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는 우리를 바꿀 수 있을까? [도서]

1년간 자기계발서 12권 따라하기
글 입력 2020.02.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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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계발서는 우리를 바꿀 수 있을까?


 

서점에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있습니다. 강렬하게 바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시크릿>, 습관에서 시작한다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기다려지는 아침을 만들면 행복해질 거라는 <미라클 모닝>까지. 자기게발서들은 '당신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따라하기만 한다면요!'라며 유혹합니다. 매년 1월 1일, 자기계발서를 하나 정해서 "올해 만큼은 꼭 달라질거야"라고 다짐하길 십수년 째. 그런데 정말로 자기계발서는 우리를 바꿀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전제를 확인하기 위해선 큰 장애물이 있죠. 바로 실천입니다. 이제 2월에 접어들었는데 다들 첫 결심 지키고 계신가요? 자기계발서를 처음 읽고 느꼈던 가슴의 울림을 간직하고 실천하고 계신가요? 전 그렇지 않았습니다. 40만원짜리 아이덴티티 수업을 들으며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제부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거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꾸려 나가겠어, 라고 다짐을 했죠.

 

그렇게 '심리학도의 길을 가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직후, 저는 큰 장애물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시험공포증'이었습니다. 어렸을 땐 없었는데 공무원 준비를 보름간 하고 나서 생겼습니다. 매일같이 10시간에서 12시간씩 공부를 하니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해서 떨어지면 어쩌지? 시험에서 미끄러지면 인생 도미노도 줄줄이 미끄러지는 거 아냐? 라며 초조해했죠.

 

타인의 어둠을 깊이 있게 파고들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목표가 심리학 대학원 입학 시험으로 옮겨가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전공서적을 읽는 것도 즐거웠는데 그게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자 '난 못 해, 만약 실패하면 어떡해? 미끄러질거야 분명. 1년 실패한 시간은 어디에서도 벌지 못 해. 포기하려면 지금 뿐이야'라는 생각만 계속해서 맴돌았습니다. 이번엔 시작도 안해보고 포기를 했습니다.

 

그 날, 제가 한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겨우 이것도 못 해? 이런 압박감도 못 견디면 너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래? 세상이 너를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해? 나약한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연민, 혐오로 지쳐버린 저는 그대로 절 놔버렸습니다. 1월은 간간이 영화나 보고 리뷰 쓰면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큰 꿈을 갖고 퇴사한지 4개월차, 저는 블로그에 비정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브런치에 떨어져서 부들대고 공모전이란 공모전, 서포터즈란 서포터즈는 죄다 탈락했습니다. 모두가 제게 '조급해하지 마, 이제 겨우 26살이잖아. 넌 능력 있어,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줬지만 모든 말을 튕겨냈습니다. 다 실패해버린 제게 칭찬이라뇨, 가당치 않은 소리였습니다. 칭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끔찍이 혐오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기분이 오락가락한지 몇 주가 지나자 이대로는 내년에 자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히 자기계발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방향을 누군가 제시해 주길 바랐습니다. '올바른 삶은 이거니까 다들 따라오세요!'라고 말하는 카리스마 있는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대신 어렵거나 두루뭉술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계발서 12권을 한 달 간 한 권씩 실천한 이야기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를 발견했습니다. 이 책을 보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이 사람이 한대로만 하면 나 역시 인생을 바꿀 수 있겠다, 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자기계발서를 12권이나 따라한 마리안 파워는 인생 변신에 성공했을까요?

 


 

2. 12개월 이후, 중증 우울증, 알콜중독, 파산 위기


 

마리안 파워는 어린시절 학대도 없고 그럭저럭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입지도 있엇고 꾸준히 일도 들어왔죠. 어느정도 커리어를 쌓아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살아가길 바라는 제게 마리안의 삶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있다고 느꼈습니다. '완전히'요.

 

솔로에다가 우울하고 항상 술에 찌들어있고 공허하다며 울던 마리안은 1년간 매달 자기계발서 한 권을 실천합니다. 처음엔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짜릿함을 경험합니다. 용기도 생기고 낯선 자신을 발견합니다. 절대 못할거라 생각했던 도전들을 척척 해내가며 자기계발서가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계발에 실패했을 때 그는 끊임없는 자기 비하를 했고 영적인 체험을 한답시고 빚을 내는 등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합니다. 단순히 일상이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소소한 프로젝트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커리어는 망가지기 직전이고 중증 우울증과 자기혐오에 빠졌으며 자살충동까지 겪게 됩니다. 빚더미에 앉은 건 당연한 일이었죠.

