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소한 상상,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글 입력 2020.03.04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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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손바닥보다 조금 크다. 재질은 말랑하고 종이는 빳빳하다. 주머니에 속 들어가는 크기라 전철에서 읽기 좋다. 저자 심너울은 심리학과 졸업 후, 기나긴 레그레이즈 수련 끝에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산물이 이 SF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이다. 안전가옥 출판사의 쇼-트 시리즈 첫 번째 선집으로 출간됐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부 흥미로우면서도 한국적이다.

 

 

 

1. 정


 

어느날 마포구와 서대문구에서 사람들의 청력이 사라진다. 정적 구역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주인공 역시 난데없이 맞이한 정적에 당황하면서도, 차차 적응한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주인공 '나'는 수어와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발견한다. 모두가 들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통해 두 세계(건청인과 농인)를 만나게 하는 방식에서 사회를 생각하는 저자의 시선이 돋보인다.


하지만 '청각장애'라는 소재가 상투적으로 쓰인 점은 아쉽다. 비장애인의 관심을 반가워하고, 사회의 차별과 상스러움, 소외감에 상처받는 위치의 인물로서 청각장애인을 사용하는 건 쉬운 해결책이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의 문화는 그 자체로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두 사람이 친해지는데 굳이 장애/비장애라는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그 난관을 넘어서는 선한 마음씨가 필요하진 않다.


특히 마지막에 인물들이 만나 우는 장면은 처량함을 강조하는 것 같아 낯간지러웠다. 피상적인 관계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정적을 통해 진정 대화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한 주인공의 설렘은 귀엽고, 공감간다.

 

 

 

2.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악명 높은 경의중앙선. 나는 자주 이용하진 않지만, 경의중앙선의 연착은 유명하다. 이 단편은 경의중앙선의 연착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원념이 역에 묶여있다는 독특한(하지만 그럴듯한!) 발상을 다룬다. 통근, 통학. 전철을 타기 싫어도 타야만 하는 불쌍한 원념들은 기나긴 연착으로 인해 역에 뭉텅뭉텅 쌓인다.


약간 음산하고, 적당히 웃긴 이 작품은 현실과 착 달라붙어 있어서 가엽다. 서울중심주의가 너무 강력한 탓에 버스나 전철이나, 경기도민은 고통받는다. 각자가 도착해야 할 역을 부르짖으며 우는 영혼들의 대사를 보면서 킬킬 대다가도 그 곳을 탈출하려는 주인공의 사투에 다시 집중하며 빠져든다.

 

이런 고달픈 원념들을 달래는 방법은 깔끔하게 열차 배차를 늘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2년 여의 사투 끝에 적당한 보상을 얻는다. 만약 이 단편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정말로 경의 중앙선 어딘가에 신음하는 영혼들이 있을까/될까 두렵다면 주인공의 방식대로 열심히 코레일에게 건의해야 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사람들이 계속 통근 시간에 무의미하게 영혼을 소모해 버린다면, 머지않아 고통받는 교통-원념은 경의중앙선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3.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일주일에 단 하루만 기억할 수 있다면? 9급 공무원 김현은 금요일을 가장 사랑했지만, 어느 날부터 금요일을 제외한 날들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마냥 좋을 것 같은 금요일에 묶여버리면서, 그의 삶은 어그러진다. 과연 의식이 꺼진 동안의 삶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현은 그가 원해서 일주일에 6일을 '전원 꺼짐' 상태로 있고자 했지만, 곧 기억을 잃고 뭔가 고장났음을, 정상이 아님을 깨닫는다.


영원히 금요일만 계속되었으면!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 무료한 업무. 금요일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해볼만한 깜찍한 공상이다. 하지만 삶에는 연속성이 필요하다. 원하는 날만 골라 깨었다가, 나머지는 의식 없이 살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김현의 선택이 참 이해가지 않았다. 사는 게 피곤해서 일주일 중 하루만 살고 싶다면 왜 주말을 고르지 않았을까? 토요일은 완벽한 선택이다. 오늘도 휴일이고, 내일도 휴일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6일을 잠들고 싶을만큼 고달프면 아예 영영 잠드는 방법도 있는데 왜 그건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선택을 하니까 영 껄쩍지근한 결말이 나오지 않나. 의식론 연구소가 하는 실험은 인간-로봇을 한 육체에서 구현하려는 것 같은데, 인간은 로봇이 아닌데 어떻게 의식 없이 움직이고 일할 수 있을까? 도통 상상이 안가 궁금하다. 작가의 반짝이는 필력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풀기를 기대한다.

 

 

 

4. 신화의 해방자 / 최고의 가축


 

두 편 모두 '서울에 용이 산다면?'이란 흥미로운 주제를 가벼우면서도 세심하게 풀어낸다. 전자는 용과 인간이 서로 의지해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희망찬 내용인 반면, 후자인 <최고의 가축>은 430년 간 잠들어 있던 용이 현대에 깨어나 다시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내용이다.


용은 관악산에 산다. <신화의 해방자>에서 마력이라는 소재가 신자유주의 체계 안에서 얼마나 삭막한 취급을 받는지 읽다보면 서글퍼진다. 작품 속 한국은 너무나 한국적이라 꿈과 희망보다는 불안과 위기 의식으로 위태롭다.


하지만 용순이를 만나고부터 유소현은 조금씩 각박한 사회 통념에 반항한다. 믿던 소현에게 날개를 찔리고 나서도 그를 구해주는 용순이의 애정은 감동적이다. 유소현을 옥죄고 있던 믿음, 압박,불안은 용순이의 장엄한 날개짓에 밀려나고 그의 몸은 두둥실 떠오른다. 좁은 방 안에서 의지하고 살던 두 생물이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니, 상냥하고 아름다운 결말이다.

 

<최고의 가축>의 결말은 조금 암울한데, 430년의 숙면 끝에 깨어난 용이 위어있게 동굴 밖을 나섰다가, 다시 꼼짝앉고 동굴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430년 후의 한국은 더이상 전설따위가 힘을 발휘할 세상이 아니다. 힘은 기업, 기술, 과학에 있다. 전근대적 존재인 용은 지혜와 능력이 있음에도, 또는 있기 때문에 굳이 이 세상의 변화에 반항하지 않는다.


씁쓸한 결말이긴 하다만, 시대의 문물에 빠르게 적응하는 용을 보는 재미가 있다. 신기한 건 과거에는 책을 이용해 지식을 얻었던 용이 430년 후에는 많은 컴퓨터의 영상과 글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건 책의 내용물이 컴퓨터 화면으로 대체된다는 것인데, 그 둘의 정보의 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재에도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있는데 용은 더 이상 책에 관심이 없는 걸까? 용이 성급하게 밖에 나가 참패하고 돌아온 데에는 이런 피상적인 정보만 접한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이상 용을 떠받들지 않는(대신 관리한다) 세상에서 전설적 존재가 해야 할 일은 읽고 공부하고, 심중을 따지는 일이다. 성스러움이 사라진 세계에서, 세계는 오직 인간과 가축(짐승)으로 나뉘는 걸까?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가의 상상력이 빛나는 단편집이다. 공상이 가미된 서울을 읽는 건 재밌고, 깔끔한 문장 덕에 페이지가 훌훌 넘어간다. 기나긴 통근 시간이 무료하고,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람을 애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돈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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