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는 사랑이 아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글 입력 2020.02.1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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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슥, 슥 캔버스의 거친 면을 가르는 목탄 소리로, 영화는 잔잔하게 시작한다. 사실 시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잠들기 전 ASMR 영상을 틀어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타닥거리는 모닥불, 발소리, 조곤조곤 떠드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평화로운 소리와는 다르게 내용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 그러니까 퀴어를 다뤘기 때문에? 아니다. 영화는 가부장제에 종속된 여성의 삶을 담았기에 무겁다.
 
이제 세 주인공이 그 체제에 어떤 방식으로 저항했는지 혹은 따랐는지, 그 지난한 과정은 어떻게 끝났는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그들의 삶을 살펴보자. 귀족 엘로이즈, 화가 마리안느, 엘로이즈 집안의 하인 소피의 삶을.

 


*
본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레임 안에 갇힌 물


 

첫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마리안느다. 화가 마리안느는 백작 가의 의뢰를 받고 귀족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넘실대는 바다를 건넌다. 거친 파도 때문에 캔버스를 담은 나무 상자가 바다에 빠지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마리안느에게 초상화 그리기는 꽤 간절한 일거리일 것이다.

 
당시 여성인 화가는 남성보다 제약이 많았다. 여성은 남성의 누드화를 그릴 수 없지만, 남성은 언제나 그릴 수 있었고, 여성은 시대의 과업이라고 불리는 대주제를 그릴 자격이 없지만 남성은 그 임무를 맡았다. 심지어 여성은 전시회에 출품할 수도 없었다. 이 사실을 고려하며 미술사를 다시 보면, 유명 화가들이 대부분 남성인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성에게는 일명 '큰일'을 책임질 기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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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는 '물'과 같다. 어떤 틀이든 그 안에 담긴 물은 형태를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답답한 체계에 불만을 터뜨리거나 저항하기보다는 주어진 규칙이나 관습에 순응한다. 그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당사자 몰래 그려야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스케치했는지 떠올려 보자. 볼은 이 색을 써야 하고, 귀는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하고, 표정은 웃는 얼굴,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가슴을 내민 자세.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사회에서 말하는 초상화의 룰을 생각하며 그 규격에 엘로이즈를 끼워 넣었다. 결과물은? 엘로이즈가 지적한 대로 엘로이즈를 닮지 않았다. 그가 초상화를 확인하고 바로 어머니를 부르러 간 것은 약간의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감정 없는 껍데기에는 아무리 어머니라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엘로이즈의 말에 모욕을 느낀 마리안느는 홧김에 수건으로 초상화의 얼굴을 뭉갠다. 마리안느가 보여준 그림을 보고, 이번엔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모욕을 느낀다. 쫓겨나듯 떠날 뻔 했던 마리안느가 기회를 얻은 것은 엘로이즈의 말 덕분이었다. "포즈를 취하죠."
 
초상화 모델이 포즈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적어도 엘로이즈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그가 포즈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일종의 저항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고, 결혼 전에 그 남자를 위해 자신의 초상화를 보내야 한다는 관습에 대한 반발.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내뱉은 엘로이즈의 치기 어린 말은 포기 선언일까? 이제는 저항하지 않겠다고.

 

끝없이 타오르던 불


 

엘로이즈는 사회와 어머니의 강요에 반 反 하여 싸워 온 사람이다. 사실 엘로이즈의 언니가 더 오래 싸웠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바뀌지 않는 세상과 그 세상에 편승하는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저항으로 죽음을 택했다. 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면 당신들의 뜻도 이루지 못하도록. 산책을 허락받은 엘로이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니가 떨어진 절벽을 향해 달리는 것이었다. 죽음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지, 그 저항을 자신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까.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을까. 미친 듯이 달리던 엘로이즈는 절벽 끄트머리에서 멈춘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뒤돌아 마리안느를 본다. 어쨌거나 그는 죽음이 아닌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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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락에서 포즈를 취하겠다는 말을 다시 보자. 죽음 대신 삶을, 삶에서는 평등을 바라던 엘로이즈. 포즈를 취하겠다고 말한 그 순간에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가부장제를 답습하는 어머니가 떠난 5일 동안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소피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 중심에는 엘로이즈가 만든 평등이 있다. 하인, 귀족, 화가의 신분이 아닌 세 여성, 세 친구, 세 사람으로 존재한다. 수평인 식탁을 앞에 두고, 왼쪽에서 엘로이즈가 식사를 준비하고, 오른쪽에서 소피가 자수를 두고,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을 오가는 마리안느의 모습은 엘로이즈가 말했던 평등이 그대로 실현되던 순간이다.

그러나 내부의 평등은 외부로 뻗어 가지 못한다. 초상화가 완성되고,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깊은 관계는 격정으로 치닫는다. 엘로이즈는 묻는다. 자신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느냐고. 마리안느는 그렇다고 답한다. 엘로이즈는 다시 묻는다. 그럼 결혼 하지 말까? 마리안느의 대답은 '아니.' 어머니가 돌아오면 엘로이즈는 얼굴도 모르는 밀라노 남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둘 중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일의 원흉인 세상의 관습을 탓하고 부수는 길은 너무 험난해서,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그들은 쉬운 방법을 택했다. 서로 탓하기. 하지만 이들에게 사랑할 시간은 물론 싸울 시간도 없다. 상대를 향한 분풀이는 닥쳐올 현실 앞에서 사그라진다.