 

당연히 마리안이 행복한 변화를 겪을 거라 생각하며 이미 그에 맞춰 계획도 잤던 제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도입부만 보고 "그래, 내가 해보고 싶었지만 두려웠던 일을 해보는 거야!"라고 다짐해서 연기 수업, 뮤지컬 수업을 신청했거든요. 돈이란 또 벌면 되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말이죠.

 

그런데 파산, 우울증이라뇨. 충격적인 1년이었습니다. 마리안은 인생 바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결국 상담사를 찾아갑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대 상상했던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그는 끊임없는 자기 혐오를 합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그만두진 않습니다. 이것마저 그만두면 정말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 고집을 부려서라도 끝까지 합니다. 그때 상담사가 추천해 준 책이 바로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입니다.



그처럼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는데, 난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기준을 높이 잡으면 잡을수록 스스로가 실패작처럼 느껴졌다.


책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 중



자기계발서에 몰두할수록 우울해졌던 이유는 바로 여기있었습니다. 누구도 완벽할 순 없죠. 이상향을 놓고 나와 비교를 한다면 누구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나에게 두지 않고 책에 둔 그는 자신을 실패작처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끔 대시를 받고 커리어도 있고 좋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은 전부 외면한 채 계속해서 불행한 점만 곱씹었습니다. 그는 수도승이 될 필요도, 미친듯이 부지런한 사람이 될 필요도, "난 아름답다!!!"라고 외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일상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가끔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만 있으면 됩니다.

 

그가 불행했던 이유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굳이 바뀔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일상을 음미하고 자신을 사랑하면 되는 일이었죠.

 

'엥, 너무 뻔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리안은 저 단순한 말을 알기 위해 1년간 수많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덕분에 소중한 믿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리안은 자기계발서로 보낸 1년은 파괴적이었다고 하지만, 도움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혼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1년이지만 결국 함께 했을 때 행복했음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3.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덮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을 바꾸고자 서울에 올라가는데 바꿀 필요 없다니, 이제 어쩐다. 방향을 찾기 위해 읽은 책이 오히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미 연기수업과 뮤지컬 수업은 시작했고 '좋은 에디터 되기' 수업도 이미 신청해놨기 때문입니다. 햄버거집 알바제의를 거절하고 서점 알바 면접을 기다리고 있고, 롯데월드 캐스트 알바에도 도전해 볼까 생각했습니다.(이미 한 번 떨어졌지만요)

 

결국 계획한 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대신 제가 아닌 모습에 집착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예를 들면, 뮤지컬 수업에서 극도로 활발하게 행동한다던가 사교성이 좋은 척을 한다던가 완전 긍정적인 사람인 척 하는 건 관두기로 했습니다. 제 자신을 토해내는 용도로 쓰기로 했습니다.

 

서점 알바는 계속 지원해 볼 생각입니다. 그건 원래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마리안도 '거절 프로젝트(매일 거절을 당해 보는 것)'를 통해 거절 당하는 게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은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서울에 올라가서 이젠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과 연락을 해볼 생각입니다. 존경했던 전 직장동료나 상사에게 말이죠. 또한 브런치나 인디포스트, 아트인사이트같은 플랫폼에도 연재제의를 넣어 볼 생각입니다. 거절 당해도 어쩔 수 없죠. 다시 넣으면 그만입니다.

 

마리안은 마지막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선 방안에 처박혀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는 것보다 밖에 나와 춤 추고 운동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신나게 몸을 털고 나면 기분이 한층 나아져 있을 거라며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1년 하고도 4개월 동안 격정적인 프로젝트를 마친 그는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냅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식사하고 일을 하는 삶. 들인 시간과 비용, 고통에 비해서 초라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는 만족합니다. 섹시한 백만장자가 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일상을 파괴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리안의 모습을 보고 주변인들은 모두 '프로젝트가 도움이 됐나봐. 너 변했네'라고 말합니다.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게 변했습니다. 바로 일상을 바라보는 마리안의 자세입니다.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마리안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힘이 나고 빛이 납니다.

 

저 역시 마리안과 같습니다. 자기 파괴적이고 혐오하며 비관적입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에 의존하고자 했고 누군가 지침을 내려주길 기다렸습니다. 쉬고 있는대도 "너 정말 게으른 애구나, 정말 한심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도 않았죠. 서울에 가면 정말 열심히 살거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때론 일탈을 하며 일상을 꾸려나가려 합니다. 최소한 제가 저를 혐오하지 않도록 말이죠. 피자를 한 판 다 먹더라도 다 '처'먹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만화를 보느라 저녁을 다 써도 '이새끼 또 이러네, 백수새끼'라고 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밤이네요.

 

 

[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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