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물의 바다와 소소한 행복 - "사양" [도서]

행복이라는 것은 비애의 강물 바닥에 가라앉아서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이 아닐까.
글 입력 2020.02.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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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을 읽은 지 반년 만입니다. 어쩌다 그의 소설을 다시 찾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전에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긴 했습니다.

 

『사양』은 2차 대전 전후의 몰락한 일본 귀족 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이 문학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계층의 관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은유와 상징으로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귀족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국인인 우리가 읽는 책은 번역서입니다. 20세기 중반 일본 귀족 가문의 문화와 말투, 혹은 일본 특유의 은유나 상징을 우리가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책에 담겨있는 분위기나 어조에 주목하여 서술자와 인물들의 발화를 천천히 따라가며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하는지는 독자의 자유이고 모든 독서의 방식은 고유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는 『사양』이라는 책은 저의 이러한 독서의 방식으로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논의하고 있음을 미리 알릴 뿐입니다.


 

[크기변환]Osamu_Dazai.jpg

 

 

잠깐 번역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번역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두 언어를 동시에 잘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문학 텍스트에서 구현되는 언어는 각 어휘와 표현 자체의 명시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학 작품의 이미지와 분위기, 세계관을 담고 있는 한 작가 특유의 기호(記號)입니다. 따라서 문학적인 번역은 작가 개인이 완성한 일종의 체계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한 텍스트와 그 분야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번역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고안한 섬세한 문체와 서술방식은 일본어 내에서 작동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다소간 의미의 손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제가 이 글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나 작가가 전해주는 의미에 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읽은 『사양』은, 한국의 다자이 오사무 학자가 제시하는 『사양』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이자, 전문가가 이해한 분위기와 이미지입니다.


저자의 텍스트는 한국인 대리인을 통해서,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문체와 분위기가 가공됩니다. 따라서 저는 2차 대전과 당시 사회상에 관한 것들에서부터 조금 자유로워져 21세기 한국의 독자인 제가 이 번역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의 울림이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

 

작품은 가즈코라는 여성인물의 1인칭 서술을 통해 전개됩니다. 귀족 집안에서 무탈하게 자란 이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로 가문의 위세가 점점 무너지자 점점 대중적인 세계에 노출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난들을 겪게 되는데, 이 인물 안에서 그려지는 감정들은 기묘합니다. 슬퍼서 울긴 합니다만,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슬퍼하기보다는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울게 됩니다. 그녀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말 그대로 크고 작은 고난들입니다. 사건들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만, 공통적으로 이 인물의 연약함이 드러나고 여기서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촌장 후지따 씨, 니노미야 순경, 소방단장 오오우찌 씨 등이 찾아왔다. 후지따 씨는 평소처럼 온화한 웃는 얼굴로,
“놀라셨지요?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물었다.

“제가 잘못한 일이에요. 불이 꺼진 줄 알고 장작을......”

하고 말하다가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 눈물이 마구 흘러나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경찰서에 끌려가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에다 잠옷 차림은, 흐트러져 엉망인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면서 정말이지 영락했구나 싶었다.


- 『사양』 中

 

나는 장교에게 달려가 문고본을 내밀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아 잠자코 장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두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나왔다. 그러자 그 장교의 눈에서도 눈물이 반짝였다.


- 『사양』 中



초반에는 가즈코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정말 자주 나옵니다. 가즈코네 집안은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고 그곳의 생활은 가즈코에게 낯설고 새롭습니다. 한번은 한밤중에 뒷간에 불이 붙은 걸 발견하고는 동네 사람들을 급하게 깨워 물을 퍼다 나르며 가까스로 불을 진화합니다. 자기 전에 집단속을 단단히 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곤 가즈코는 눈물을 흐립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가즈코는 여성 노동자로서 징용 대상으로 통보 받고 노동 현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서 한 장교가 가즈코를 따로 불러내어 휴식을 취할 기회를 줍니다. 인용한 부분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짧은 장면입니다. 짧은 에피소드인 이 부분에서의 눈물은 마치 한 작품의 마무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무겁고 가슴 찡하게 그려집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 하나하나에서 가즈코는 계속 눈물을 흘립니다.

 

소설 속에서 눈물은 고요하고 평안한 어조로 설명됩니다. 가즈코의 생활은 눈물로 점철되고, 점잖고 예의바른 한 소녀에게서 “눈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독자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절망을 끝끝내 받아들이는 눈물도 아니고,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가즈코는 부조리를 느끼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고 동생은 가출합니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고 군대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매 순간 삶의 부담은 가즈코에게 온전히 내려앉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이 부담의 순간 나타나지 않고 이 위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입니다.

 

위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흘리는 눈물은 어리광이 없는 눈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즈코의 눈물은 눈물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순간들에만 흐릅니다. 좌절감이 느껴지거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으로부터 조금 멀어졌을 때 비로소 흐릅니다. 가즈코라는 인물은 주변 상황을 굉장히 의식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눈물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부끄러움’입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나오는 식의 자아의 깊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신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이러한 단서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그녀는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울음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 울도록 훈련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느껴진 것은, 슬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둘 중에서 슬픔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한 것 같습니다. 이 인물을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슬프고, 눈물의 이미지도 슬프고, 위기의 상황들은 넘기고 나서 비로소 우는 인물의 모습도 슬픕니다. 이는 일본 문화나 일본어의 특징에 대한 이해 없이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반말을 쓰던 어머니가 왜 가끔씩은 자식한테 존댓말을 쓰는지도 모르겠고, “나는”이라고 말하지 않고 “가즈코는”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3인칭 주어로 지시하는 게 일본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서술 방식이 왜 독자를 슬프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슬픔이 몰아치는 소설은 저로써는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유 불명의 슬픔은 저에게 있어서 잔잔한 위로로 이어졌습니다. 가즈코라는 인물은 절망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절망을 느끼고 슬퍼해야할 순간에는 어떻게든 버텨내고 그 순간이 지나서 눈물 흘리는 인물입니다. 절망의 순간에 어리광을 부려보지 못한 인물입니다. 아픔의 순간에는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고 다른 새로운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냅니다. 이 어설픈 인물을 보고 있자니 붙잡아 세워놓고 울어야 할 타이밍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이러한 기분이 결국 위로로 이어지는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도 저와 같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행복이라는 것은 비애의 강물 바닥에 가라앉아서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이 아닐까.


- 『사양』 中


 

가즈코의 말입니다. 삶을 강에 비유하자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비애의 강물이고, 행복은 이따금 나타나 비애로 가득한 삶에 희미한 빛이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가즈코의 어조(tone)를 읽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절망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희망조도 아닙니다. 조소의 느낌이라고 하자니 소설의 분위기랑 맞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는 슬픔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이러한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도 있는 것입니다. 언어는 온갖 수사(修辭)를 통해 그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하지만 노력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애쓰지 않고, 그대로 강물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감정들을 받아들일 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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