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아씨들 - 책에서 영화로, 다시 영화에서 책으로 [도서]

글 입력 2020.02.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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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한국에는 개봉하지 않았던 영화 <작은 아씨들>을 미국에서 관람했다. 좋아하는 감독이 연출했고,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이기도 하지만, 위노나 라이더와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1994년 작을 인상 깊게 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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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의 영화와 그레타 거윅 감독의 2019년 리메이크 버전은 모두 원전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특히 1994년 작품은 소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두 영화를 관람하며, 원전이 페미니즘의 색채를 강렬히 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릴 때는 그저 드레스를 입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연극을 하기도 하는 마치 가의 자매들이 부러웠을 뿐, 그 당시 여성이 야망을 갖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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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빨간 머리 앤(Anne with an E)>에 관한 오피니언을 쓰며 책의 물성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딱딱한 양장본 표지로 된 고전 소설들은 언제나 나의 보물 1호였다.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고전 명작 전집을 번호대로 정리하는 것이 취미였을 정도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리뷰 보러가기]


하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더는 그런 책들을 읽지 않았다. 어린 날의 나에게는 전부였던, <작은 아씨들>, <소공녀>,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의 소설들은 거짓말처럼 잊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며, 10년 전에 읽은 소설 <작은 아씨들>의 장면과 대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원전의 완역본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완역본 <작은 아씨들>은 다시금 나를 미소 짓게 했고, 행복하게 했다.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책의 삽화는 영화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문득 어머니가 한 약속이 생각나 조는 베개 밑으로 손을 넣어보았다. 진빨강 표지의 작은 책이 한 권 숨겨져 있었다. (...) 똑같은 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표지의 책이 메그의 베개 밑에도 있었다. (...) 베스의 책은 비둘기색이고, 에이미의 책은 파란색이었다.

p. 38-39


 

같은 선물이라도 각 자매에게 어울리는 색으로 세심하게 챙겨준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따뜻한 장면이다. 마치 가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자매들이 늘 남을 도울 줄 알고, 다투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책을 집필한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마치 가의 자매들은 같은 사건에도 모두 다르게 반응하며, 로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자매 모두에게 다른 말로 인사를 건넨다.



조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인내심 있고 겸허한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설교보다, 가장 날카로운 책망보다 조에게 효과적이었다. 어머니가 공감해주고 속내까지 털어놓으니, 조는 위로를 받았다. 어머니도 자신처럼 결점이 있지만, 그것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조는 자신을 조금 더 편하게 견디게 됐고 단점을 고쳐야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p. 165



실수를 반복해도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그 마음도 마치 가를 품위있는 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장면은 소설의 가장 큰 갈등이라 할 수 있는, 에이미가 조의 원고를 찢어 버린 후, 조가 어머니의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인물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의 마치 가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는 행복으로 가득하던 이 집에, 죽음의 그림자가 맴돌았다. 메그는 의자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까지 자신이 사랑과 보호, 평화와 건강, 삶의 진정한 축복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을 한껏 누리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 그동안 베스는 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이타적인 꿈을 꾸었으며, 누구나 가진 소박한 덕목을 타고난 재능이나 부, 미모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p. 366-367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위의 인용은 베스가 훔멜 씨의 아이에게 성홍열을 옮아 오고, 아버지 역시 전장에서 얻은 병이 심각해져 오는 대목이다. <작은 아씨들>은 이처럼 삽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하물며 집에만 있으면서 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는 것조차도 수많은 노동을 포함하는 일이다. 한번은 자매들이 일주일간 휴식을 취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건이 일어나고, 깨끗한 집에서 제때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그간 성실하게 일한 어머니의 노력 덕분임을 깨닫는다. 사실 늘 여유로운 나날만 보낼 것 같았던 마치 가의 자매들과 어머니가 집안일로 분주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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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을 즈음하여

LA 공립 도서관에 방문했더니

<작은 아씨들>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조는 자신이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글이 잘 쓰일 때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했다. 결핍도 근심도 좋지 않은 날씨도 의식하지 않고 상상 세계 속에 안전하고 행복하게 들어앉아 작가에게는 현실과 다름없는 상상 친구들과의 삶을 즐기며 희열을 느꼈다. 그럴 때면 잠도 오지 않고 식욕도 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한 몰입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밤낮이 짧게 느껴졌고, 결실을 맺지 못해도 매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p. 523



<작은 아씨들>은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조는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자신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캐릭터이고, 셋째 베스는 피아노를 좋아하며, 넷째 에이미는 화가를 꿈꾼다. 원작에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2019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메그가 연기에 관한 꿈을 한때 품은 것으로 나온다. 2019년 개봉한 영화에서 조의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도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의 페르소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도 180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이 리메이크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여성 인물은 모두 결혼이나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며 조의 소설에 퇴짜를 놓은 편집자의 모습은 지금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더 많은 여성이 자유로이 꿈꿀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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