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소설 읽기 - 01. 침묵의 미래 _ 김애란 [도서]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3.06 01: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그들에게 미소로 답한다. 그게 우리의 직업이었으니까. 웃는 것, 또 웃는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


p.133 / 《바깥은 여름》 

 


소설을 읽고, 이전에 썼던 서평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 당시의 감정,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싶어서. 일 년 전의 글이라 잔뜩 오글거리는 문장에 몸들 바를 몰랐지만, 전체적인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잔잔하지만 서늘한, 시린 이야기들.

 

 

1.jpg

 


<침묵의 미래>는 정확하게 책의 가운데에 위치한 소설이다. 이 녀석을 가장 먼저 읽은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시선이 갔다. 소설은 사라져가는 소수의 언어들을 모아 보존하는 ‘중앙’의 언어 박물관을 배경으로 삼는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을 ‘영’이라 칭하는데, 처음엔 단순히 누군가의 영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몸담았던 육체를 향해 사람이 아니라 ‘화자(말하는 사람)이라 칭하는 모습이 어색하고 껄끄러웠다. 사라져 가는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저 전시용 상품에 지나지 않고, 스스로조차 그리 자신을 멸시하는가 싶었다.


마치 우둘투둘한 바닥을 만지듯 어딘가 어색하고 이질적인, 그런 기분.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 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p.132 / 《바깥은 여름》



언어 박물관을 운영하는 ‘중앙’은 권력자다. 애초에 중앙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권력이라는 뜻이 내포 되어있다. ‘중앙’은 자신들의 언어인 ‘중앙어’를 내세우며 소수 언어들을 가장자리로 몰아간다. 사라져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잔존하는 자, 미처 사라지지 않은 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 꺼질 지 모르는 가느다란 촛불이며 늘 위태롭게 일렁인다. 이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소설의 화자인 ‘영’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생존자의 영혼이자, ‘어떤 언어’ 그 자체였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혼이었다. 그제서야 왜 ‘영’이 제 스스로를 ‘화자’로 칭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은 본디 ‘어떤 언어’ 그 자체의 함축이었으나, 그 언어를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사람이 단 한 명 밖에 남지 않았기에 ‘영’은 언어 그 자체, 그리고 그 언어를 말하는 유일한 사람(단 한 명의 화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곳 화자들은 중이염이나 관절염, 치매, 백내장 외에도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건 말을 향한,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이다. 이들은 과거에 들었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았을, 몇몇 밋밋하고 순한 단어 앞에서 휘청거렸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네 나라말로 무심코 ‘천도복숭아’라고 말하며 울고, 어떤 이는 ‘종려나무’라고 말한 뒤 가슴이 미어지는 걸 느꼈다.


p.142 / 《바깥은 여름》



그에게 모어(母語)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데 실패했다.


p.142 / 《바깥은 여름》



그제서야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어긋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찌될까.

 


난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그 낱말을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 (중략) 내 몸은 점점 붇고 이름 또한 길어져, 긴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됐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 쓸모있는 죽음, 단지 그 뿐인 채로 사라진다.


p.145 / 《바깥은 여름》



이 소설은 차갑다. 눈살이 찌푸려지도록 냉혹하다. 다만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언어를 어루만지는 문장들이 아름다움을 빚는다. 김애란 작가는 활자로 감촉을 표현해내는 장인이다.


스산하고 서늘한, 그러면서도 한 구석이 아려 오는 감촉이 전체적인 서사를 어루만진다. 미세 하게 언어를 다루는 특유의 섬세함이 잔뜩 찾아온 더위를 식혀주었다. 덕분에 활자에 둔감해졌던 내 감각도 조금은 예민하게 돌아온 기분이다.

 


[한나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