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의 그림정원] 유럽여행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 #1

휴식, 양보, 그리고 미술
글 입력 2020.02.2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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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식


 

"야 유럽여행 갈래?"

 

"갑자기?"


시작은 평범했다. 그냥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가는 우정여행 비슷한 거.

사실 유럽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인턴 기간이 끝나는 겨울쯤, 나는 매우 지쳐있을 것이고, 그런 나를 위해 '여행'이라는 휴식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2020년 2월이 오겠어?라고 생각하며 작년 8월,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리고 16박 17일. 2주가 넘는 여행 기간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다.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돌아오기. 친구들이 홀수인데다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나로 인해 싸움이 불가피할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목표를 바꿨다. 싸우되, 한국 와서 얼굴은 볼 수 있을 정도로 싸우고 오자.




#2 양보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기차를 놓쳐 40분을 기다리기도 하고, 런던에서 존재하지 않는 옥스퍼드 대학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매다가 결국 되지도 않는 영어실력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비바람이 불어 비행기가 뜰지 안 뜰지 초조한 마음으로 전광판만을 바라보기도 하고, 화이트 에펠을 위해 새벽 한 시까지 밖에서 벌벌 떨며 기다리기도 하고.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셋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유럽은 처음이니까, 우리 모두 영어를 잘 못하니까, 우리는 즐기러 여행을 온 것이니까. 하면서 서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기적처럼, 16일 동안 우리는 사소한 말다툼 하나 없이 여행을 끝냈다.


여행이 끝날 무렵까지, 나는 나의 미덕만을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감정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잘 둘러대며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었다니.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노력해왔던 것이었고, 힘들었지만 서로의 눈치를 항상 살폈기에, 항상 셋 모두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너무 솔직한 것은 '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솔직함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빈말, 마음에도 없는 칭찬, 그리고 그 흔한 선의의 거짓말까지 입에 잘 담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만을 말하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좋은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억지로라도 머리와 입이 따로 놀게 하면, 버벅거리기 시작해 결국 더 큰 참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과장된 칭찬, 리액션은 필요하다. 눈 꼭 감고 나의 양심 구석 한 쪽을 팔아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식을 부리라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좀 더 유난스럽게, 리액션을 아주 조금만 더 부담스럽게 하라는 것이다. 좋은 의도로 그렇게 판 양심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곧 채워진다.

 


#3 파리와 미술


 

나의 첫 유럽여행의 첫 나라이자 예술의 도시. 이것으로 파리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했다. 9일 동안 파리를 여행하며, 나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갇혀 살았을까? 이렇게 멋진 파리도 몰랐으면서...라는 생각만 들었다.


항상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해왔던 미술을, 언제 놓아도 "그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해왔던 미술을, 프랑스에서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파리의 모든 미술관이 좋아서, 입구에서 엄한 표정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 직원조차 부러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천장, 미술계의 큰 획을 그은 거장들의 그림, 미술 교과서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조각상.. 파리에서, 그리고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미술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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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예연

파리의 한 거리



헤밍웨이의 말처럼, 파리는 매 순간이 파티였다.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에서, 여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었다. 심지어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이번 학기에 작성할 졸업논문 주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5개의 미술관과 함께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파리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자. 그동안 인턴생활을 마치고 잠시 꿈을 잃어 늙어가고 있었지만, 꿈이 생긴 나는 이제 더 이상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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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예연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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