유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떠들 때 나는 운동장 구석에 있는 구름사다리 옆 벤치에 혼자 앉아 있어야 했다. 안 그래도 넓은 운동장이 더 넓어 보였고, 나는 더 작게 느껴졌다.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했지만 특별히 어느 무리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 친구들 눈에 혼자 있는 아이는 그저 왕따였다. 혼자 지내며 느끼는 외로움보다 그 시선이 두려웠다. 쟤는 같이 짝을 할 친구도 없나 봐. 쟨 누구랑 놀아?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론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 정도의 아이들과 지내며 생긴 건 유대감이 아닌 피곤함이었다. 관심 없는 것에 관심 가져야 했고 원치 않아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밥을 먹는 게 불편해서 가지 각색의 이유를 대며 끼니를 거르기까지 했다. 질질 끌려다니는 기분에 지쳐 무리 안에서 지내던 것도 얼마 못가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원망스러웠다. 왜 짝이 없고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 음악을 듣는 아이는, 밥을 혼자 먹는 아이는 손가락질을 받는 걸까. 여기는 정글이 아닌데, 혼자 있는다고 공격받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무리 생활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화살은 금세 나한테 돌아왔다. 다들 잘 지내는데 나만 못 지내는 걸 보면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모자란 것 같아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혼자 있다가 어느 무리에 속했다가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을 반복했다. 시끄러운 교실 속 나 혼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고 학교라는 공간이 끔찍하게 싫었다. 꾀병을 부려 조퇴를 했고 엄마한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즈음 5년 가까이 나를 괴롭혀 온 강박을 버렸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꼭 누군가에게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하고 무리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내가 내 모습을 받아들이자 전처럼 학교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멋지다며 먼저 말을 걸어오는 친구도 있었고 더 이상 그 누구도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우리 모두의 정신적 성장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너무 기뻤다. 그 시기에 감사히도 나는 현재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5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소중한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나를 다시 찾아 붙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 시간들을 종종 떠올려보곤 한다. 좋은 기억이 아님에도 그 시간들이 나의 오늘과 내일에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나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고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더 잘 쓰고 싶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은 잘난 척하며 써 온 것만이라도 지키면서 살고 싶다. 최소한 그러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83p


 

다짐 형식의 글을 많이 쓴다. 하루를 기록할 때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따위의 문장을 글 끄트머리에 자주 적는다. 실제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적도 있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은 적도 많다. 어쩌면 쉬운 것들만 골라서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내가 쓴 글과 더 닮기 위해, 내가 내 글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또 다짐한다.

 

 

그렇다면 영원히 참지 않아도 죽지 않는 것들, 참다 보면 그것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의지와 욕구들은 어떨까.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일터에서 소리 없이 삭제되는 인간성은 얼마나 될까. 생각이 거기에 이를 때마다 눈앞이 아찔해진다. 나는,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얼마나 잃었을까. -132p

 

 

어릴 때는 꿈이 참 많았다. 어제는 변호사였다가 내일은 치과 의사였고 모레는 가수였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잘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가수가 되고 싶어 보컬 학원을 다녔고,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어서 뮤지컬 학원을 다녔고, 경찰이 되고 싶어 태권도 학원을 다녔으며, 음대에 가고 싶어서 플룻을 배웠다. 것도 고작 한 달씩.

 

그 시간들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것저것 맛본 후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찾았고 늦게 시작한 그림으로 디자인 대학에 올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수업을 들어보니 이걸 어쩌나 패션디자인은 내 입맛이 아니더라. 승부욕이 강해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미 들어온 걸 어떻게 해. 점수도 잘 나오고 일단 졸업이나 하자. 다시 수능을 볼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며 자꾸 튀어나오는 반수와 전과 욕심을 꾹꾹 눌러 담고서 졸전까지 마치고 사학년이 되었다.

 

내가 지금 무얼 잘 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한 불안감으로 이것저것 발을 담그긴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문득 고등학생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생각했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나의 목표는 좋은 대학이 아닌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가 요즘 습관적으로 한숨과 함께 꺼내는 말은 '나 도대체 뭘로 벌어먹고 살지'이다.

