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려한 그랜드 피날레, 뮤지컬 "아이다"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3.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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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명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이하 <아이다>)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고 막을 내렸다. <아이다>의 그랜드 피날레를 응원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2019-2020년도 <아이다>는 그런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반제국주의적 시각이 녹아 있는 섬세한 각본을 윤공주, 정선아 등의 국내 최정상 배우들이 연기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이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단순하고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는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속에서 사랑을 꽃피우는데, 두 사람은 지도자로서의 책무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후자를 택하고 같은 무덤 속에 묻힌다. 인간 내면에서 충돌하는 사회적 의무와 개인의 욕망, 그리고 그 충돌 사이에서 인간이 행하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뮤지컬 <아이다>는 언뜻 보기에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적 갈등의 주체가 어린 여성인 아이다라는 점과, 장면과 장면 사이사이에 자리하는 안무나 조명 효과, 무대 미술 등의 다채로운 볼거리가 다소 헐거울 수 있는 작품의 서사를 메운다. <아이다>에서는 대사나 노래 없이 댄서들의 춤만이 종종 긴 시간 동안 공연되는데, 이러한 장면들을 볼 때에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얼핏 지루할 수 있는 서사를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신나는 음악으로 보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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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품의 각본에서 드러나는 반제국주의적인 시각 역시 서사의 빈틈을 메운다. 가령 누비아인인 아이다는 이집트인인 라다메스가 ‘이곳(누비아)은 이집트와는 많이 다르다’고 말하자 ‘이집트가 이곳(누비아)과 다른 것’이라고 대꾸한다. 대사에 세심하게 녹아든 창작진의 가치관은 작품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대사에 귀기울이게 한다.


<아이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여성 주인공의 폭발적인 에너지이다. 아이다 역을 맡은 배우는 ‘Easy As Life’나 ‘The Gods Love Nubia’와 같이 역동적이고 격정적인 넘버를 소화하며 자신의 역량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아이다와 함께 무대를 채우는 앙상블은 그러한 아이다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며 아이다를 사랑의 객체가 아닌 모험의 주체로 세운다.


아이다는 강인하고, 용기 있고, 똑똑하다. 아이다는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할 때 그저 절망하거나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아이다는 시련을 마주할 때마다 라다메스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을 내린다. 자신의 선택 앞에서 당당한 아이다는 연인인 라다메스에게도 자신이 사랑 대신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 아이다는 다른 사람들, 가령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나 절망에 빠진 누비아의 포로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현명하고 여유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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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다에게 ‘기습 키스’를 하거나,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면서 아이다를 협박하는 라다메스의 태도는 작품에서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마음만 먹으면 남성으로서의 힘과 장군으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이 여성 노예인 아이다를 정복,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라다메스와 달리 아이다는 사람의 마음을 능히 다룰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이다의 건강한 에너지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 인물들(주로 전쟁을 치르는 전사나 장군)의 폭력성을 뛰어넘는다. 이렇게 <아이다>는 관객에게 여성 캐릭터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건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작품의 또다른 여성 캐릭터 암네리스에 대해서도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우선 세 주인공 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가 전형적인 ‘삼각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다>에는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두 여성이 서로 질투나 경쟁, 복수를 하는 장면이 없다. 이는 다른 뮤지컬과는 구분되는 <아이다>만의 특징인데, 이러한 설정은 창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 생각한다.


암네리스는 외모를 꾸미는 데에만 관심을 쏟던 ‘철없는 공주'에서 현명한 왕으로 변모한다. 암네리스는 자비를 베풀어 이집트를 배신하고 누비아의 왕을 살려준 라다메스와, 자신과 같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숨긴 친구 아이다를 사형시키지 않고 두 사람을 한 곳에 묻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전쟁과 약탈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에 눈을 뜨고 선왕이 되어 이집트와 누비아 사이의 전쟁을 종식시킨다. 암네리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한다. 이렇게 작품은 암네리스를 남성 캐릭터에게 선택 받지 못한 비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닌, 내적 성장을 이루는 발전적인 인물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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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이다>의 안무에 포함되어 있는 성차별적 요소를 짚어두고 싶다. <아이다>는 제 4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앙상블 상을 수상했을 만큼 앙상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화려한 안무를 자랑하는데, <아이다>가 선보이는 안무는 다분히 성차별적이다. 남성 댄서들의 안무가 수직적인 춤선과 절도 있고 역동적인 아크로바틱으로 구성되는 반면, 여성 댄서들의 안무는 여성의 신체 굴곡을 강조하는 춤과 의상으로 구성된다. 특히 암네리스의 ‘My Strongest Suit’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패션 모델들의 의상 교체 장면은 여성 배우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아이다>의 한국 프로덕션은 다섯 번의 시즌을 지나오면서, 아이다가 라다메스에게 극존칭이 아닌 반말을 쓰는 것으로 극의 설정을 바꾸는 등 작품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디즈니가 기획 중에 있는 <아이다>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기대된다. 새 프로덕션의 주요 크리에이티브 팀이 여성 예술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 프로덕션의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채운, 새로운 버전의 <아이다>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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