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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by 이세라 에디터
2020.02.22 23:14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글로 쓰거나 비평을 하기가 어렵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 대상과 거리를 유지한 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Visages Villages〉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언젠가는 모든 걸 잊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에, 자주 헤매고 더듬거리면서라도 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아녜스 바르다도 그리고 그녀의 영화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잊고 싶지 않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누벨바그 영화 운동의 기수 중 한 명인 바르다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제이알(JR)의 공동 연출로 만들어졌다. 바르다와 제이알은 함께 프랑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붙여 전시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영화는 그들의 작업 과정을 비롯해 그들이 나누는 사적인 대화, 사진의 주인공이 된 이들이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등을 골고루 담고 있다.

 

대단한 플롯이나 이목을 끄는 화려하고 극적인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도대체 이런 작업을 왜 한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 영화는 그 어떤 작품보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위대한 바람에서 비롯된 영화이고, 그 마음이 예술이라는 영역을 통해 어떻게 실행에 옮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외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외곽’은 실제 그들이 거리상으로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계층적, 경제적으로도 약자임을 뜻하기도 한다. 철거 직전인 광산촌에 남아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자닌, 염산을 생산하는 화학 공장 직원들, 버려진 천막과 이불 등을 이어 만든 집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포니와 같은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바르다와 제이알은 왜 하필 이들을 선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평생을 시골 집배원으로 일하며 아마추어 화가로 팔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초로의 남성, 염소들을 기르며 정해진 시간에 젖을 짜고 전통 발효 방식으로 치즈를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가 대체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그들이 아니어도 보고 듣고 생각해야 할 게 많은, 바쁜 인생을 살고 있다.

 

바르다와 제이알은 ‘굳이’ 이런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덕분에 우리는 우리 곁에 늘 있어왔으나 실제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시에 사진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들은 건물 외벽에 거대하게 인화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이번 삶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 마치 유명 배우처럼 위풍당당하고 확실한 존재감으로 빛나는 자기 자신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터뜨리거나 벅차오르는 감정에 말문이 막힌 그들에게서, 관객은 비로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바로 모든 미소한 이들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는 일,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

 

영화를 찍을 당시 바르다는 여든여덟, 제이알은 서른셋이었다. 예술가라는 공통점 외에는 작업 방식도 세대도 달라 큰 접점이 없어 보였던 두 사람이 어쩌다 함께 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답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을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여긴다. 제이알은 국가적 공을 세운 이들이 묻히는 파리 팡테옹 국립묘지 내부 바닥에 4,000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들의 사진을 붙였고 뉴욕 타임스퀘어를 시민과 관광객들의 사진으로 도배하며 도시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혹은 누구여야 하는지를 일관성 있게 주장해왔다. 그리고 바르다는, 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그 이상’이다. 바르다는 평범함보다도 못한 존재감으로 우선순위에서 한참 더 밀려나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바로 그들이 자신에게는 우선순위라는 듯.


바르다의 여성주의적 관점은 그들의 작업을 한층 더 사려 깊게 만든다. 제이알의 주선으로 어느 항만을 찾아간 바르다는 애초 제이알이 점찍어둔 대상이었던 항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특별한 제안을 한다. 그들이 아니라 그들 아내들의 사진을 찍겠다는 것이다. 이어 화면에는 부둣가에 앉아 있는 세 여인들이 등장하고, 바르다는 그녀들에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항만 노동자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만 항만 노동자 아내의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바르다는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또 강성 노조로 알려진 항만 노동자의 파업 등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때 회사의 유일한 여성 운전자로 45톤짜리 초대형 트럭을 모는 일을 하고 있다는 소피는 이렇게 답한다. “예전 우리 아버지들이 파업한 덕분에 지금의 권리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파업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해요.”

