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치열하게 기다리고 열정적으로 반복하기 [공연예술]

인생은 기다림과 반복, 무용 <Hit & Run> 공연 관람기
글 입력 2020.03.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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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의 올해의 신작 중 하나인 무용 공연 Hit & Run을 실황 생중계로 관람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공연이 모두 취소되고 실황 생중계만이 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영상으로부터 공연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했다.

 

무용 Hit & Run은 ‘치고, 던지고, 달린다. 그 안의 휴머니즘’을 모토로 삼아 야구를 통해 삶을 성찰해보는 공연이다.

 

야구는 기다림의 철학이 있는 스포츠로서, 선수들의 반복된 동작이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규칙을 알지 못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그들의 반복은 의미가 있고 동작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경기가 진행된다. 반복이 경기를 유기적으로 구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공연도 그렇다. 이 공연은 그러한 야구의 특성을 어떻게 체득했는지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 하나가 유기적으로 한 작품을 구성하고 진행에도 큰 역할을 한다. 또, 그들의 움직임은 야구의 용어를 떠올리게 하기 보다는 경기 자체의 특성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작품을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혼자다. 혼자서 어둠 속을 바라본다. 한치 앞도 모르는 어둠처럼 앞으로의 경기의 방향을 모를지라도 투수가 있는 쪽을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 점점 밝아지고, 이윽고 투수가 보인다. 경기장에는 타자와 투수뿐이다. 서로 응시하고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둘 셋, 더 많은 무리가 되고 머뭇거림은 앞으로 걸어갈까 말까 고민하듯 흔들거림으로 나아간다.


일상 속 뒤처짐과 나아감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다. 선택 하나가 현재의 나를 결정하고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모두 투수와 타자들이다. 아무 생각도 않고 사는 것 같지만 하루를 위해, 투수가 공을 날리고 타자가 공을 치는 결정적 순간을 잡아채기 위해 타자와 투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결정적 순간의 기회를 엿보며 모두 마음이 덜컹거리고 몸이 흔들거린다.

 

경기는 계속 진행된다. 당겼다가 멈췄다가 끌어올렸다가 머뭇거린다. 걸어가다가 멈췄다가 앞으로 나아가다가 뒷걸음친다. 다 제자리걸음인가 싶으면 동선을 바꾼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자리인 것처럼 보여도 방향을 바꾸기 위한 준비운동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한 걸음을 위한 도움닫기일 수도 있다. 바로 도약이다. 그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누가 될지 모른다.


반복적인 제자리걸음을 하던 누군가가 그 누구나가 될 수 있다. 제각기 누군가를 앞에 놓고 이끌어주고 이끌리고 한다. 각각의 앞에 선 저마다 도약하고 앞서나가는 사람이 저마다 바뀐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자리를 바꾼다. 달려 나가려는 자세는 같지만 각자가 마음에 담은 소망은 다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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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공을 던질 때다. 기웃기웃 나를 찾는 가회가 있나,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준비 자세와 비슷하다. 점점 다가가며 공을 던지려던 투수의 자세를 재현하며 기회를 노려본다. 자, 던지고 또 던진다. 야구장 조명 아래 어둠 속으로 공을 몇 번이고 기회를 향해 던져본다. 지쳐서 쉬고는 또 던진다. 이 거리가 혹은 저 거리가 적당한지 물러나면서도 던져본다. 기회가 괴물이라도 되는 듯이 점점 더 멀리 달아나면서 던지기는 계속한다. 이제 무언가를 무찌를 듯이 걸어 나온다. 기회가 적인가? 괴물인가? 해치워야 할 것인가? 왜 전투적인가?


기회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는 야구 경기장에서만큼은 냉철해야 한다. 경기장에서 기회는 한 번도 아니고 그 한 번을 수없이 나눈 하나의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때껏 방향을 살피는 응시와 머뭇거림, 제자리걸음으로만 보이는 움직임, 공을 있는 힘껏 던지는 행위가 계속 되었다. 그것이 원하는 것에 상응한다고 단정 짓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야구는 던져진 공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경기가 지속되는 시간 동안만큼은 믿고 싶다. 그것이 이를 악물고 기회를 매섭게 노려봐야 하는 이유이다. 야구장 조명은 붉어지고 이것이 전쟁과 같은 피의 사투라도 되는 양 무리는 열과 성을 다하다 뒤돌아선다.