 

인생에는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모두 같은 트랙에 서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는 고사하고 무얼 잘 하는지 보다 일단 나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이걸로 과연 내가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인 거다. 사회가 쓸데없이 친절하게 정의 내려준 나의 모습과 진짜 나의 취향을 하나 둘 바꾸면서 나는 색을 잃었다. 그리고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적어도 휴학을 한 후의 나는 밥벌이를 고민하는 '몇 가지 색을 가진' 내가 되었다. 패션디자인과라고 하면 위아래를 훑는 이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패션학도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부끄럽지만 그 사람이 입은 옷이, 한 화장이, 멘 가방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겉모습으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둘 나의 색을 찾아가는 중이다. 덕분에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내게는 생각보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득 쓴웃음이 났다. 택시를 타고도 미터기를 힐끗 거리는 대신 잡생각을 하고 하늘을 보고 글을 쓰고 남의 걱정을 했다. 단지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같은 곳에 앉아있음에도 시야가 이토록 달라지다니.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별것 아닌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미터기에는 3만 원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이 글 값은 3만 원이다. -168p

 

 

경제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더 저렴한 것, 평소에 먹던 것을 선택했다. 실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왕 지불한 내 돈이 휴지통에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서는 남들에게 '나는 원래 먹는 것만 먹잖아, 하는 것만 하잖아, 가는 곳만 가잖아'라고 말했다. 지루했다. 내가 스스로 내 울타리를 더 높이고 그 안을 좁히고 있었다.

 

작년부터 시작한 대외활동을 하며 식사와 간식비를 포함한 활동비를 지원받았다. 그 덕에 나는 평소 사 먹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싼 음식과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되었고,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돈 걱정이 없으니 나는 더 이상 안정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선택들의 성패와 상관없이 결과는 모두 값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나는 내 선택지를 돈이라는 지우개로 지워갈 것인가.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게 조금 더 값진 것들을 주기로 했다. 나는 충분히 이런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기왕이면 더 좋은 옷을 사 입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은 곳을 가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에도 정신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선물한 경험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더 가치 있는 나를 만들어주고 있다.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했다. 쓰는 내내 상대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한 사람을 위해 내용을 생각하고 말을 고르고 단어를 적고 나면 그에게 내 시간의 한 조각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 같아서, 다른 어떤 선물보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했다. -199p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게 취미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일 없이도 편지를 썼다. 문구점에 가서 예쁜 편지지가 있으면 전부 사서 모았다. 놀랍게도 그 편지지를 모두 다 사용했다. 중학교 때는 친한 친구와 하루에 하나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수업 시간에 몰래 쓰는 답장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고받은 편지가 큰 박스 하나를 다 채웠다.

 

어느 순간부터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편지를 쓰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던 것인데 답장을 기대하고 있고 또 받은 답장의 길이와 내용을 하나 둘 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스스로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아둔 편지를 정리하다가 지금은 멀어진 친구가 써준 편지를 보며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썼던 편지도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싶었다. 그런 편지들을 모두 버리고 나니 남는 건 몇 개 없었다.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편지를 쓰지 않다가 다시 편지를 쓰게 만든 건 누군가의 '편지'였다. 답장을 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가지런히 써둔 글자들을 한참을 가만히 보다가 서랍 안쪽에 오래전에 사둔 편지지를 꺼냈다. 얼굴이 떠올랐다. 두서없는 글을 죽 쓰기 시작하니 별 추억들이 다 떠올랐다. 맞아 이런 일이 있었지. 상념은 전부 잊은 채 나는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내게 편지를 써준 이들도 이랬을까. 그 글을 하나 둘 적으며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게 고마웠다.

 

여전히 편지를 쓰다가 '혹시 이 사람과도 멀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펜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서 내 마음을 후회 없이 전하고 싶기 때문이고 혹시 멀어진다고 해도 이 편지가 다시 그 사람과 나를 가까워지게 해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는 이 책의 또 다른 페이지가 이 글들보다 더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그때 다시 그 글들을 머금으면 되겠지. 이 책을 읽고 에세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앞으로 종종 에세이를 읽기로 했다.

 

유난히 눈이 가는 글들은 오늘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를 보여준다. 사진첩에 찍어둔 페이지는 내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니 에세이는 알고 보면 글쓴이의 마음과 함께 내 마음도 비춰주는 양면 거울 같기도 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의 거울이 우연히 같은 것을 비출 때면 어떤 사람의 어떤 하루는 나의 오늘이 된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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