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픔만큼 기쁘지 아니하더라도 [도서]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글 입력 2020.03.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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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글은 순식간에 마음을 세게 치고 가 잠시의 그로기 상태를 준다. 텍스트로 전달되는 풍경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어서 행간에 독자를 데려다 놓고 온갖 감정을 아래위로 처절히 맞닥뜨리게 한다. 그런 문학을 읽으면 결론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이 그런 모양새인 탓이다. 뭉툭한 기쁨과 슬픔이 마구 부유하면서도 날카로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 일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 글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만나야 한다. 그것은 삶을 재단해주지 않는다. 잘라냈던 감정들을 주워다가 더 잘 느끼게 할 뿐이다.


어쨌든, 책장을 덮은 후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더 잘 웃고 웃을 수 있는 감각을 체득한 후에 만난 현실의 뭉툭함은 더욱 쓰다. 흥건한 감정에 헤엄치다 메마른 현실로 돌아가는 루틴에 지치기 시작했을 때 만난 이 책은 상대적으로 건조해서 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러나 바싹 마르지 않을 정도로, 다만 물기에 오므려졌던 마음을 펴서 굽이치는 현실에 빳빳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고요한 바람을 쏘아준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장류진 작가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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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인물 유형 중 하나는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분명히 최선은 아닌 행동을 한다. 그렇게 인물들은 내부와 외부로 나뉜다. 소설집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작법 중 하나는 시점의 전환이다. 시점을 다른 방면으로 혹은 다른 인물로 옮기면서 최선과 최선이 아닌 것, 내부와 외부의 기준이 불시에 뒤틀리는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외부로 밀어뒀던 인물에 일순간에 몰입하게 하면서 더 많은 인물의 모습과 가능성을 삶에 포함하게끔 한다.


첫 장을 장식하는 「잘 살겠습니다」는 그러한 작법과 인물이 동시에 나온다. 일상의 암묵적 약속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빛나 언니의 행동은 쉽게 이해되지 않아 그 숨겨진 속뜻을 수시로 의심하게 된다. 청첩장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전달할 관계도 아닌데 무턱대고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그렇게 청첩장도 주고 밥도 사줬는데 결혼식을 깜빡한다. 주인공은 세상이 얼마나 계산적으로 돌아가는지 일러주기 위해 얻어먹은 밥값에 언니가 낸 밥값을 뺀 만큼의 금액에 정확히 해당하는 선물을 결혼 선물로 전달한다. 그러나 언니는 눈물을 흘린다. 계산적인 선물은 계산에 없던 감동으로 닿는다. 주인공은 이다지도 계산적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 언니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되뇐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글은 빛나 언니를 이해할 수 없는 외부의 세계로 밀어낸다. 사실 주인공의 독백을 생략하고 큰따옴표로만 등장하는 언니의 말을 추려본다면 문제 될 것이 없는데도 그것은 이 계산적인 세계에서 쉽게 의심받고 제멋대로 부여된 의미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세계가 절대적으로 옳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주인공은 남편과 같은 직장을 다니며 공공연히 유능함을 인정받으면서도 남편보다 승진이 늦고 연봉이 천만 원대로 차이 나는 것이 그가 자기보다 딱 천만 원어치의 일을 더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의 시점이 바뀌면서 잘 살 수 있는 세상에 빛나 언니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부당함도 충분히 정당함으로 둔갑할 수 있는 계산적인 세계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했다.


