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내는 감각

김광섭 - <저녁에> / 김소월 - <먼 후일>
글 입력 2020.0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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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벚꽃.jpg

 


곧 기다리는 봄은 옵니다. 나는 벚꽃이 피는 것을 생각하는 동시에 낙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 학기는 더 이상 남아 있질 않으니, 내 청춘이라 불릴 캠퍼스 속의 시절은 아주 간 줄을 알었습니다. 그 사실을 맞대하는 데에만도 꽤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 시간만큼의 쓸쓸함과 아쉬움과 그 감정만큼의 추억을 겪고 지나온 터라 이제는 잘 가신 줄로 알었습니다만. 아니었나봅니다.


그 모든 슬픔들은 나의 아우성이었습니다. 이 안에 검은 바다가 있다면, 그 위를 흐르는 풍랑 같습니다.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보니, 일전의 모든 아우성을 능히 감싸는 파란이 일렁입니다. 집체 같아 두려운 파도를 겪고 나니, 곧 다시 하늘에 닿을 듯 해일이 쇄도하는 듯한 감각, 그 속인 것입니다.

 

참, 추억이라 불리우는 것에는 그 피오르는 감정의 한도가 없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추억이란 것이 피어 올리는 감정이 과거의 사실값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었다면,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게 사무칠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이 만약 과거에 놓인 사실과 끝없이 나아가는 현재 사이의 거리감에서 발생되는 쓸쓸함이라고 한다면, 이 거리가 한없이 멀어지듯 계속이 깊어질 감정이라는 생각이 참 아연해집니다.


더구나, 과거에서 멀어지는 만큼, 그 과거의 사실이 희미해지고 불투명해지기에 더욱… 그렇게 말하고 보니, 추억이란 후회의 다른 얼굴인가봅니다.

 

청춘이라 불릴 만한 시절은 언제까지였던가 묻노라면, 누군들 정확히 규정 내릴 수 없어 다만 각자의 가장 푸르렀던 시기를 토막내어 답변하곤 하겠지요. 나의 시절은 역시나 이 요람 속이었습니다.

 

이 안에서 있었던 숱한 사건들도 기억에 참 잘 남어 있지만, 그러나 내가 그 시절을 가장 귀히 여기는 까닭이란, 그 품이 낭만의 예감과 힌트들로 꽉 차 있었던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시절을 벌써부터 깊어가는, 후회에 가까운 추억으로 아린 까닭은 그 힌트들이 그저 바람처럼 나를 스쳐 지나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잡질 못해 나를 스친 우연은 그저 바람이고, 나중에 바람이 그리운 때에나 그것이 바람인 줄을 알아 간절해지듯. 청춘의 숲 안에서는 알지 못했던 고마운 청명함은, 나중에 황혼이 진 사막 위에서나 깨닫게 될 따름입니다.

 

 

[크기변환]사막 1.jpg

 

 

아직 멀잖은 지금 생각키로 그 모든 시절은 내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이었지만, 이 과거가 점차 먼 것이 되고 풍화되어 희미해진 어느 때에는 이 시절의 아쉬움만을 떠올릴까봐 벌써 이른 걱정이 듭니다.

 

그 때엔 이 추억이란 꼼짝없이 후회로 변모될 터이니 말입니다. 과거의 환경과 그 환경 속의 행위자인 나의 역량이 동시에 고려되어야만이 나의 역사에 대하여 사실에 가까운 복기가 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는 내 기억의 한계는 나의 역량을 잊을까봐 두렵습니다.

 

어찌 과거에 있어 나의 역량만이 희미해지고 당시 환경은 또렷히 남겠느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것이 아름다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낭만의 예감과 힌트는 앞으로의 내 생애애 더 적어진다고 가정하였을 때, 끊임이 없이 깊어질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운 것만이 또렷해집니다. 모든 증오와 슬픔은, 비록 단기간에는 불가하더라도, 기나긴 양감의 세월 앞에서는 풍화되게 마련이라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 만은 또렷해지더군요. 아니, 어쩌면 또렷해지는 것이란 다시 갖지 못할 아름다움에 대한 아련한 집착뿐이라, 전방위적으로 희미해지는 내 과거 일체에 대해서, 이제는 희뿌얘 뵈지도 않는 과거는 도화지가 되어, 그 위에 내 집착이 붓을 쥐고 그리어내는 것은 아닐런가요. 아직 내게 그 미래란 너무 먼 것이라 이렇다 할 답을 내리긴 어렵습니다. 

