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과 사의 경계, 그 너머에는 – 천국보다 아름다운 [영화]

죽음 이후 나를 찾아올 꿈은 무엇일까
글 입력 2020.02.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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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죽는다는 것이 참 무서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도 슬펐지만 가장 큰 공포로 다가왔던 가정은 사후세계가 없어서 내 몸이 죽은 후에 나의 의식도 사라지는 것이었는데 어렸을 때의 나는 이런 가정을 가끔 떠올릴 때마다 소름 끼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게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책들은 마냥 흥미로움만 주는 것이 아닌 어쩌면 훗날 내가 죽으면 마주하게 될 곳에 대한 힌트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중에서도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이 저런 곳이라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했던 영화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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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날, 광활한 산맥 아래 호수에서 크리스와 애니는 운명처럼 만난다. 사랑에 빠진 둘은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이들을 한 번에 잃게 된다. 시간이 흘러 4년 뒤 어느 날, 애니의 부탁을 들어주던 중 불의의 사고로 크리스도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애니를 두고 떠날 수 없는 크리스는 자신이 옆에 있다는 것을 계속 알리지만 실존하지 않는 크리스의 외침과 몸짓은 애니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결국 괴로워하는 애니의 모습에 크리스는 죽음의 세계로 떠난다. 사후세계에 도착한 크리스의 눈앞에는 애니가 평소에 그리던, 자신과의 삶을 꿈꾸며 그려낸 그림 속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앨버트를 만난다.
 
앨버트의 안내로 크리스가 자신만의 천국에서 적응하며 지내던 중, 홀로 남은 애니는 자살을 선택한다. 애니의 소식을 듣고 슬프면서도 다시 함께할 수 있다고 여긴 크리스에게 앨버트는 자살한 이들은 순리를 어겼기에 지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랑하는 남편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의 애니를 데려오기 위해 크리스는 자신의 천국을 뒤로하고 지옥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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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리처드 매더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지만 원제는 “What dreams may come”이다. 어떤 꿈이 이루어질 것인가라고 직역할 수 있는 이 구절은 그 유명한 햄릿의 독백에서 가져온 것이다.

죽음의 잠 속에서 어떤 꿈이 펼쳐질까(For in that sleep of that what dreams may come), 햄릿만큼의 고뇌가 담겨있지는 않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모두는 이 질문을 마음 속으로 반복한다. 사람들은 죽으면 그 이후에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것, 우리가 마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두려워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듯이 사후 세계에 대한 각자의 상상도 그러할 것이다. 죽은 크리스가 마주한 사후 세계는 그의 소울메이트인 애니의 그림 속이다. 생전 아내의 예술 활동을 더없이 지지했고 보탬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는 그 이상의 천국이 없을 것이다. 영화의 감독 빈센트 워드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사후세계를 하얀 빛과 구름으로 가득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회고한다.
 
애니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순 없지만, 그가 계속 그리는 그림의 세계에서 크리스는 살아간다. 그렇게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천국에서 애니와의 행복했고 슬펐던 날들과 꿈꾸었던 미래를 추억하고 때론 후회하는 과정은 함께 할 수 없는 부부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둘의 사랑과 연결고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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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영화의 영상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는 언제나 그러했듯 극중 인물 그 자체이기에 왠지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글프다.

애니 역할의 애너밸라 쇼라의 연기 또한 대단하다. 행복이 넘치던 때와 아이들이 죽은 후 피폐해진 모습, 겨우 극복하러 노력하면서도 일상에서 불안함이 자리한 모습과 크리스의 죽음으로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너무나 다른 순간들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어렸을 때 이후 참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던 인물들의 감정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와닿으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기에서 먼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크리스의 천국이 생전의 사랑과 상실의 순간에서 다독이면서 이루어낸 관계의 산물이듯이 어쩌면 삶을 사는 우리의 날들이 각자의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만들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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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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