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도서]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의 어른이 되면을 읽고
글 입력 2020.03.0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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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지칠대로 치진 부모님의 고통과는 별개로 혜정이의 삶은 그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세계로 명백히 격리되었다. 갑작스러운 격리에 저항할 기회는 혜정이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이 결정을 오랜 시간 온몸으로 책임져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혜정이었다.

 

혜정이는 줄곧 그 시설에 붙박여 있었다. 혜정이의 삶은 그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세계로 명백하게 격리되었다. 갑작스러운 격리에 저항할 기회는 혜정이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법학도로서 인권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있었지만 장애 인권에 대해서는 심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해외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장애인 센터에 가서 봉사해본 경험과 학교 축제 부스에서 장애 관련 부스를 운영한 경험이 가장 장애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연히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장혜영)’ 의 영상과 책을 본 후로 나의 생각은 180도 달라지고 깊어졌다.

 

이 책은 13살 때부터 18년 동안 시설에 갇힌 삶을 살아온 동생을 서울로 데려와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과정에 대한 에세이이다. 시설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동생을 시설에서 데려와 동생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보며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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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생각많은 둘째언니 채널 영상들



혜정이가 아직 시설에서 생활할 무렵, 나와 함께 종종 외출할 때가 있었다. 혜정이는 가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스물을 훌쩍 지나 서른이 가까워오는 혜정이의 입에서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간 혜정이가 살아온 시간이 어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시설에서 나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혜정은 더이상 어른이 되면 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면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혜정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면 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이미 서른살에 가까운 어른이기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산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들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일어나는 시설 속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단순히 장애의 어려움, 힘듦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내용이라 더 와닿았다. 우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


책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나에게 다가왔던 일화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발달장애 아동이 공연 중 소리를 질러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갔던 일화이다. 장애인의 문화 향유 권리에 대한 문제였다. 공연장에서 어셔를 하면서도 종종 생각해봤던 문제이기도 하다.


클래식 공연의 경우에는 아주 작은 헛기침 소리, 움직이는 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지기에 모두가 숨죽이며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상태인데 만약 해당 일화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소리를 내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했었다.


저자는 말한다. 왜 수많은 문화예술 현장에서 장애인을 찾아볼 수 없을까? 왜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가 일상적이며 자연스럽지 않고 매우 특수한 일처럼 간주될까? 우리는 비장애인들이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난동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비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사전에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대결 구도에 선 존재가 아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으나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책에는 서울시향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온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개최하였다고 한 내용이 담겨있다. 찾아보니 현재는 서울시향 현악 단원들과 발달장애인 연주자의 1:1 매칭을 통해 함께 연습하여 장애인이 직접 공연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급진적 변화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점진적 변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최근에 코로나19의 사망자가 나온 청도 대남병원 시설의 내부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열악한 시설과 방치되어 있던 환자들. 이것이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사망자는 무연고자로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대남병원에서 오랜 기간 지내오다 코로나19로 사망하였다.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그의 사망 소식이 만약 코로나19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조명받을 수 있었을까? 이다.


아는 사람도 없이 열악한 시설 속에서 살다가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년간 지역사회와 단절되어있었고, 죽음 당시 몸무게가 42kg였던 그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이 있을까. 차별과 편견 더 나아가 폭력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할 수는 없을 것인가? 우리 모두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책을 읽음과 동시에 거대한 현실을 마주하며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보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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