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르멘’, 그녀의 자유

오페라 ‘카르멘’ 속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대해
글 입력 2020.02.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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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카르멘’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표를 예매했을 때부터 보러 갈 때까지 계속 기대했다. 하지만 좌석의 위치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공연을 볼 때는 항상 1층 앞좌석을 큰 지출을 감당하고서라도 보는 편인데 이번 예매는 너무 늦게 기억해서 마지막 남은 3층 B 좌석을 예매했기에, 잘 안 보일까 봐 혹은 몰입이 잘 안 되면 어떡하나 라는 마음에 속상했다.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관람권을 확인하고 3층으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안 보이는 자리에 실망했다. 공연이 시작하고 나니 실제로 3층은 오페라를 관람하기에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긴 아리아가 계속될 때면 잠깐 졸기도 했고 흐름을 잠시 잠깐 놓쳐서 다시 집중해서 봐야 했다. 그러나 다소 안 보이는 위치와 뮤지컬과 차원이 다른 상영 시간에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페라 ‘카르멘’의 굉장한 흡인력 때문이었다.


‘카르멘’은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오페라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극도의 매드 신이 나오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루치아가 보여주는 극강의 비극적인 감정 흐름 때문이었고 카르멘의 흡인력은 카르멘의 능청스러움과 그 안에서 나오는 카르멘만의 매력 때문이었다. 발레와 투우사들의 춤 등 화려한 무대 위의 요소는 내가 그 장면을 숨죽여 보게 했으며 흥겨운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그 장단에 몸을 맞추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손짓, 발짓을 또한 그 몸짓의 섬세함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노래의 완벽성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습 기간을 거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배우들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볼거리도 많았지만 그만큼 개개인의 혹은 카르멘과 돈 호세의 아리아의 비중이 높았다. 아리아에서 그들은 극도의 감정선을 보여주었고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아끼지 않고 뿜어내었다. 카르멘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 많이 놀랐던 게 아리아 자체도 불안정하고 극도로 치닫는 선율이었지만 카르멘 역시 극도로 치닫는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며 내는 듯한 소리도 내고 손을 이용해서 자신이 괴롭다는 것을 표현해냈다. 전에 보았던 오페라에 비해서는 확실히 감정 표현이 강한 오페라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퍼포먼스와 감정 연기와 비교하면 무대 장치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배경 정도만을 구성으로 했음에도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극대화되어 그 허전하다고 할 수 있는 배경을 다 채웠다.


한창, 오페라를 보고 있다가, 처음에는 카르멘의 뻔뻔함과 바람피우고 이리저리 상대방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옮겨 다니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고 돈 호세와 틀어져 버린 것은 백 퍼센트 카르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카르멘이 자유롭게 살다 가겠다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는 아리아를 들으며, 카르멘은 그저,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사는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아까처럼 평가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카르멘의 아리아에는 자유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시대의 여성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했다. 다른 두 친구들은(같이 점괘를 보던 두 명, 카르멘에게 돈 호세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두 명) 다 점괘에 자신을 위한 목표나 미래가 아닌 어떤 남성을 만나겠다는 미래가 나왔지만 자유를 위해 살았던 카르멘에게는 죽음이라는 점괘가 나와서 다른 여성들과 가치관 면에서든, 생활 환경 면에서든 무엇인가가 달랐던 카르멘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카르멘에게는 인생에 관한 조언이 다른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점괘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카르멘이 평소 관계에 자신을 희생시키거나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사는 모습을 드러낸 장면 같아서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전율이 돋았다. 여기서 한참 고민을 해보았는데 나는 죽음의 점괘가 나오더라도 차라리 자신의 개성을 가진 카르멘으로 살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르멘이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 결여된 도덕성은 카르멘 스스로에게서 나온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카르멘을 신분상 천한 여성이라며 막 대하고 카르멘이 자기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남성들을 겪어 상처 입었고, 그로 인해 다시는 내가 끌려다니는 만남은 없다는 마음으로 자유를 추구하며 오히려 자신의 감정만을 만남에 내세우게 된 것의 결과일까 생각했고 만약 이 오페라 아래에 그런 설정이 깔렸었다면 카르멘을 안타깝게 여기는 청중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오페라도 하나의 보여주기식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기에 청중은 자신이 스스로 오페라의 공연장 틀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상상하고 그들의 속 사정을 유추해보며 다양한 해석을 하며 오페라를 즐긴다면 더욱 그 오페라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소 오페라에 대한 이 생각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보면서 등장인물 각각의 내면과 상황에 관한 유추를 해보았다.