다른 기회를 향해 서성거린다. 다른 쪽에서 야구장 조명이 켜진다. 조명 너머를 바라보며 이리 걷고 저리 걷는다. 또 다른 기회는 계시나 다름없다. 나의 기회는 어디에, 라고 다들 자문하다가 쓰러지듯 눕는다. 닿으려고 하지만 발에 땅을 딛고서는 닿을 수가 없는 듯하다. 기회를 관찰하고 나를 관찰하고 노력을 해본다. 움트려는 발바닥의 발돋움이 애잔하다. 스스로 구르며 괴로워한다. 느리고 느린 동작 하나마다 고뇌가 느껴진다. 야구장을 몇 번을 굴렀던가. 기회를 찾아 헤매다가 또 서성인다. 또 다른 기회를 향해 돌이든 공이든 던질 준비를 한다. 이번엔 반대쪽이다. 있는 힘껏, 던져본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듯이.


이제 벤치에 앉아 저마다 휴식을 취한다. 짧은 휴식도 잠깐, 모든 야구경기가 그렇듯 정해진 쉬는 시간이 지나면 경기는 재개된다. 휴식하는 동안에도 야구장 조명의 밝은 불빛은 눈이 부시게 여전하다. 눈이 부시게 빛이 나더라도 기회는 야구장 조명의 밝은 불빛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야구의 규칙과 경기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은 경기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물구나무 선 사람의 곁에 앉고 그 위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 그렇게 서로를 엿보며 경쟁하다가 일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동작은 점점 복잡해지고 움직임의 단계가 초반보다 많아진 것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들어가기 시작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흡사 투쟁과도 비슷한 경기를 계속해 나간다. 넘어진 사람은 발밑에서 구르는데 서 있는 사람은 던질 준비를 한다. 발밑에서 넘어진 사람이 몸을 굴리며 분투한다. 바닥에 있는 사람은 홈을 향해 어깨가 찢어져라 팔을 뻗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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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홈에 닿는다. 넘어진 사람이 홈에 닿고 일어나기 전의 순간 오랫동안 정적이 흐른다. 이제야 닿을 수 있게 되었다는 듯이, 거봐라는 듯이 그는 온 세상을 향해, 관중을 향해 소리치는 대신 가만히 엎드려 홈의 감촉을 누운 몸에 새긴다. 그는 홈에 온몸을 맡긴 채 누워 있다. 이것은 휴식으로서 주어지는 보상이 결코 아니다. 홈에 도달한 것은 만루 홈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홈에 닿고서야 다시 일어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 명은 타자가 되고 한 명은 투수가 된다. 9회 초 만루 홈런도 잠깐, 이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러 바지에 묻은 벤치의 먼지를 툭툭 털고 가장 중요한 9회 말로 걸어 나가야 할 때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몸짓에 따라 야구 경기의 흐름을 보듯 하나의 무용 작품을 관람했다. 몸짓은 강렬했으며 정지된 동안의 정적에마저 긴장감이 돌았다. 이러한 작품 속에서 인생과 야구를 표현한 무용수들에게도, 그것을 관람한 관람객에게도 작품 자체의 긴장감 밖에서 공통적으로 더 긴장해야할 요소가 있다. 인생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9회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이제 다 왔다 싶은데도 아직 중요한 무언가가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경기 시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지치지 않고 달리고 던지고 칠 순간만을 기다려야만 한다. 원하는 순간에 닿을 때도 있다. 야구는 기다림의 연속이라서 다음 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하는 순간에 닿을 때도 공연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야구와 같다. 기다림과 반복의 연속이다. 그 기다림과 반복의 치열함 속에서도 우리는 하루의 시간을 채우고 또 채운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의 홈그라운드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경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것이 아닌가? 치고 달리고 던지는, 또 그 행위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리는 우리는 영원히 홈그라운드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친 선수가 되는 것이다.


 

***

저작권 문제 상 무용 공연 사진을 전할 수 없어 이 작품이 은유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인생은 야구'라는 비유를 따라 야구 경기 사진을 게재합니다. 또, 무용 사진은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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