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아함을 위해서였을까, 결말까지 파괴적이진 못했던 -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소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을 읽고
글 입력 2020.02.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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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든 상상 이상인 호랑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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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에, 글을 쓸 때는 항상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의 리뷰는 가볍게 써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너무 무겁게 쓰려고 하면 주인공 호랑이가 나에게 꼭 이렇게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디터님, 가볍게 갑시다, 가볍게. 제 이야기에 뭐 이렇게 진지하고 재미없게 썼어요.”

 

여기까지 읽은 독자께서는 ‘이거 글 대충 쓰려고 지어낸 이야기 아냐?’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호랑은 진짜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마 이 책을 이미 읽은 다른 에디터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주인공 호랑은 겁이 없고, 파격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낸다.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 호랑의 행동에 대해 나는 이런 메모를 써놨다.

 

‘정말 뭘 하든 상상 이상이다.’

 

작가님도 그걸 아셨는지, 작가의 말에 일부러 호랑의 캐릭터에 두려움은 의식적으로 지웠다고 고백하기도 하셨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호랑은 어른들이 지켜온 룰을 가볍게 뛰어넘고, 자유롭고, 장벽 같은 편견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난 그녀의 그런 행보를 응원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뒤쫓았다. 하지만 지금 책을 다 읽은 나는, 호랑에 대하여 냉정하게 이 한 마디 말로 평하고 싶다.

   

호랑은 작품의 제목처럼 우아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파괴적’이진 못했다고 말이다.

 

 

 

입헌군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공주?


 

이 소설에서 어른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어른들이 쉽게 실수하듯이- 호랑을 그저 계집애, 빨갱이로 쉽게 판단하고 낙인을 찍는다.

   

“욘석아, 또 계집애가 황제가 될 판국인데 그만두라니! 나라가 디비지는데 잠자코 있을 수가 있겠니? 두고 보라고. 애비가 꼭 저 빨갱이들로부터 네 황위를 되찾아 줄 테니까.”

   

하지만 호랑과 친구들은 눈 깜짝 안 하고 시위대에서 연주를 하고, 등굣길에서 공주가 될 자신의 코인을 팔기도 하고, 무도회장에선 일종의 피켓 시위를 한다. 그저 평범한 시민도 아닌, 약자와 연대하고 투쟁하고 있던 호랑에게, 계급제의 꼭대기 위치인 공주였다는 설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그리고 호랑은 역시 어른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공주가 되어주지 않는다.

 


나는 서울 한가운데의 경각궁이라는 노른자위 땅에서도 이렇게나 거대한 부지를 나 혼자서 쓰는 현실을 견디지 못할 거야.

 

그러면?

 

인간들은 다 내쫓고 유기견이랑 유기묘를 위한 보호소를 설치해서 멈머랑 냐냐가 이 거지같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끽하게 해주겠어.

 


“퇴학도 상관없어요. 중졸 황제가 즉위하면 이 사회가 학력 차별에 대해 숙고할 계기도 될 텐데 뭐 어때요?”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던 호랑의 생각들을 발췌해왔다. 자신의 궁궐 정원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기견과 유기묘를 위해 내놓겠다는 건 인간 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요즘 화두인 동물권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또한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게 당연하다는 일종의 상식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고정관념에, 중졸 황제가 되어 그 생각을 깨부수겠다고 말하는 패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뿐 아니라 호랑의 행보는 자신의 사교계 데뷔 무대인 무도회장에서 시위대의 투쟁 조끼 옷을 입고 피켓을 드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왕실 비서 팀장 유나가 소설 속에서 한 ‘호랑 공주님... 진짜 할 땐 하시네요...’라는 말처럼, 호랑은 한다면 정말 하는 캐릭터이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건 이것이었다.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는 호랑이, 입헌군주제를 잇는 공주가 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냐. 그 생각을 품고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살짝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호랑의 왕위 경쟁자인 연우가 호랑에게 묻는다. 왜 황제가 되기로 결심했냐고. 그 질문에 호랑은 이렇게 답한다.



“농담이고,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잖아.”



‘그 사랑. 평소에 호랑이 하는 방식대로 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나.’ 위 구절을 읽고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황제가 되어야겠다는 대답은 시혜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호랑이 앞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공주가 되기 전 그동안 호랑이 해온 옆에서 연대하고 함께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걸로도 충분했다.

   


“기준점으로 기능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결국 그 기준은 황실이라는 한정된 씨족으로 구성된 전근대적인 집단에게 언제까지고 위임할 수 없는, 시민들이 다시 쟁취해야 할 것이지 않아요?”

