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국엔 버텨내야만 하는 시절, 씁쓸한 성장물 -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누가 아이들을 내몰았을까
글 입력 2020.02.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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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특이한 제목의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레오타드를 입는 것이 취미인 준호와, 자신이 선망하던 친구에게서 훔친 안나수이 손거울을 들고 다니는 희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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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학교에서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다. 상위권 학생들만 할 수 있다는 고액 과외 모임의 중심에 있으며, 싸움도 잘하고, 같은 학교 여자친구와 알콩달콩한 연애도 하는 인기 있는 학생이다. 반면 희주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어려워진 형편에 패스트푸드 점에서 알바를 하며 학원비를 벌어 가는 학생으로, 모두에게 날을 세운 말투로 대하는, 선생님조차 알고 있는 학교의 공식적인 왕따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철저히 나누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준호와 희주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희주가 레오타드를 입고 있는 준호의 사진을 얼굴만 모자이크한 채로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부터 그들의 관계는 달라진다. 희주는 그 사진을 빌미로 준호를 협박한다. 2인 1조로 춤을 추어야 하는 체육 수행평가를 같이 하자는 것이다. 준호는 레오타드를 입은 남학생이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그 제안에 응하고 그들은 같이 수행평가를 준비하게 된다. 연극에서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1).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고 심적인 안정을 찾는 것은 철저히 준호의 취향이며 자유이다. 그렇기에 준호의 행동은 누구에게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희주는 철저히 준호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몰래 빼돌렸으며, 인터넷에 올리고 심지어 그것을 빌미로 준호를 협박까지 한다. 희주는 그것이 준호에게 큰 약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준호는 희주와의 대화에서 희주를 꾸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희주의 험담을 하고 조롱하며 괴롭힌다. 또한, 희주가 연습할 때 알바를 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점의 유니폼을 입고 오자 그것 좀 벗으면 안 되냐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준호는 희주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이런 태도를 보인다. 게임 방송을 좋아하는 것, 성적이 좋지 않은 것, 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준호에게는 무시의 대상이다.

준호와 희주가 이렇게 모난 모습들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그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희주는 힘든 가정 형편과 원만하지 못한 교우 관계 속에서 대학이 이 모든 것의 탈출구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준호를 협박한 것은 목표로 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체육 수행평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자신으로서는 짝을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단행한 일이었다.
 
반면 준호는 교육열이 높은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좋은 대학과 성공만을 위해 과도한 통제 아래에서 줄곧 살아온 학생이다. 이런 준호가 무리에서의 배제, 낮은 성적, 가난 등을 향해 혐오의 말을 쏟아내며 날을 세우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배워온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발악일지 모른다. 그 가치들이 사실은 옳지 않으며, 그것을 믿을 수록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물론 준호와 희주의 이런저런 사정들이 옳지 않은 언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내몰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기도 전에 사회의 차가운 시각을 내면화해버린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마냥 비난한다는 것은 어쩐지 가혹하게 느껴진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4).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사회 속에서 그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 미성년자로서 대우 받기 때문에 사회가 만들어낸 틀에 수긍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연극의 무대는 쇠파이프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무대 장치가 쓰이지 않는다. 관객 석에서 보면 무대의 공간이 아이들을 가두는 거대한 철장처럼 보였으며, 그 철장은 사회가 만들어낸 틀을 상징하는 듯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쇠파이프가 만들어낸 공간 안에서 직선적으만 움직였다. 그 틀 밖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쇠파이프 사이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춤을 추는 준호와 희주의 수행평가 장면이 더욱 반가웠다. 수행평가 직전, 희주는 자신의 오랜 열등감을 상징하는 안나수이 손거울을 깨버렸고, 준호는 갈등 끝에 빨간색 레오타드만 입고 수행평가 장소에 등장한다.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덮고 있던 열등감에서 한 발짝 걸어나온 희주. 개개인의 개성을 감춰버리는 교복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 두 사람이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모두의 앞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I'm beautiful in my way

나는 내 방식대로 아름다워

'Cause god makes no mistakes

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I'm on the right track baby

나는 맞는 길로 가고 있어

I was born this way

나는 이렇게 태어났어


 

준호와 희주는 여태껏 억눌렀던 감정들을 모두 풀어내듯이 정말 신나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들이 춤을 춘 레이디 가가의 노래의 가사처럼 세상 모두가 그들의 모습을 인정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수행평가 이후, 준호가 항상 두려워했던 것처럼 준호는 외톨이가 되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모두 준호를 외면했고, 부모조차도 준호를 부끄러워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학 절차를 밟았다. 희주도 마찬가지였다. 거울까지 깨며 열등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희주는 여전히 왕따였고, 홀로 알바와 입시를 병행하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연극은 희주의 철봉 매달리기 장면으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끝이 난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2).jpg

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다른 애들 하는 거 보면 누가 밑에서 잡아 주는 거 같고, 누가 옆에서 응원해주는 거 같거든.
 
나도 그러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두가 떠난 무대 위에서 혼자 철봉에 매달리고 있는 희주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희주의 표정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희주가 고독하게, 그리고 악착같이 철봉에 매달리는 것처럼, 청소년기의 삶이란 주어진 상황을 결국엔 홀로 버텨내야만 하는 시기인 것일까. 그렇게 버텨내고 나면 그 끝에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 시절을 버텨낸 어른들도 마음 한구석의 아이를 지우지 못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간신히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세상을 버텨낸, 버티고 있는, 버텨낼 모든 아이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끝까지 버텨서 우리 언젠가는 악물고 버티지 않아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자고.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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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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