「다소 낮음」의 장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전기요금을 두 달 치 밀렸어도, 돈 안 되는 음악 한다고 아버지가 화병이 나서 죽었다는 말로 온통 수군대도 장우는 ‘냉장고송’으로 얻은 인기와 계약서를 마다한다. 설상가상 길에서 만난 강아지까지 충동적으로 집에 들인다.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순간순간 장우의 행동에 짜증이 치미는 이유는 그의 옆엔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는 유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밀린 전기 요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막 열심히 하기도 싫고, 막 성공하고 싶지도 않은’ 장우의 영감이 되어줬던, 그리고 모두가 떠난 장우의 곁에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줬던 냉장고의 효율은 4등급, ‘다소 낮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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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소 낮은 효율로도 성공할 수 있는 비책 같은 건 제시하지 않는다. 「잘 살겠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외부로 밀려난 인물을 위한 세상 역시 요원함으로 남는다. 하지만 냉장고와 나란히 앉은 장우의 모습으로 끝나는 장면에서는 냉장고처럼 효율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을 끝내 품게 된다. 잡아먹는 에너지에 비해 시원하지 않아서 골칫거리가 되는 냉장고처럼 효율이 없는 장우에게 꽂았던 한심함의 시선이 결국 나의 어딘가도 ‘다소 낮게’ 깎아내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왜 나는 ‘시원찮은’ 인간을 마땅히 비판하고 미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어지는 「도움의 손길」은 때늦은 반성을 더욱 민망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자신이 고용한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를 무시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가난한 자는 천국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맑게 얘기하는 성경 구절에 거북해하며, 아주머니의 가족사진에 등장하는 식솔들의 모습에 체기를 느끼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례한 말로 ‘선을 넘는’ 아주머니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조건이 더 좋다는 이유로 근무지를 옮기겠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오는 반전감은 단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 그토록 자제했던 계급의식을 개입시키며 복잡하게 꼬았던 생각들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다소 낮음」에서 고개를 내밀었던 외부로 밀려난 이에 대한 연민은 「도움의 손길」에서  건조하게 차단된다. 대신 누구든 같은 사회 안에서 도움의 손길 없이도 작동하는 계약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피력하며 자의적으로 설정한 내부와 외부의 경계선을 조소한다. 모두가 각자의 내부와 외부를 지니고 그 경계를 오가며 균형을 잡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일말의 연민도 꾸지람도 없이 인물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 같은 문장들은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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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장이 중립이 아닌 균형에의 지향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양쪽의 인물 가운데에서 고고히 관조하기보다 어느 쪽에도 소홀하지 않고 팽팽히 잡아당기는 움직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명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가 처해 있는 ‘일’이라는 공통적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의 기쁨과 슬픔을 묘사하면서 사방을 끌어당기고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균형의 위력을 보여준다. 여기엔 부당한 ‘갑질’로 인해 월급을 포인트로 받기 시작했다던, 그래서 포인트로 물건을 사고 중고거래로 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을 택했다던 회사원과 해당 중고거래 앱 개발 회사의 직원이 등장한다. 둘은 대화를 통해 서로 같은 결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이상함을 덜 느끼려 애쓰면서도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포인트로 들어오는 월급에 좌절하지 않고 직원 할인을 이용해 물건을 알뜰히 구매하여 팔고, 그에게 구매한 커피머신을 회사에 비치하는 등 주어진 상황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기지를 발휘한다.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월급으로 예매하는 직원의 모습은, 이 이상한 세상에 아주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잃지 않으려는 보통의 순간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의 울음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풍성해진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럼에도 현실에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하지 않는다. 답답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서의 승리가 반드시 불러올 가만한 균열을 이 소설은 예리하게 포착하며 보듬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탐페레 공항」은 엎치락뒤치락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무언가를 따사로이 조명함으로써 삶에 있어 마땅한 균열과 지탱을 양쪽으로 드러낸다. 원하는 것을 접어두고 원하지 않는 것을 잔뜩 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인 주인공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핀란드 노인과의 만남을 통해 접어뒀던 꿈의 설렘을 잠시나마 꺼내 펼치고, 정신없는 취업 준비 과정을 지난 후에야 생각난 노인의 편지에 정성스레 담긴 자신의 사진을 보고 잊혀져가던 그날을 되새긴다. 미루고 미뤘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다. 수많은 균열에도 불구하고 ‘언젠간’이라는 혼자만의 약속으로 어떻게든 견인하고 지탱해온 삶 끝에 선물처럼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순간의 존재를 믿는다. 단지 기적적인 엔딩이 아니다. 오늘도 삶의 칸을 늘려나가는 이들의 공간, 그리고 나에게도 그만큼 반짝이는 순간이 높은 확률로 닿기를 염원하는 작가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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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선, 기쁨과 슬픔, 균열과 지탱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가는 우리의 삶은 완벽한 균형을 취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치우치고, 쏠리고, 불안하다. 그렇게 모두는 각자의 기울기를 갖는다. 평행되지 않고 뻗어간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세상과 만났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제각기의 삶들은 그래서 힘 있게 발언되고, 힘 있게 닿는다. 작가의 기민한 관찰과 묘사는 균형을 잃은 인물들에 완만한 이입을 유도하며 휘청거리는 자신을 부끄러이 직면하게 하고, 평균대를 세워놓고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것들은 바로 탈락시켰던 것은 아닌지 되짚게 한다. 이 책은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균형을 잡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완벽한 균형은 부재하나 일상의 균형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가로막지 않는 동시에 각자의 기울기를 끌어안는다. 인물들은 뭉툭한 현실을 긍정하고 때론 굴복하나 동시에 자신의 날에 맞게 깎아내는 법을 알아간다. 뚜렷하고 현명한 결론을 직달하지 않아 통쾌함도 덜 하고 ‘시원찮을’ 수 있는 이들의 삶을 그럼에도 끝내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을 통해 나의 비틀거림 역시 마주했기 때문일까, 그 또한 엄연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나아감을 포기하고 가만히 있기보다 비틀거리더라도 걸어보려 한다. 균형을 잡아보려고 한다.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계산적으로 딱 떨어지진 않더라도 슬픔으로 기울어진 만큼 기쁨이 나를 잡아당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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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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