 

 

[크기변환]학교 (4).jpg

 


오늘, 졸업을 위해 학교에서 한자시험을 치루었습니다. 교양관 207호, 이는 내 첫 수업인 '사고와 표현' 강의실이었습니다. 시험을 일찍 끝마쳐 강의실을 나설 수 있는 시간까지 20여분이 공으로 떠버렸고, 나는 핸드폰도 볼 수 없이 완전히 빈 조용한 시간 안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핸드폰도 없고 책도 없고, 내 집중을 쏟을만한 무엇도 없는 시험 중의 고요한 시간 속에 처하게 되니 내 이지는 열렬히 생각 거리를 궁리하다간, 이 학교에서의 내 첫 수업인, 7여 년 전 이곳 '사고와 표현' 때를 떠올립니다.


이윽곤 그 강의실 속 어린 나와 어린 나의 동기들과, 지루했던 수업들과 낭만. 그래 낭만이 떠올랐습니다. 딱 이맘 즈음의 나른한 햇살 속에서 수업은 졸고,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이면에 이 강의실 밖의 밤과 낭만만을 고대했던 그 때의 우리들이 환영처럼 보입니다. 그리곤 막은 그 어느 밤으로 바뀌어, 모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우리가 아련합니다. 보시듯이, 아름다운 기억만이 또렷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인지, 잠에서 깨듯 막이 바뀌고 한 켠엔 당시 초라하고 쓸쓸했던 나의 모습이 그리어집니다. 참 추하고 못났던,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러나 또 한편 이해받을 수 없었던 내 얼굴과 표정과 옷차림과 마음들이 제 3의 시선 아래로 비추어집니다. 옷차림마저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날 싫어하던 어떤 이가 옷차림 지적을 했었거든요. 그런 제게도 사랑이랄게 있어서, 나는 한자 시험을 마치고 나와 교양관 바로 앞 등나무 벤치에 이르르니, 당시 못난 나의 곁을 지키는 내 연인과 그 때의 감정들과 표정지음까지 오래 잊힌 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렇게 정다웠'던'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추억이 서글퍼지는 원리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 못난 나를 지킨 정다운 내 옛 연인은, 이제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지를 알 수가 없다는 사실. 지금 볼 수 없으니 나중에라도 볼 수 있겠느냐 스스로 묻는다면, 누구나 '다시 만나랴'고 답하게 됩니다.

이 마지막 어구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할 듯 합니다.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까?' 혹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다시 만나랴'. 제게는 깊은 회의로 다가옵니다. 간 인연은 아무리 깊은 연이었던들 여태 다시 마주칠 일 없었던 때문입니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래요. 나는 내 청춘인 대학 시절이 이미 가고 없는 줄로 알었습니다만, 아직 덜 갔구나 새삼 아리어옵니다. 아직 아주 졸업 하지 않은 때문이고, 아직 다음 챕터에 내 삶이 닿질 못하여 표류하고 있는 때문이고, 뭐 여러 까닭이 떠오지만, 애초 이 마음이 영원히 보내주지 않을 일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갔다. 갔노라. 언제 새 봄은 다시 만나랴.' 끝없는 애수와, 애환과, 아쉼과, 그 모든 것을 있게 한, 과거에 남아 영원히 빛날 아름다움들이란 역시 잊힐 수 없는 것이라 해야겠지요?

 

잡을 수 없지만, 보낼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인생엔 참 많구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을 잊는 때까지 앓을 수밖에 없겠군요. '먼 훗날, 그때에나 잊었노라, 아니 잊겠노라' 할 일입니다.

 


먼 후일

 

-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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