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행복 [도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
글 입력 2020.03.1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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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인 <노르웨이의 숲>과 <1Q84>는 들어본 적 없는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인기 있는 작가이다. 하루키는 주로 소설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앞선 작품들과는 아주 다른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하루키가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에 경험한 일들과 여러 주제에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단편의 글들을 모은 에세이이다. 소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게 담아낸 글들로, 소설이나 문학 전반적인 주제보다는 일상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소설이 아닌 그의 에세이는 주로 마라톤, 여행, 독서,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에세이 속에서 본 하루키는 다소 내향적인 듯하지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그가 좋아하는 '고양이'와 닮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라는 그의 표면적 특성을 보았을 때, 하루키와 평범한 나는 그다지 접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상 어떤 슈퍼스타가 평범하디 평범한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나 그의 경험담을 통해 본 '진짜' 하루키는 나와 같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보며 그가 특이하고 비범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을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볼 때나 다른 작가와의 교류를 할 때 말이다. 그는 다른 작가를 대할 때, 그는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동질감이나 경쟁심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인간적인 시선으로 다른 작가를 대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자신이 감탄하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의 경험담을 주로 쓴 에세이이므로, 이해가 가지 않는 외국의 시스템들로 인한 스트레스, 몇 번을 알려줘도 틀리게 부르는 내 이름과 같은 외국에서 생활했거나 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면 공감될 애환도 있었다. 그가 설명한 모든 상황에 진절머리가 나 '화가 치밀어 고함을 치고 싶어도 제대로 칠 수 없다는 괴로움'은 외국에서 생활을 해 본 나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엄청난 명성과 부를 지닌 사람을 생각할 때, 보통 소탈한 모습은 잘 연상되지 않는다. 막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내가 느꼈던 그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의 취미는 어떠한 장비나 고가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 '마라톤'이었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즈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양이였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136p)


 

그는 에세이에 개인적인 생활과 일상적인 내용을 쓰는 것에 정말 거리낌이 없었다. 저렴한 요금의 재즈클럽에서 들은 연주에 감동을 받고 곧장 다음날 레코드점에 방문해 24달러짜리 음반을 사서 질릴 때까지 그 음악을 들은 일, 통신판매로 구매한 빨래 건조대와 60달러 안팎의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손목시계를 구입한 일들을 기록하며 자연스럽게 쇼핑의 고단함이나 소비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밝히기도 했다. 또, 역시나 그에게서 빠질 수 없는 레코드에 관한 일화를 풀어놓으며 이제는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버몬트의 라마


버몬트에서는 라마를 기르는 농가가 많다. 라마는 매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역시 라마는 라마즈법으로 새끼를 낳는 것일까? 제발 라마에 대해서는 내게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마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81p)


 

비록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에세이일지라도, 작품의 사이사이에서 그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 '무가치하고 도덕심이 없다'라는 뜻의 상당히 모멸적인 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어쩌면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다소 침착하고 한편으로는 덤덤한 그의 반응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 일화뿐만 아니라 각각의 에세이의 주제로 전개하기 위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들은 대부분 이런 위트를 가지고 있어서, 이전에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일지라도 독자로 하여금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또, 각각 에세이의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그가 찍은 사진들과 짧은 코멘트에서는 언어유희를 사용하는 등의 센스로  앞선 에세이의 내용으로 인해 너무 진지해진 분위기를 환기해 주기도 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소설은 작가가 얼마든지 고쳐 쓰고 바꿔쓸 수 있고, 심지어는 결말까지도 바꿀 수 있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사실은 명확하게 존재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조금 꾸며서 묘사할 순 있지만 결말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그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는 더 담백하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아주 멀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소확행'을 전파시키고 우리 일상에 각인한 무라카미 하루키. 어쩌면 우리와 그는 그렇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우리도 소설 속 주인공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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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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