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 도서 '총보다 강한 실'

글 입력 2020.03.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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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큰 흐름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답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구분되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형태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만큼의 응집력을 갖추지 못했던, 선사시대의 인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류가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 주된 도구가 돌이었을 때를 두고,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라는 역사의 흐름을 구분지었다. 그리고 돌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물(鑄物)이 가능해진 시점에서는 그 성분을 파악하여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이와 같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대 구분의 중요한 잣대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서 역사를 살펴보려는 움직임이 있다. 바로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가 지은 도서 "총보다 강한 실(The Golden Thread - How Fabric Changed History)"이다. 총보다 강한 실이라는 건, 총균쇠를 아주 익히 잘 아는 한국인들을 감안해서 옮긴이가 적당히 완역한 제목이라고 보면 된다. 원어 제목의 부제는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바로 직물이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신선하게 와닿았다. 우선 한국어판의 책 제목부터 역설법이어서 강렬하니 시선을 잡아끈다. 실이 총보다 강할 수가 없다는 건 자명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이 아닌, 실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살펴보겠다는 것은 확실히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실과 동떨어진 삶을 산 적이 단 하루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책,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의 신작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복식사를 전공했고, 18세기 여성 복식사와 무도회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작가다. 그동안 실에 대한 역사는 다뤄진 적 없었다. 있더라도 대부분 옷의 외관과 매력에 대해 서술해왔다. 즉, 그것을 만든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역사나 사회, 문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완성품'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총보다 강한 실』은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의 저널리스트적인 집요함과 학자로서의 분석이 더해진 책이다.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한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역사와 조명되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을 찾아낸다.


인류 최초의 실을 찾아낸 줏주아나 동굴의 발견을 시작으로 실을 사용하는 최초의 인류를 탐색하기도 하고, 고대 중국 여류 시인의 한시 속에서 고대 중국의 비단 생산의 비밀을 찾아보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에 등장하는 놀라운 레이스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남극대륙과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인간들과 그들이 선택한 특별한 직물들, 우주에 한발 내딛기 위해 우주비행사만큼 고군분투한 우주복 제작자들, 인간 속도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신 수영복 논란까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엮어낸 13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와 만난다. 그 시간들은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모습과는 다르다. 동굴 속에서, 안방에서, 공방에서, 공장에서 여성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모든 직물은, 우리가 매일 옷을 입듯 당연하지만 소홀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실' 하나로 풀어간 역사의 참모습이 여기 있다.

 




우리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역사란 곧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오직 강한 자,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해서 패한 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항상 승자의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비단 승자의 기록이 텍스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꼬집는다. 유물들조차 쉽게 부패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강한 것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석기나 철기 같은 것들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주요 잣대로 활용된 것은, 이들이 그만큼 유물계의 승자였다는 반증인 셈이다. 실 그리고 실로 만들어진 직물들은 유구한 세월 속에 이미 다 썩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신석기시대 유물 중 가락바퀴가 있으니 그 시대에도 옷을 만들어 입었으리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워낙 선사시대 유물 하면 각종 토기 아니면 석기가 주를 이루다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선사시대 인류는 대개 돌과 창을 들고 수렵생활을 하는 강인한 혹은 난폭한 모습 위주로 떠올리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가락바퀴로 만든 옷은 현재 남아있지 않을 지라도, 가락바퀴만으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그 시절에도 섬세한 기술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이 실내외에서 만든 천으로 꾸려나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볼 수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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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항상 무언가를 입고 걸치고 있듯이, 우리는 삶의 매순간에 직물과 함께 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동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대부분 옷 자체만을 생각한다.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이러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자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실을 다루면서, 이것이 그저 단순히 입기 위한 옷이라는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선사시대에 동굴 속에서 옷감을 만들어야 했던 시기에는 외부의 추위에 대응하기 위해 '입기 위한 옷'을 만드는 게 첫번째 목적이었지만, 같은 고대여도 이집트 시기만 되어도 옷은 그 이상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보이기 위해 집권자가 항상 취하는 전략이 무엇일까. 바로 구분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일반인들과 구분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권력자들은 항상 절대 다수가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것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곤 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금은보화일 것이다. 그런데 옷도 마찬가지로 집권층이 독점하는 것 중 하나였다. 물론 빈민도 옷을 입기는 입는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들이 입지 못하는 특별한 옷을 입어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구분지었다. 이집트에서는 바로 린넨이 그런 소재였다. 그래서 미라를 린넨으로 감쌌던 것이다.


직물은 권력계층을 구분 지어주는 요소였던 동시에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양모를 통해 잉글랜드가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리처드 왕이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이런 수많은 직물들을 생산해냈던 노동자들의 삶까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방직이 발달하면서 점차 왕족과 귀족들은 부유해지고, 레이스와 같은 사치재들까지도 고도화되었지만 이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삶은 빈곤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화려함 이면에 숨겨져 있는 숨은 주인공들의 삶까지도 조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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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다양한 직물을 생산해 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부를 축적하지 못하고 빈곤한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 아주 오랜 고대부터 실은 여성의 것, 여성이 해야 할 일로 간주되어 왔다. 단적으로 수많은 신화와 옛 이야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자 신 중에서 실을 다루거나 옷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은 이는 없다. 그러나 여자 신들은 많은 인물들을 거론할 수 있다. 당장에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세 여신이 실을 가지고 인간의 운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의 여신 아마테라스 역시도 실을 잣는다. 신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칠석 설화에 나오는 직녀도 길쌈하는 인물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들과 인물들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실과 직물로 많은 업적을 쌓았을 수많은 여성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역사를 이러한 관점에서도 바라보고자 노력한 듯했다. 이른바 여성주의적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성주의적 역사관이라고 하기에는 직물이 너무도 절대다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겠지만, 여성과 직물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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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총보다 강한 실"은 굉장히 색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어쩌면 더 잘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 책에 아주 다양한 소재들이 나오는데, 린넨이나 양모, 모시 같이 일반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그 직물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라서 찾아보기 전까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사진이나 그림으로 부연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확실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저자의 박학다식함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은 생각지도 못한 단어들이 직물과 관련한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부분들이었다. 그만큼 직물이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류와 가장 밀접한 삶의 영역에 존재하면서 역사를 변화시켜왔던 실. 작지만 강한 그 실의 힘을, 도서 "총보다 강한 실"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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