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료한 하루에 마치 선물처럼 - 1일 1클래식 1기쁨 [도서]

우리에게 필요한 클래식 입문서
글 입력 2020.02.2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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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우리의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좀처럼 듣게 되지 않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었다. 가사가 붙여 있는 음악, 4분 남짓인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가락들에 익숙해진 나의 귀에 클래식은 그다지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중성 자극이나 다름없었다.

 

클래식 음악은 음식으로 따지면 어떤 양념도 끼얹지 않은 두부 같다. 두부는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과정과 오랜 시간을 거치지만 완성품 자체로는 흥미로운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것보다 적은 시간으로 탄생한 인스턴트 식품 옆에서 두부는 지루한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숱한 인스턴트 식품들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시절 속에서 두부는 자기 자리를 지켜냈다. 그것의 담백하고 오묘한 맛 자체로서, 혹은 다른 먹거리와의 협연을 통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클래식도 이와 같다. 클래식 연주자와 성악가 등 음악가를 통해서 그대로 전승되기도 하였고, 영화나 광고 등 현대의 대중매체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이루는 등의 방법으로 후대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1일 1클래식 1기쁨_표지 1.jpg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동안 하루에 한 곡을 지정하여 추천하고 있는, 일종의 플레이리스트인 이 도서는 날 것 그대로의 클래식 음악들을 담고 있다.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 우리는 그 음악을 듣게 되지만, 원곡 그대로의 것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점은 전통적인 전승 방법과 동일하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클래식이라는 범주 안에 속하는 무수한 곡들 중에서 저자의 주관 아래 노래들이 유한한 숫자로 특정되었다는 점, ‘하루에 한 곡’이라는 부담 없는 분량으로 제공된다는 점 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점으로 다가온다. 한 곡을 온전하게 선사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전승 방식의 이점에 더하여 책의 구성으로써 발생하는 이점은 또한 그자체로 일종의 콜라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넓은 스펙트럼① – 현대의 영화 음악까지


 

단연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폭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대의 범위도 중세부터 낭만시대의 음악까지 전체 음악사를 아우르고 있다. 여기에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책이 현대의 클래식 음악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 소개되어있는 몇 편의 영화음악들은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영상에 나오는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 영화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이다.

 

현대의 미디어 중 영화만큼이나 음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도 없지 싶다. 좋은 영화로 칭송 받는 작품들 중에 좋지 않은 음악이 쓰인 작품은 보기 드물다. 그 중에는 음악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들도 있고 말이다. 그 예로 영화 <인셉션>은 인물들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웅장한 배경 음악을 삽입시켜 긴박감을 효과적으로 고조시켰고, 그런 와중에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을 삽입하여 분위기에 반전을 주고 모순적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그만큼 음악은 영화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시네마 천국>은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이지만 영화의 테마곡은 상당히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이었다. 여러분들의 귀에도 낯설지 않게 들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어딘가에서 스쳐가는 멜로디로 접했을 뿐이지 이 곡을 제대로 감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노래 전체를 들어보니 하나의 바이올린이 이끌어가는 선율은 애상적으로 들리다가도, 다수의 현악기의 합주가 등장하면서는 당당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음악의 처음과 끝에 놓인 멜로디에서는 어딘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복합적인 정서로 느껴지는 이것이 과연 영화의 어떤 부분에 등장하는 것인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외면할 수 없는 궁금증을 피워내게 되었다. 이 궁금증은 머지않아 나로 하여금 그 영화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길로 이끌 것이다. 이제껏 나는 감상할 영화를 선택할 때 줄거리라거나, 감독, 배우 등을 주로 고려하며 관심을 갖고 작품을 선택했었기에 음악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야 음악의 진정한 힘, 강인한 설득력을 깨달은 듯이나 싶다.

 

 

 

넓은 스펙트럼② - 다양한 지역의 음악


 

우리가 흔히 아는 베토벤, 바흐,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나 위대하다고 알려진 곡들은 대개 유럽 지역을 발원지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의 산물들이 다수이다.

 

 

 

 

책에서도 역시 어쩔 수 없이 유럽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노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는 실제로 그들의 노래가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류 음악에 밀려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비주류 노래들,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노래들도 소개되어 있었다.

 

위 노래는 그 예로, 웨일스의 민요 <밤새도록 Ar Hyd Y Nos>이다. 한 명의 작곡가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엘리트적인 음악보다 민요는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더욱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다.

 

 

 

 

<라가 필루>는 더욱 주목할 만한 곡이다. 이 곡은 서양의 악기인 바이올린과 인도의 전통 악기의 협연으로, 인도 방식의 음계인 ‘라가’ 음악을 연주한 것이다. 음악사를 논할 때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나는 동양의 음악을 다룬다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동서양의 음악이 융합된 형태로 연주된 곡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이런 형태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 나는 예상보다 두 악기의 어울림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바이올린이 빠른 속도로 동양의 음계를 짚어 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고 말이다.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다


 

요즘 나의 하루는, 또한 일주일이, 그리고 한 달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방학이 되면 항상 그렇다. 학기 중에 쌓였던 피로감을 ‘아무 것도 안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하게 된다. 무언가를 내면에 쌓아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머무를 뿐, 휴대폰으로 영상 따위를 보며 시간은 계속해서 무의미하게 죽어 간다.

 

그러나 이 책을 짧게나마 읽으며 나는 흘러가기에 급급했던 나의 하루에 유의미한 시간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치유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스스로를 나태하고 정체된 상태로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감상하는 순간에는 내 손발은 멈춰 있을지언정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한 감상들이 마음에 떠오르며 충만감을 쥐어줬기 때문이다.

 

 

 

 

아직 이 곡을 들을 차례는 아니었지만 나는 내 생일에는 어떤 곡이 소개되어있을지 궁금하여 노래를 찾아보았다. 나의 탄생곡(?)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이다. 나는 건반 악기의 소리를 좋아하므로 피아노의 선율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책에 적힌 설명을 보고 나서는 더욱 더 그 노래를 마음 깊이 담아내게 되었다. 이 곡은 창작 당시에는 혹평 세례를 받았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 노래에 얽힌 불행함을 나의 삶과 연관지어 상상하게 되었고, 그것을 곧 이 노래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으로 삼게 되었다.

 

이처럼 지루했던 하루 하루에도, 혹은 날짜 그자체에도 우리는 이 책을 보며 선물처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외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이 시점에, <1일 1클래식 1기쁨>은 소소하면서도 분명하게 무료한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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