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 - KBS 모던코리아 [TV/드라마]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다큐인사이트 모던코리아
글 입력 2020.03.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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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목요일, 다시 한 달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이켜본 2월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자리하는 아쉬움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설 연휴 즈음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필요한 일 아니면 외출을 최소화하며 조심했던 날들을 보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더 고민이 들었다. 조심히 지내면 곧 잠잠해질 줄 알았건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동시에 한 종교단체와의 연관에 대한 사실이 드러나며 사태가 더 악화되는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미 여러 일정에 차질이 생겼던 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은 분명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외출을 자제하고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하나. 한숨을 쉬며 뉴스를 본 후 일을 보던 차, 끄지 않은 텔레비전에서 이어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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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모던코리아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

 


이런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마침 이 시점에 방송된다니 타이밍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가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할 때 진정으로 믿는 이들은 하늘로 승천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 휴거가 바로 그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과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와 관련 촬영물의 편집 교차로 진행된다.

 

휴거 소동이라는 주제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데, 다큐멘터리의 구성도 독특했다. 휴거를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와 그 신자들만을 단편적으로 조명한 것이 아닌 당시 사회의 성장과 함께 시민들의 삶에 종교가 어떻게 크게 자리하게 되었는지, 휴거와 같은 종말론에 많은 이들이 빠지게 된 배경으로 유럽 연합의 탄생과 걸프전과 같은 국내외적인 상황에 대하여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 뉴스 등 다양한 당시 방송 영상을 이용해 보여준다.
 
하나의 주제에 맞게 다양한 영상을 활용하는 것 외에도 인상 깊었던 점은 90년대 당시 뉴스에서 신도들이나 시민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방송했던 것을 다큐멘터리에서는 화면에 하얀 가로줄을 그어 얼굴을 가렸다는 점이다. 초상권 보호 및 시간이 흘러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시 신도들에 대한 배려이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를 끝날 때까지 집중하며 시청한 것이 꼭 현 시국과 관련됐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독특한 구성의 이 시리즈가 또 어떤 주제를 다루었을지 궁금했기에 오랜만에 KBS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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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archive)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기록을 보관하다, 기록보관소라는 결과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보의 창고나 역사적인 기록 보관 외에 컴퓨터 데이터 보관에도 쓰이는 단어다. KBS는 2018년부터 아카이브 활용 사업을 시도하며 방송사 제작 관련해 획득한 콘텐츠를 다시 다양한 제작 및 부가 서비스 이용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1983년 연속특별생방송 이산가족찾기의 에피소드 영상들도 그 일환 중 하나이다.


90년대 음악 방송 실시간 라이브 중계가 인기를 얻고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연예인들이 다시 재조명되는 시점에서 이런 아카이브 활용을 통해 과거의 산물이라 여긴 영상기록물이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공개되는 영상물들은 이를 직접 방송으로 보았거나 그 시대를 겪었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하며, 젊은 세대에게는 몰랐던 과거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던코리아는 일반적인 아카이브 활용 사업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아카이브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과거의 영상물을 활용해 다큐멘터리를 진행하지만 어쩐지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에 그래, 예전에 저랬지 하며 티비를 끄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아닌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점철된 다양한 과거의 모습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살아가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떠올려 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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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88/18"

 

 

모던코리아는 KBS의 수십 년간의 아카이브 영상을 활용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1980년대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우리의 소원은”으로 시작해 한국 종합무역상사인 대우그룹의 성장과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담은 “대망",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며 두 번의 수능을 치렀던 1994년의 풍경을 담은 ”수능의 탄생“ 이렇게 3편이 지난 2019년 가을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올해 2월에 다시 방송을 재개하며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와 당시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의 사회상을 다룬 ”시대유감, 삼풍“을 4번째 편으로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해태 타이거즈와 광주의 이야기 ”왕조“,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 이렇게 여섯 편이 방송되었다.

 

총 6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리즈의 원 시작은 2018년 88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88/18"이다. 이후 “모던코리아”가 탄생하게 된 계기로 해당 시리즈 제작에 중심을 맡고 있는 이태웅 PD는 한 인터뷰에서 올림픽 관련 다큐를 만들다 보니 KBS에 자료가 많은데 이를 더 과감하게 활용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진이 공영방송이 보관한 수많은 자료들을 과감하게 활용했다는 점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관심이 많아 해외에서 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시대유감, 삼풍"에서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각도에서 촬영한 사고 현장이나 관련 장면들이 화면에서 펼쳐진다. 그를 보고 있자면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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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모던코리아 "우리의 소원은" 中

 

 

모던코리아가 다른 다큐멘터리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내레이션의 부재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서 관련 영상 및 자료가 나올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성우 또는 진행자의 설명이 없다. 뉴스,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영상 외에도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일명 비하인드 영상과 관련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가 교차로 이어질 뿐이다. 가장 최소한의 안내를 위한 자막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런 진행을 보아 일방적인 어느 한 의견으로 치우지는 방향이 아닌 최대한 중립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4편 "시대유감, 삼풍"을 예시로 설명하자면, 당시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 및 부실 공사로 인한 한국 현대 건축사의 명암도 조명한다. 또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지검 형사, 경찰 및 응급실에 근무했던 간호사와 구조 활동을 진행하고 지원했던 이들, 사고 유가족 그리고 삼풍백화점 이한상 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건 당일 경영진들이 자신들만 오전 중에 백화점을 빠져나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다큐는 분명히 짚어낸다. 그리고 유가족과 이한상 사장이 25년 만에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까지 보다 보면 25년 전의 이 비극적인 사고가 과거만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고찰하게 된다.

 

이렇게 진행하는 다큐를 보고 있자면 꼭 마인드맵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에 두고 당시 사회의 모습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주제를 보는 다양한 각도의 관점이 꼭 중심 이미지에서 점점 가지를 뻗어가는 모양과 같다. 마인드맵은 말 그대로 생각의 지도라는 뜻으로 지도를 그리듯이 생각을 이미지화한다는 두뇌 개발 기법이다. 모던코리아의 6편의 주제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서로 다른 주제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은 결국 우리 현대사의 명암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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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모던코리아 "대망" 中

 

 

KBS 모던코리아는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 이후 올가을에 시즌 2로 방송을 이어간다고 한다. 재점검을 가진다는 것이 시청자로서 아쉽지만 기다린 시간 이후 마주할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일명 날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과거 흔적들이 담긴 다큐멘터리는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에서 저 흔적은 이어지고 있는지, 미래에도 계속 자리할 것인지 고찰하게 한다.

 

편견인 줄 알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주제와 그에 따른 영상을 보면 모던코리아의 중심인 이태웅 PD가 스포츠국 소속이라는 점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올림픽을 주제로 한 스포츠 다큐였지만 KBS 아카이브의 자료가 다양히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하기에 해당 기획을 하게 되었다는 이태웅 PD가 앞으로도 그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독특한 결과물을 시청자에게 전해주길 바라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시간이 흐르는 게 유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가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생긴 것 같다. 가을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그로 인해 다시금 어떤 고찰을 하게 될까. 모던코리아 시즌 2는 또 각각 새로운 이야기를 주제로 돌아오겠지만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6편의 이야기를 본 후의 질문을 똑같이 스스로에게 물을 것 같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곳까지 왔느냐


- "모던코리아" 4편 시대유감, 三豊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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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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