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의 그림정원] 유럽여행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 #2

16박 17일의 여행을 끝내며
글 입력 2020.03.0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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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쯤, 아버지께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그랜트 카돈(Grant Cardone)의 <20대 돌아보며 후회하는 4가지>이라는 칼럼을 내게 보여주셨다. 자극적인 제목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혹여나 나의 20대를 설명하고 있진 않을까 싶어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의 칼럼에서는 '아니, 이건 당연한 거 아냐?' 소리가 나올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단 한 가지 '여행' 빼고.

 


요즘 20대 청년들은 여행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하기 싫은 일을 한 대가를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다.

 

젊을 때 다양한 나라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에 돈과 시간을 써봤자 나이 들어 남는 것은 추억과 추억하는데 필요한 사진뿐인 경우가 많다.

 

사실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나는 단지 '기성세대가 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들었던 반감(네가 뭔데?)을 잠시 가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그래 취업이 우선이지.


그렇게 나에게 여행이란, 그냥 돈 많은 사람들이 괜히 놀고 싶은데, '여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를 알기 위한 여행'이라며 포장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


그렇게 여행에 뜨뜻미지근했던 나를, 친구들은 어르고 달래 결국 유럽에 데려다 놓았다. 사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까지도 그리 신나지 않았다. 그냥 어찌 되었든 항공권을 예약했고, 숙소를 예약했고, 그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 그거 말고는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아주 침착했다.


하지만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해 나를 반기는 'PARIS Aéroport'를 본 순간,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드럽고 빠른 프랑스어, 여기저기서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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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천문탑에서 내려다본 전경
 

그래. 카돈은 틀렸다.

'어렸을 때의 여행이 돈 낭비'라는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정답인 양 글을 써 내려갔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좋아할 수 있었던 나에게, 여행에 대한 설렘을 선사해 주지는 못할망정, 나의 여행관(?)을 더렵혀놓았으니 말이다.
 
 ***
 

공항에서 잠시뿐일 줄 알았던 여행의 설렘은 계속됐고, 설렘은 대담으로 이어졌다.

 
'저녁 먹고 화이트 에펠 함께 보실 남자 세분 구해요!'
 
여행을 오니 겁이 없어진 걸까? 아니면 겁 없이 여행을 온 것일까? 가장 가입자 수가 많다는 유럽여행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온라인에서 연락을 주고받아 오프라인에 만나다니. 겁이 많은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중에 잠수를 타진 않을까, 혹시 소매치기를 하려고 하진 않을까 등 여전히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대담하게 진행했던 세 번의 동행은 별일 없이 무사히 진행되어, 결국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되었다.


단순히 내가 인복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말도 잘 통하고, 유난히 착한 친구들이 내 게시글을 보았던 것일까? 어쩌면, 별 탈 없이 다들 즐겁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내가 너무 무섭게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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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버스커들
 
 

그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좀 더 깊어질 때쯤, 여행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로 이루어진 우리의 16박 17일은 정말이지 숨 쉴 틈이 없었다. 파리의 사랑스러운 미술관에 흠뻑 취하기도 잠시, 런던의 악덕스러운 날씨를 마주해야 했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오스트리아를 지나, 마지막 여행지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프라하까지.

 
그중 만났던 자유로운 영혼들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몸소 보여주었다. 관중이 없더라도 마음껏 예술행위를 펼치는 퍼포먼스들, 반대로 많은 관중들 앞에서도 긴장한 기색 없이 능숙하게 연주를 해대는 버스커들,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젤을 펴놓고 스케치를 하는 사람. 화려한 핑크색 상하의를 맞춰 입고 다니는 여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들을 보며, 나와 어울리지 않을까 봐 매직 펌을 하는 것조차 망설였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 없는 이곳에 와서, 한국 남자아이들을 만나 동행을 하고, 뮤지컬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재즈 바에 놀러도 갔는데.

 
과연 내가 좀 더 대담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꿈같은 유럽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한국도 그저 꿈같은 여행의 연장선이었으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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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예연

파리의 거리 악사들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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