 

바르다가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런 이들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실천 혹은 투쟁을 하는 사람들. 광산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있지만 끝까지 정부의 개발 정책에 맞서 이주를 거부할 것이라는 자딘, 염소들끼리 싸워 부상을 입어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소의 뿔을 제거하는 일반적 선택을 하지 않는 농장주. 그녀는 왜 다른 이들처럼 뿔을 태우지 않느냐는 질문에 “글쎄요…… 뭔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 염소는 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염소를 동물로서 존중한다면 뿔이 있는 대로 온전히 두고 싶어요. 물론 싸우죠. 하지만 인간은 안 싸우나요?”라고 답한다. 브라보. 우리는 신념이 자본의 논리를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확인한다.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도 있겠다. ‘까짓 돈, 덜 벌고 말지.’ 그녀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관객들은 사진 속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약자 혹은 시골의 촌부가 아니며 중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생의 고수들이다.

  

겉으로는 바르다와 제이알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여정은 분명 둘에게도 많은 것을 남겼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 이들은 다른 모든 ‘동업자’들이 그러하듯 의견을 조율하고 토론하고 다투고 토라졌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바르다와 제이알이 공동 작업자 혹은 동료로 시작해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로 점차 발전해가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바르다의 노화 현상을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차원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제이알이 먼저 떠난 남편 자크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바르다를 위로하는 장면, 덧붙여 그녀에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선물(이 선물이 무엇인지는 반드시 영화를 보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을 주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제이알에게 바르다와의 프로젝트가 자신의 예술 세계는 물론이고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지평 자체를 넓히는 과정이었다면. 바르다에게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누구를 만날 때마다 그게 늘 마지막 같아”라는 바르다의 말은, 사랑스러운 버섯머리를 하고 늘 호기심 넘치는 이 자그마한 여인이 아흔에 가까운 노인이란 사실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녀는 작업 대상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국한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로까지 확대한다. 해안가에 박혀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했던 철근 콘크리트 벙커에 망자가 된 친구 기 부르댕의 사진을 붙이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묘를 찾는 등 바르다는 이 여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이미 지나온 모든 시간을 애도하고자 한다.

 

‘젊은’ 제이알과는 다른 관점에서, 경험을 통한 연륜과 새로운 시도를 적절히 안배하며 일을 진행해 가는 바르다의 모습은 우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평생을 투신해온 ‘일하는 여성’의 훌륭한 전범을 보여준다. 지난 2019년, 바르다가 아흔 살의 나이로 별세하기 직전에 개봉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Varda by Agnes)>는 육십 년이 넘게 영화 일을 해 온 바르다의 지난 시간을 총망라하는 작품이다. 바르다는 극장에 모인 관객들 앞에서 자신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영화와 작업관, 직업인으로서의 철학 등을 이야기 한다.


가장 마지막에 소개되는 작품은 그녀의 최근작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다. 카메라는 모래바람이 자욱한 해변에 나란히 앉아 있는 바르다와 제이알의 모습을 비춘다. “언젠가 제이알과 난, 우리가 모래바람 속에서 사라지는 영화의 엔딩을 상상했던 적이 있어요. 오늘 수다를 그렇게 마쳐야 할 것 같네요. 흐릿하게 사라질게요. 그럼 전 떠납니다.” 이 인사를 마지막으로 바르다는 정말로 우리 곁을 떠났다. 흐릿하게, 가볍게, 뒤 도는 법 없이. 삶에 열정을 다했던 건 오직 후회하지 않고 떠나기 위해서였다는 걸 보여주는, 그녀다운 퇴장이었다.

 

바르다와 제이알의 공동 프로젝트는 그들에게, 두 사람이 만난 많은 이들에게 선물이자 위로가 되는 시간을 선사했다. 수혜를 입은 자와 베푼 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모두가 기쁠 수 있었던 기적이랄까. 그리고 내가 받은 선물이 있다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라는, 각박한 세상 한복판을 헤매는 중에 만난 이런 예쁘고도 낯선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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