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아는 모두가 지킨 것 - 침묵

누가 가장 고통스러울 것인가
글 입력 2020.02.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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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다 해주고 싶은 사랑하는 딸과 유명가수인 아름다운 약혼자, 게다가 재력까지 지닌 남자. 그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진다. 모두가 조금만 노력하면 행복은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약혼자가 살해당하고 그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다. 약혼자의 살해용의자로 딸이 지목되기 때문이다. 그는 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아니 무죄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변호인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믿고 맡길 변호사를 직접 선임한다. 그는 약혼자의 열성팬을 직접 찾아나서 만나 무리한 대가를 요구받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진실을 알게된 그는 절규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더이상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최후의 결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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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은 2017년 개봉작이고, 관객수는 약 50만명 정도로 흥행작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영화 포스터가 지닌 묘한 분위기가 이목을 사로잡았다. 영화 설명을 읽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네 배우의 조합. 그들의 침울하고 어두운 표정과 포스터의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한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금방 생겨났지만 어쩐지 포스터만 보아도 어두운 분위기인 영화를 볼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이 우울하고 어두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용은 포스터의 분위기와 영화 줄거리 설명 그대로 웃음기 하나 없이 어두웠다. 등장인물들이 행복해보이는 장면에서도 어딘지 모를 을씨년스럽기까지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구성은 <아가씨>나 <신세계>처럼 다소 신선하고 충격을 주는 요소가 있어 영화를 보는 당시에는 깜짝 놀라고 충격을 받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생각해보니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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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등장인물들이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내용을 보면 관객들이 의문을 가질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약혼자에게 그렇게 사납던 미라가 어째서 변호인 희정을 만난 이후로는 그리도 순한 양이 되어버린 것일까? 물론 살인사건 이후라는 극적인 상황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그러나 미라는 사건 발생 이후 단 한번도 남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행위, 심지어 그러한 표정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내용상 진범은 미라임이 밝혀지고도, 미라는 그저 순하고 여린 소녀인 듯 묘사된다.

  

약혼자인 유나의 팬이라는 '김동명'의 역할 역시 허술하다. 작품 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은데, 그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동명은 태산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대기업 회장을 만나 당황하는 기색보다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그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는 태산의 부탁에 대한 대가로 다소 당혹스럽고, 누구든 내키지 않을 요구를 해댄다. 이를 통해 그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물이라는 것이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그의 특이행동은 그것이 전부다. 그에 관련한 이외의 서사는 그다지 나오지 않고, 그 이후로는 고분고분 태산을 돕는다. 아무리 유나의 팬이었다고 해도, 태산이 주는 금전적 대가 혹은 그가 만족할만한 대가가 크다고 해도, 앞에서 보여준 서사와는 다른 인물의 행동은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내용을 곱씹어보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은 바로 핵심 주인공 '태산'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을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영화 속에서도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영화를 보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의 잘못을 이런식으로 해결하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딸이 한 단 한번의 실수가 살인이었을 뿐인 것인가? 자식을 잘못키웠으면 자식의 죄를 대신 갚아도 되는 것인가. 도덕적인 측면에서(정상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따라할 사람은 없겠지만)이러한 그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이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외의 서사도 다소 불안정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서사가 많았다. 정승길은 임태산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길래 살인을 묵인하고 오히려 거짓자백을 도와주었을까? 그리고 희정과 미라 사이에는 어떤 긴밀함이 있기에 서로를 그토록 믿는 것일까. 또, 검사 위치에 있는 성식과 변호인의 위치에 있는 희정, 법정에서 대립하는 두 사람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설정이 굳이 필요했을까? 남녀사이에서 과거에 긴밀했던 관계라는 설정은 옛 연인관계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시청하는 이들로 하여금 다소 의문점이 들게하는 내용이 반전의 내용에서 느낀 충격의 크기보다 큰 아쉬움을 남겼다.

 


 

아쉬운 내용을 커버한 연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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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으로는 아쉬운 점이 좋았던 점보다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했듯 미라 캐릭터는 사건 전후로 묘사되는 성격이 180도 다르다. 그러나 미라에 분한 이수경 배우는 두 버전의 미라를 어색함 없이 소화해냈고, 이듬해 있던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각각 유나와 동명 역의 이하늬, 류준열 등 유명 배우들의 등장 분량에도 적지 않게 놀랐다. 비록 적은 분량이었지만 극의 중심을 잘 잡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기를 보였다. 특히 미라와 유나의 화장실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놀라지 않은 이가 없으리라 믿는다. 짧지만 두 인물이 얼마나 흥분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억눌려있었는지 한번에 이해가 가능한 장면이었다. 동명 또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였지만 확실히 '이상한'사람이라는 것을 짧은 분량 속에서 잘 표현해낸 류준열 배우도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배우는 극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두명, 임태산역의 최민식과 최희정 역의 박신혜이다.


사실 필자는 두 배우가 어쩌면 매너리즘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각각 배우의 대표작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민식 배우는 항상 신임을 받거나 강하고 우직한 역할만 맡는다고 생각했고, 박신혜 배우는 항상 힘든 상황이지만 싹싹하고 굳세게 이겨내는 캔디 캐릭터만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묵>에서 두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그동안의 고정관념과는 다르다. 태산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딘가 캐릭터의 지위에 맞지 않게 여리며 쓸쓸해보이고 영혼이 반 쯤 비어있는 듯 보인다. 희정은 따뜻한 성격의 젊은 변호사로 패기가 넘치지만, 법정에서는 함정에 걸려든 자신의 생각이 맞다며 증인을 향해 악에 받치다 못해 분노한다.

 

이렇듯 내용전개 상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인물들이었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이 영화 관람을 멈추게 하지 않고 그저 다음 내용으로 이어가게 한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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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 그리고 남은 인물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싶은 말은 뭘까? <침묵>이라는 영화의 제목과는 상반되게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유나의 죽음에 각자 어떤 이유로든 화가 나 있다. 그러나 진범이 미라라는 사실은 태산이 원했듯 비밀로 잘 지켜지고 있다. 이로써 태산과 미라는 부녀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어쩌면 이전보다 더 나은 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태산은 자식을 잘못 키운 죄로 평생을 손가락질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미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로부터는 피할 수 있겠으나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댓가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에 곁에 아무도 남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살인과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원치 않게 사실을 알게된 것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물론 동명도 죄책감에 시달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남은 한 사람, 유나는 그저 안쓰러움으로 남는다. 황홀했던 몇천만원짜리 시계도, 없애고 싶던 성관계 동영상도, 모두 법정에서 자료로만 남았을 뿐이다. 태산은 증거를 조작하던 와중에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이미 엎어진 물, 그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눈물을 흘릴 뿐이다.

 

어떻게 해야 옳았던 것일까. 그러나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해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있다. 태산은 최후의 결정을 했으며, 그것이 그에겐 최선이었으리라. 내겐 옳은 선택이었을지라도 그 선택에 대한 세상의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은 아쉬웠지만 태산의 입장이 다소 이해가 가기도 한다. 당신이 태산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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