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사회의 마스터키, 돈 [영화]

영화 <돈>에서 그려낸 우리 사회
글 입력 2020.02.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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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욕망은, 바로 돈에 대한 욕망이다. 2015년 미국 백만장자 2,251명을 대상으로 UBS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다수의 백만장자가 지금 자산의 2배 이상은 더 모아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가 꿈꾸는 백만장자들조차 자신의 재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막대한 부를 소망하고 있다.


렇다면 왜 인간은 이처럼 부를 끝없이 갈구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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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속 우리 사회,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화 <돈>은 범죄오락 영화이다. 범죄 영화의 특징인 권선징악적 서사를 이용해 관객에게 ‘정직하게 벌자’라는 주제를 전달해준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정직하게 번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영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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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와 만났다는 증거 사진을 건네받은 일현은 이상 거래가 적발될까 두려워, 바로 번호표를 만나러 간다. 이후 번호표를 만났을 때의 시퀀스를 보면, 일현은 어린아이가 사진을 찍는 것에도 초조함을 느낀다. 하지만 오히려 번호표는 웃으면서 아이에게 계속 찍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가가 사진 좀 보자며 아이의 핸드폰을 발로 밟아 고장 내고는, 아이에게 돈을 주면서 엄마한테 가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일현에게 떳떳하게 나가라고 말한다. 그가 떳떳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다. 아이의 핸드폰을 파손시켰음에도, 번호표가 준 큰돈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이 엄마의 모습이 이어진다. 즉, 이 시퀀스는 돈으로 모든 해결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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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 지하철 체포 시퀀스에서도 이는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영화 속 선인인 한지철은 증거를 얻으려고 다급하게 지하철 바닥을 기면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하지만 체포되는 번호표는 오히려 여유롭게 다친 일현에게 손수건을 건네면서 “살아있으면 다시 만나지.”라고 말한 후, 연행된다. 이때 일현을 보고 웃으며 연행되는 번호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거나 무죄로 처벌될 모습이 예측되기도 한다.

 

 

 

다른 범죄 영화와의 차이, <범죄도시> & <베테랑>



그렇다면 다른 범죄 영화에선 어떠한가? 같은 오락 범죄 영화인 <베테랑>과 <범죄도시>의 체포 시퀀스를 비교해보자. <베테랑>의 경우, 악인인 조태오는 선인인 봉윤주(미스봉)의 발차기를 맞고 길바닥에 쓰러지면서, 매우 보잘것없는 캐릭터로 그려지며 마무리된다.


<범죄도시>에서도, 선인 마석도는 싸움 이후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오는 반면, 악인 장첸은 마석도가 채운 수갑으로 인해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기절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많은 범죄영화 속에서 악인은 대부분 선인 앞에서 나약하게 표현되거나 하찮은 존재로 결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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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에서는 번호표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있는 자가 여유롭고, 그 여유는 돈으로 모든 해결되는 사회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말 차이를 통해 영화 <돈>은 돈이 마스터키인 우리 사회를 그려낸다. 영화 <돈>은 서사를 통해 ‘정직하게 벌자’라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녀야 할 태도를 전하는 동시에,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라는 우리 사회에서의 배금주의를 동시에 시사한다.


플롯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시퀀스의 번호표를 통해 현실적인 우리 사회를 담아냈다. 진부하고 비현실적인 권계적인 이야기 속에서 번호표라는 인물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통해 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현실은 아직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법의 힘보다 돈의 힘이 더 강하다. 그래도 당신은 정당하게 돈을 벌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부정한 현실을 비판한다.

 

 


 


감독은 차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우리 사회를 모른 체하고, 비현실적인 권선징악적 이야기로만 영화를 끝낼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이 부분에서 ‘일한 만큼 벌자’는 영화 속 주제가 현실적 모습을 담아내면서 흐지부지되었다고 생각해 안타깝다. 원작의 결말을 각색해 일현이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는 교훈적 결말을 담고자 했으면, 그에 맞춰 번호표 역시 선인과 법 앞에서는 나약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주제를 강조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생각해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당신, 어떻게 할 것인가? 양심을 포기하고, 현실에 수긍해 재력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일한 만큼만 벌지만,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일현이 될 수 있다. 입사 초기, 일현도 자신이 불법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올지 모른다. 돈에 대한 태도, 즉 가치의 우선순위를 생각하지 못한 일현은 유혹의 손길에 줏대 없이 휩쓸렸다가, 다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아직 그런 상황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돈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가치를 생각해보고 이에 대처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윤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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