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 [여행]

여행이 좋은 이유
글 입력 2020.03.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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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에게 근황을 물어보면 집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달고나 커피와 계란말이를 만들어 먹기 바쁘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일상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코로나19의 영향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재밌게 놀 방법들이 더 다양해졌다.

 

나 또한 평소에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만들 여력이 없어 시도하지 못한 요리들을 해내면서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집에 콕 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어쩌면 이는 지금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을 취소한 사람들도 많을 테니 말이다.

 

나는 사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행복의 척도가 여행이 되어 버렸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내가 수없이 많은 곳을 떠난 방랑자인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지 불과 일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워하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내가 과감함을 즐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 저마다 달라서 특별했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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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유난히 여행을 자주 다니곤 했다. 경주, 김천, 대전, 밀양으로 기차 여행을 떠나며 그동안 지나쳤던 산뜻한 꽃들을 구경했고 일본(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다소 낯설었던 향기를 맡기도 했다.

 

지난해의 여행은 대체로 잔잔했다. 굉장히 충격적인 인생의 일탈을 경험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떠나보면 색깔이 전부 달랐던 곳들이었다. 산뜻한 봄바람, 후덥지근한 공기와 매미 소리, 야경과 함께 빛났던 가을밤, 쌀쌀해서 왜소해 보였던 거리, 바다를 매운 매립지처럼 인도에 늘어선 오토바이와 알람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 등.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 머릿속엔 항상 필름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이 사진들은 저마다 중복되지 않는 다른 시간을 품고 있기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었다. 계속 흐르고 흐르다 버려지고 잊힌 시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필름 사진 속에 저장된 시간은 참 소중하다.

 


 

# 의지 50%, 설렘 50%의 여행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김영하 작가, ‘여행의 이유’ 中


 

앞서 지난 여행에서 특별한 일탈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여행은 그 자체가 일탈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도서관 혹은 사무실에서 책이나 컴퓨터 화면만을 바라보다가 작정하고 하늘, 꽃, 사람들을 마주하러 가는 게 어떻게 일탈이 아닐 수 있겠는가. 평소에도 심적 여유가 충만한 사람이면 모를까, 늘 바쁘게 다니느라 구름 한 점 바라볼 시간 없었던 내게 여행은 특별한 게 당연했다.

 

그런데 여행이 더 특별할 수 있었던 건, 그 여행의 시작이 오로지 나의 결심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여행에 대한 결심과 기획, 실행, 마무리까지 모두 나의 의지였다.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이라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내가 하늘, 꽃, 사람들을 마주하기로 했다. 이같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세상으로부터 설렘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설렘을 원동력으로 삼아, 나는 늘 그렇듯 여전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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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설다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김영하 작가, ‘여행의 이유’ 中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낯선 환경’이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여행의 가장 큰 매력 또한 ‘낯선 환경’이었다. 처음 해외로 자유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매일 구글 지도를 보면서 길을 익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다다르니, 구글 지도를 외운 것은 소용없었다. 눈으로 직접 마주한 세계는 지도상에 그려진 가상의 세계보다 한없이 넓고 복잡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들과 나와 다른 언어,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적응력은 예상보다 뛰어난 편이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세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상했다. 내가 아는 나는 어느 곳에서 쉽게 어울리고 적응하는 인간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낯선 여행지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곳에선 낯선 감정이 당연하게 허용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지는 내가 아는 여느 공간들처럼 친화력 있고 능숙해야 하는 곳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숙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길을 잃고 서툰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내가 처음이었지만, 이 또한 여행지였기에 괜찮았다. 돌이켜보면 여행은 일상에서의 나 혹은 내가 쓰고 있던 가면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여행이 좋은 이유를 아무런 두서없이 열거하듯 말했다. 글을 단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여행은 언제든 옳다’이다. 여행이 불만족스럽더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용기 있게 짐을 싸고 떠난 이후부터, 이미 그 자체로 의미 있어서. 코로나19가 진정된 후, 집 밖으로 나가는 하루가 다시 일상이 된다면, 우리 다시 여행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하늘, 꽃, 사람들, 낯선 향기 모두 좋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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