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걱정거리로 머리가 복잡한 당신을 위해 [영화]

영화 <우드잡>
글 입력 2020.02.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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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머리속은 복잡하다. 마치 주머니 속에 오랫동안 묵어 있던 이어폰 줄 같다. 언제, 어디서 이렇게 꼬였는지 모르겠는데 엉킬대로 엉켜있다. 탄식을 한 번 내쉬고 풀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고민을 하고 있고 머리속에 생각은 많은데 막상 고민거리를 적어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나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있는데 '뭐가 고민인데?'라고 물어보면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먼지가 엉킬대로 엉켜버린 생각에 '고민이 많은 게 고민인 수준'까지 가버렸다. 그럴땐 잠시 생각을 내려놓고 숨 쉴 틈을 줘야 한다. 나를 집어 삼키려는 고민과 의심들로 인해 잠 못 드는 오늘, 영화 한 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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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잡(2014)는 대학도 떨어지고 여친에게도 차인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가 우연히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산 속에서 임업 라이프를 살아가는 이야기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붙었는데 나만 똑 떨어진 상황에서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재수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그에겐 해당 없는 선택지였다. 그는 졸업 기념으로 간 노래방에서 슬쩍 빠져나와 거리를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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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뭐 하지?

 
목표를 잃어버린 그는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 전단지를 보게 된다. 오로지 표지모델이 예쁘단 이유 하나만으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한 그가 혹독한 벌목 생활에 쉽게 적응할 리가 없다. 욕도 하고, 도망도 치고, 땡깡도 부리고, 부정도 해본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의외의 기쁨을 발견한다.
 
단순하게,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는 순수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묵묵히 나무에 올라가고 톱질을 하고 숲 속을 가꾼다. 임업이란 농업과는 달라서 내가 한 일의 결과는 내 다음 세대가 알 수 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불안해 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태도'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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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지사를 퇴사할 때 이 영화 리뷰를 마지막으로 썼다. 고된 서울 살이에 지쳐 내려가는 나를 어찌어찌 포장한 글이었다. 이런저런 다짐들을 적어놨고, 다들 부럽다며 넌 분명 잘 살 거라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짐들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일상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고, 나는 내 마음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고자 했지만 관성처럼 나는 기업이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어쨌든 누군가에게 기대고자 했다. 홀로 사는 법, 내 자리를 사랑하는 법은 조금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 경우도 있었다.


영화는 내내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 필요 없다, 네 자리를 지키면 된다. 히라노는 전단지 모델을 보고 진로를 결정해 버렸지만 그 선택에 책임을 졌다. 사실 선택은 꽤나 쉬운 일이다. 어쨌든 고르기만 하면 되니까. 나 역시 히라노처럼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서 관계를 이어가는 그와는 달리, 난 혼자 끌어안고 폭발하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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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한 선택을 의심하는 걸 멈추고 삶을 믿기로 했다. 삶을 믿는다는 것. 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어쩌면 그가 결과를 알 수 없는 임업을 계속해서 해나간 이유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에 대한 의심이 많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많은데 예를 들면,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물경력 되면 어쩌지?
 
이렇게 취업준비를 하는 게 맞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있지?
 
시험준비를 계속해도 될까? 이게 내 한계 아닐까?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 아닐까?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들이다. 무언갈 이뤄낸 사람이 대단한 이유는 그 결과도 대단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의심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관철했기 때문이다. 연봉 200만원(월급이 아니다)을 받고, 숱한 좌절을 겪었음에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끝까지 연기를 한 배우 곽도원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처럼 대박을 치진 않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정말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버텨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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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나 지금 잘 가고 있나?"를 고민한다. 슬프게도 그 답은 알 수 없다. 본인이 죽기 직전, '나 잘 살았다'라고 생각하면 그때서야 알 수 있을까. 죽기 직전에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를 믿고 가는 것이다. 10년 후 목표를 상상하면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불안하고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딱 일주일 후의 나만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단어 10개를 더 외운 나, 스쿼트 10개를 더 하게 된 나, 한 챕터를 끝낸 나.
 
고민이 많아서 잠 못 드는 밤이면 나는 때때로 히라노를 생각한다. 적막한 산 속,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드는 그는 불안하지 않았을까. 도시에서 커리어를 척척 쌓아가는 친구들이 떠오르진 않았을까. 곽도원 배우도 떠오른다. 남들 다 하는 취업을 하고 싶진 않았을까. 10년 뒤 내 모습이 비참하게 그려지진 않았을까. 아마 그들도 숱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삶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잠이 들었고, 내일이 밝았기 때문이다. 잠이 들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 그러니까 일단 자자. 당신이 폭풍 같은 의심에서 벗어나 잠시는 쉴 수 있길 바란다. 단단하진 못하더라도 가던 길을 갈 힘이 생기길 바란다.
 

[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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