 

누군가의 피를 이었다는 것만으로 이런 특권이 주어져야 할 당위가 없잖아요. 황실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다고요. 제가 황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이유도 기왕 현존하는 시스템이라면, 그저 저보다 더 부적절한 인사에게 특권이 가지 않도록 막으려는 차악의 선택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뒤에 호랑이 현 황제인 이모 마마께 입헌 군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땐, 논리적이면서 자신의 신념에 확신에 차있는 태도라고 느꼈다. 공주가 되어서도 호랑은 과거에 자신이 서민들과 연대하면서 갖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런 생각을 가진 호랑이 그래서 결말엔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파격적이었지만, 끝내 파괴적이진 못했던


 

책이 묘사한 대로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사람들 천지인 성인식에서, 다 해진 천하무적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호랑은 파괴적이다. 하지만 ‘호랑공주 제 말 하니 왔소’ 장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이어야 할 호랑의 연설문은 그녀가 입은 옷보다도 파괴적이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입헌군주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입헌군주제가 아닌 다른 체제에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이 성인식을 마치는 순간 나는 절대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거예요. 이 성인식이 끝나면 나는 공식적으로 황족의 일원이 되어 대표성을 띠게 되니까요.


 

앞에서 호랑은 분명 황족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황실이라는 한정된 씨족으로 구성된 전근대적인 집단. 또한 호랑은 이 나라의 황제는 현재 이 나라에서 아무 한 것도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도 있었다. 입헌군주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황족이 일원이 되면 이런 말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호랑의 저 선언은 이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던 혈통으로 받는 특권을 호랑 자신이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선언합니다. 나, 호랑은 이제까지의 황족 중 그 누구보다도 시민을 사랑하는 공주가 되겠노라고. 그 누구보다도 국민을 생각하고 시민을 위하겠노라고. 그리하여 입헌군주제 폐지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더 강고한 장벽이 되겠노라고. 어떻게 이호랑이 공주인데도 입헌군주제를 폐지할 수 있겠냐고 시민들이 주저하게 만들겠다고.


 

의도는 선하나, 모순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헌군주제가 바보 같고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결국 자신이 잘함으로써 그 입헌군주제의 강고한 장벽이 되겠다는 말한 것이 정말 의아했다. 호랑처럼 입헌군주제는 없어져야 하고, 민주주의의 장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절대 아닐 거라고 느꼈다. 저 소설 속의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국 권력이 해체되어 평등해지는 것이지, 더 좋은 권력자가 주는 사랑이 아닐 것이기에. 저 발언에 시혜적인 관점이 아예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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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입헌군주제에 반대해왔던 호랑이 결국 황태자가 되는 걸 택하는 과정을 독자인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평범한 내가 알고 보니 공주?’라는 설정은 2001년에 ‘프린세스 다이어리’라는 유명 영화가 있을 정도로 오래된 클리셰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만약 그 공주가 입헌군주제를 반대하고, 서민들과 투쟁하는 학생이라면 어때?’라는 설정을 부여했기에 클리셰를 잘 뒤틀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호랑은 공주자리를 걷어차는 게 아니라, ‘시민을 사랑하는’ 공주가 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클리셰의 창작물들과 같은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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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해 약자들과 투쟁해온 호랑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시민을 사랑하는 공주가 되겠다고 말하는 건 나이브한 메시지를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디즈니가 시대상 요구에 맞추어 새로운 시도는 하지만, 안전한 결말을 내는 것 같은 걸 보는 기분이었다.(알라딘 실사화 영화에서 자스민에게 침묵하지 않겠다는 넘버가 있긴 하지만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침묵당하고, 상황을 해결하는 건 결국 알라딘이라던가) 그동안 ‘권력은 인민에게! 황족은 궁 밖으로! 펑크로 세계정복이다!’ 구호를 외쳤던 호랑이라면 끝까지 혁명적인 행보를 보여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야기에는 만약에가 있으니까


 


“유나는 호랑에게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호랑이 언제나 꼭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었다.”


 

호랑에게 연대라는 일은 언제나 꼭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라고 소설에 나온다. 하지만 호랑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투쟁했던 당시에 이모인 ‘혜종’이 발표했던 입장 표명을 떠올려 보자. 혜종은 종로 시민들의 주거권을 침해하는 ‘궁궐 복원 프로젝트’는 ‘황실의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의 산업이라고 말하는 그 내용이 진실일 수는 있으나, 결국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중립을 드는 것은 강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호랑이 황제가 된다면, 언제나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연대는 현실적으로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연대라는 것은 시혜적인 입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호랑 공주는 나중에 황제 자리를 무사히 계승할 수 있을까요?

대한 제국은 계속 입헌군주제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호랑과 연우는 계속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프로듀서의 말에서 윤성훈 PD는 독자인 우리들에게 저렇게 질문을 던졌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야기에는 만약이 있다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는 한번 상상해보고자 한다. 내가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된 호랑이라면 언젠가 자신의 자리와 권력에 대한 한계를 깨달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황제라는 그 자리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없애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호랑은 연우와 계속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왜냐하면 호랑은 그럴 사람이라는 걸,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비록 이 소설의 결말엔 아쉬움을 느끼긴 했지만, 난 미소를 지으면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 안전가옥 오리지널 3 -


지은이 : 홍지운

출판사 : 안전가옥

분야
장르소설
역사소설, 팩션

규격
128X200mm

쪽 수 : 284쪽

발행일
2020년 02월 03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90174-66-4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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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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