 
밤은 너무도 짧고, 우리의 눈꺼풀은 너무도 무거워서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밤, 둘은 침대에 누워있다. 눈꺼풀이 감기는 엘로이즈를 마리안느는 다정스레 깨운다. 잠들면 안 돼, 잠들지 마. 그리고 11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쌓인 추억을 같이 나눈다. 당신이 처음 웃은 그날을 기억해, 카드 게임에서 내가 이겼을 때 당신이 눈을 흘기던 때를 기억해. 둘의 대화로 밤이 깊어간다. 잠들면 안 돼, 잠들지 마, 수차례 말을 걸며 서로를 깨워도 무거운 눈꺼풀은 막지 못했을 것이다. 눈이 감기고, 둘의 세상은 점멸한다. 그러나 어둠은 금세 끝이 나고, 일순 밝아지고 만다.

 

 
 

숨통을 옭아 매는



먼저 일어난 마리안느는 아래층에 도착한 짐꾼을 마주한다. 근처에 있던 소피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에 쐐기를 박는다. "어머니가 오셨어요." 마리안느는 방으로 돌아가 엘로이즈에게 말을 전한다. 편하게 널브러져 있던 엘로이즈는 그의 말에 몸을 일으킨다.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코르셋을 입고 뒤를 돈다. 마리안느는 그의 뒤에서 힘껏, 코르셋 줄을 당겨 그의 몸통을 꽉 조인다. 사회의 커다란 장벽을 부수지 못한 그들은 습관처럼 자신을 옥죈다. 숨쉬기 답답할 정도로 강하게.

 
가슴과 배, 허리를 비정상적으로 조이는 코르셋은 불편함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에는 생명도 위협한다. 코르셋을 필수로 착용하던 여성들은 장기가 뒤틀리고, 소화 기능이 느려지고, 철로 이루어진 와이어가 피부를 찌르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게다가 복대처럼 움직임을 제한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는커녕 허리를 굽히는 간단한 움직임도 어렵다. 앉아서 자수를 두거나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이 고작이다. 코르셋에 묶인 몸은 자유가 아니다.

문득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나눴던 대화 하나가 떠오른다. 엘로이즈 혼자 산책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허락하셨다고 마리안느가 말한다. 혼자라는 고독을 느껴보라는 말을 덧붙이며. 엘로이즈는 반문한다. "혼자 있으면 자유로운 건가요?" 그가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한들 상판에 있는 코르셋도 여전하고 강제로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도 여전하다.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겠는가.
 
그처럼 여성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그대로 떠안은 사람이 또 있다. 엘로이즈의 하인, 소피.

 
 

어느 한 쪽만의 책임


 

소피는 생리통에 시달리는 마리안느를 보며 넌지시 말한다. 생리를 안 한 지 석 달이 되었다고. 그러니까, 임신한 지 석 달이 되었다고. 아이를 원치 않는 소피는 낙태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무작정 달리기, 약초를 끓여 마시기, 공중에 매달리기.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함께 소피를 도왔다는 점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터무니없어 보이는 방식에도 모두 진지하게 임한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를 격려하고, 약초를 찾고, 어느 누추한 오두막에 가는 길을 동행한다. 오두막 안, 전문의도 존재하지 않는 어둑한 곳에서 낙태 시술이 진행된다. 마리안느는 괴로워하는 소피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다. 자신도 겪어 본 고통이기에 괴로운 탓일까. 그러나 엘로이즈는 똑바로, 두 눈으로 보라고 한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을 것처럼 올곧게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이렇게나마 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처럼.


괴로워하는 소피의 옆에는 어린아이가 있다. 한 두 세 살쯤 되었을까. 소피의 손가락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듯이 눈가를 만지고, 옹알이한다. 저 아이를 품었던 여성은 원했던 임신이었을까, 원하지 않던 임신이었을까. 바란 대로 아이를 낳은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어야 했을까. 책임과 고통은 왜 한 성별만 향할까. 만약 소피가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서 혼자 길러야만 했다면 소피의 인생은, 소피가 낳은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울듯이 웃는 소피의 얼굴은 슬픔과 왠지 모를 안도가 담겼다. 이 복잡한 감정은 신분 관계없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어려움이다. 엘로이즈의 주도로 세 사람은 빠르게 친구가 되었지만, 그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같은 괴로움을, 고통을, 차별을 겪는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쯤보면 영화의 결말은 당연한 순리를 따른 것 같다. 세상의 불합리한 규칙을 바꾸지 못한 개인은, 열망과 희망을 묻어두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그리고 그 둘은



잠시 영화를 뒤로 돌려 세 사람이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어느 저녁으로 돌아가 보자. 오르페우스의 와이프 에우리디케는 우연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에게 애원한다. 에우리디케를 살려 달라고. 그의 슬픈 연주에 감동한 둘은 에우리디케를 살려 줄 테니 이승으로 가기 전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이른다. 에우리디케를 또 잃을까 봐 겁먹은 오르페우스는 그 충고를 무시하고 뒤를 돈다. 에우리디케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작별을 한다.


소피는 충고를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은 오르페우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리안느는 소피의 마음도, 오르페우스의 겁먹음도 이해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본다. 오르페우스가 자의로 뒤를 돌았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와 비슷하게 엘로이즈도 말한다.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뒤돌아 보라고 했을지 모른다고.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도 이 신화처럼 작별한다. 엘로이즈가 부르고, 마리안느는 잠시 멈칫하다가 뒤돌아 엘로이즈를 본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끊은 관계가 아니다. 둘은 상대를 추억하기로 선택했다. 신화의 결말대로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리안느는 보고, 엘로이즈는 보지 못한다. 둘은 짧은 조우를 만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원하지 않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엘로이즈의 생은 죽음과 다름없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좋아하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울부짖듯이 웃었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삶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기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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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가 자수를 시작하던 때에는 싱싱하던 꽃이 자수를 완성할 즘에 시들어 버린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각자가 지닌 서로의 그림으로 남는다. 더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닌 어떤 흔적으로.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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