투우사는 겉으로는 명예 그런 것을 즐기며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 명예와 용기를 드러내며 카르멘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직업으로 사는 게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위협을 받을 때도 있을 텐데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과연 오페라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소유하고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카르멘은 마지막에 돈 호세에게 자신은 투우사를 사랑한다며 더는 돈 호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 분노를 자극한다. 이때 나는 왠지 모르게 투우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카르멘의 모습이 왠지 슬퍼 보였다. 카르멘은 자신의 사랑보다 자유가 더 먼저였기에 돈 호세를 너무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자유로움을 잃을 것이고 차라리 투우사 옆에 있으며 돈 호세가 스스로 단념하게 하겠다. 그렇지 않다면 난 자유를 위해 차라리 돈 호세에게 죽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돈 호세는 미카엘라를 깊이 사랑한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약속 때문에 좋아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호감을 느끼게 된 상태에서 카르멘이 등장해 추파를 던지는데 이때 깊게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과연 돈 호세는 이 여자의 내면을 사랑했을까 외면과 그녀가 보이는 아름다운 춤만을 사랑했을까 그렇다면 결국 돈 호세 또한 단편적인 사랑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돈 호세는 사람들이 반듯하다고 여기는 이전의 모습으로 살았을 때 어떠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졌을까? 등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돈 호세와 카르멘의 사랑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와 로테의 사랑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둘은 처음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베르테르의 과해지는 사랑에 로테가 감당을 못하여 헤어지고 베르테르는 결국 자살하는데, 마지막에 베르테르가 자살할 때 느낀 그 감정을 돈 호세는 자신에게 풀지 않고 연인 카르멘에게 풀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놀랍도록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유사하다. 베르테르는 너무나 로테를 사랑했기에 그 커지는 감정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베르테르는 자신에게 그 감정을 모두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돈 호세는 그렇게 떠나는 게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던지 카르멘에게 자신이 망가진 것에 대해 분풀이를 했다. 애초에 인생은 모두 다 자신의 선택인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비난하다니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카르멘은 인생은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짐을 애초부터 알았으며, 그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춘 사람인 점을 생각하면 돈 호세와 비교되었다. 물론, 카르멘이 한 도덕적이지 못한 일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카르멘의 가치관에 숨어 있는 그녀의 진심에 관해 언급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오페라가 시작된 후에는 배우는 현실에 살아서는 안 되며 그 시대 속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그 인물의 정체성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오페라에서 배우분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역할에 몰입하는 게 보여서 너무 감동했다.


그리고 무대 장치가 앞서 언급했듯이 생각보다는 화려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담배공장, 술집, 숲 속, 그리고 투우 공연장 4개의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적은 무대 장치는 아니었는데 나는 무대가 끝난 뒤 무대 종류가 왜 이렇게 적을까,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한 무대에서 1막 정도의 긴 무대를 하다 보니 지루하게 느꼈던 듯하다. 나는 내가 만약 카르멘의 무대 총괄이었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지 생각했는데, 일단 담배공장의 장면에서는 공장에서 연기가 나게 만들고 앞에 광장을 조금 더 광장처럼 보이도록 분수 같은 것을 설치하고 싶다. 또한, 붉은색 조명으로 분위기를 강조할 것이다. 술집의 벽은 뒤가 다 보이는 철창이었는데, 이것보다는 막혀있는 벽돌 벽으로 꾸며서 안에서 카르멘과 돈 호세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짜 그들만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게 하고 싶다. 그리고 숲 속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산 모양의 조형물을 더 설치해서 산속임을 더 강조하고, 나뭇잎이나 나무 같은 것도 옆에 설치해서 휑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다. 이때 조명은 파란색과 하얀색을 번갈아 비추며 산속의 스산하고 뭔가 외로운 분위기를 강조할 것이다. 또한, 카르멘이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순간에는 하얀 조명으로 카르멘을 주목하고 불그스름한 연기를 바닥에 깔아주면 더 효과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투우장에서는 투우사의 목소리, 이기고 있다는 소리만 들리지 극도로 흥분한 투우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없어 몰입도가 떨어졌다. 이럴 때는 투우장 바깥을 배경으로 해 놓을 것이 아니라, 투우장 안에서 소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샛길 무대를 조성해 거기서 돈 호세가 서서 카르멘을 보고 있는 식으로 만들 것이다. 


카르멘 역을 맡은 사람이 다르기에 다른 공연에서 각기 다른 카르멘을 보여준다는 것을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오페라 수업의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프로모션을 보고 알았다. 내가 보았던 카르멘은 격하기보다는 살금살금 와서 돈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이었다면 동영상 속 카르멘은 완전히 매력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고 강하게 전달하는 카르멘이었다. 나는 ‘후자의 카르멘이 더 카르멘의 이미지에 잘 맞는다’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카르멘의 전형적인 이미지조차 내가 스스로 생성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고 들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설명하는 카르멘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내면화한 것 같아서 당황했다. 카르멘은 그 어떠한 모습도 될 수 있다. 모든 스타일의 카르멘은 다 카르멘이 될 수 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평소 클래식 음악회를 자주 데려가셨고 뮤지컬, 오페라 극장에도 자주 데려가셨는데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시며 교양이 있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셨지만 나는 사실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을 더 선호했었다. 어렸을 때는 3시간이나 되는 오페라의 상영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져서 보면서 조는 경우가 많았고 자다가 눈떠도 똑같은 장면에 뭐 이런 공연이 다 있나 라는 생각을 번번이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오페라를 나도 모르게 피했었다. 그러나 대학생 때 오페라 ‘카르멘’을 보니 이제야 뮤지컬과 오페라에는 각각의 매력이 있음을 깨달았으며 오페라를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카르멘이라는 오페라는 나에게 공연장에서의 3시간가량의 멋진 공연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을 선사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카르멘의 마음을 상상해보게 되고 오페라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인 청중으로의 한 발을 내딛게 해 준 오페라가 바로 ‘카르멘’이다. ‘카르멘’은 최고의 작품이며 최고의 여성이다.

 


[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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