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민감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도서]

글 입력 2020.03.0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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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하다’는 주로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다. 왜 그렇게 예민하니,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니 등, 남들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을 왜 구태여 어렵게 해석하느냐는 뜻이 내포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감정보다 이성이, 감수성보다 효율성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하느라 진을 빼기도 한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쳐 그 안에서 허우적대거나, 그런 감정마저도 억누를 경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무감각해져버리는 불감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어찌 되었든 민감한 사람이 민감한 사람대로 살아남기란 참 힘든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예민하고 민감한 정서적 특징이 꼭 단점이 되리란 법도 없다. 사회의 변화나 주변인의 변화, 아울러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 자신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채고 행동하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큰 장점이다. 특히 격변하는 21세기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빠르게 알고 그에 대비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리더로 자격이 충분하다. 또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에게 쉽게 공감해줄 수 있고, 남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은 재능이다.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가장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도 둔감한 사람들이 아니라 민감한 사람들일 터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사회는 민감한 사람들이 살아남기에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약간의 감수성만 더해져도 ‘오글거린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출하면 ‘그것도 참지 못하느냐’며 면박을 주는 사람 등 우리 사회는 감정에게 참 야박하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낸다면 그것도 문제일 터지만, 그것은 감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화의 문제이니 맥락이 다르다. 슬퍼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을 때 충분히 기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며 오글거리는 일도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그 자체로 미성숙한 옹알이쯤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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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민감한 사람이 사회에서 살기 힘들다면 사회를 바꾸는 것이 맞겠으나, 절이 싫다고 절을 뜯어 고치기에는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차라리 중이 절에 적응을 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떠나기에도 용기가 조금 부족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민감함과 감수성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기에 잘만 다스린다면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잘 갈고닦지 못하면 그 뾰족한 칼날은 나를 향하겠지만, 조금만 마음을 다스리면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아는데도 우리는 실천을 못한다. 방법도 모르거니와 수 년 간 민감함과 동거한 사람들에게 민감함은 골칫덩어리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둔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만 잔뜩 가지고, 오늘도 수많은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해 밤잠을 설친다.


그런 사람을 위한 지침서가 바로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이다. 나 역시 감정에 휩쓸려 우울에 빠지거나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았고, 일상에 지장이 올 만큼 기력을 잃었던 적도 있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 마음만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지만,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대해서 알고 싶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이 책의 저자가 나의 일상을 꿰뚫어보고서 이 책을 작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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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에서는 민감함에 대해서 파헤치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과 이성적으로 선택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법을 다룬다. 무엇 하나 나에게 불필요한 것이 없었다. 특히나 실패에 대처하는 법, 정체성을 확립하는 법,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법은 언제나 조언이 필요했던 분야였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의 경우 너무 큰 그림에만 집중한 나머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예컨대, 신입생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의대에서 소화하게 될 학업량을 떠올리며 자신이 진짜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식이다. 일곱 살 아이가 <모비 딕>을 읽을 걱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철자를 하나씩 배우듯 한 번에 하나씩 착실하게 나아가면 아무리 커다란 문제라도 결국 해결할 수 있고,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250쪽)

 


내게 무기력이 찾아오는 징조는 꽤 단순하다. 평소 잘 해오던 일이 갑자기 태산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마구 샘솟는다. 이 뒤로는 아주 가벼운 일, 예를 들어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 일조차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는 과업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러한 무기력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달 정도 지속되어 가끔 나의 일상을 망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나와 있듯이, 무기력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를 세분화하는 것이다. 오늘의 목표는 빨래 널기, 내일의 목표는 세 끼 챙겨 먹기, 등 아주 작고 사소한 일부터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면 무기력은 생각보다 빠르게 소멸한다. 결국 나의 마음을 챙겨야 일상을 챙길 수 있고, 일상을 챙겨야 미래를 걱정하든 기대하든 앞날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중간 중간 독자의 상태와 성향을 체크할 수 있는 설문 항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자신의 상황에 딱 맞는 해법을 찾아 읽을 수 있다. 또 매 장마다 짧은 요약이 덧붙여있어서 책읽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요지는 민감함을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감정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제는 뻔하지만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뻔하지 않다. 민감한 사람이 독자인 만큼, 책의 구성도 치밀하고 친절하다. 머리로는 되는데 행동으로는 되지 않았던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세상의 모든 민감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그날까지.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지은이: 캐린 홀
 
옮긴이: 신솔잎
 
출판사: 빌리버튼

분야
인문학
심리

규격
130X200mm

쪽 수: 348쪽

발행일
2020년 02월 07일

정가: 16,000원

ISBN
979-11-88545-77-3 (03180)
 

 




지은이 캐린 홀
 
캐린 홀은 휴스턴에 위치한 변증법적 행동치료 센터(Dialectical Behavior Therapy)의 센터장이자 미국 경계성 성격장애 협의회(National Education Alliance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이사회 멤버이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아동 및 청소년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행동 및 인지치료협회(Association of Behavior and Cognitive Therapy)의 멤버이자 휴스턴의 정신건강 단체 NAMI의 교육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캐린 홀은 [The Power of Validation자기 확신의 힘(국내 미출간)]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며, 휴스턴에 가족 치유 컨퍼런스(Healing Hearts of Families)를 창립했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팟캐스트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람The Emotionally Sensitive Person>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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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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