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건강한 도피, 운동으로 불안의 고리를 끊는 습관 [스포츠]

글 입력 2020.02.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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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PT를 드디어 끊었다. 내 주변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반년 전 처음 헬스장에 등록할 때부터 PT를 끊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을. 그러나 8회에 40만원이라는 돈은 상당한 거금이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으며 일하는 인턴 신분으로 그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는 건 사치가 아닌가 싶어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엉겁결에 얼마 전 PT를 끊게 되었다. 이유는 나름 복합적이다. 친한 지인이 3개월치 PT를 끊는 걸 보고 자극을 받은 것도 있고, 또 지금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있다. 아령을 들고 나서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자 내가 뭔가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겁이 났다.


지금 제대로 배워야 나중에라도 꾸준히 혼자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의지력에 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는데, 회사를 오가면서도 1주일에 3번씩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었던 터라 습관이 붙었기 때문이다. 결국 난 상담 끝에 ‘운동을 배워보겠다’ 라는 다소 거창한 목적을 갖고 PT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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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지금은 겨우 2회차를 마친 다음날이다. 끙끙거리고 부들부들 떨며 겨우 수업을 따라가던 어제의 내 모습은 도저히 5개월 간 헬스장을 꾸준히 다닌 모범 회원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실 체성분 측정을 하고 조금, 많이 당황하기는 했다. 표준 체중인데 체지방률은 표준보다 높았고, 근육량은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특히나 팔 근육량이 가장 떨어지는 걸 보고 대체 나는 그간 무슨 운동을 한 걸까 싶었다.


PT를 받고 바로 깨달았다. 내가 해왔던 운동법에 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어떤 자세는 어깨와 허리, 관절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는 잘못된 자세였고, 몇몇은 틀린 자세는 아니지만 영 엉뚱한 부위를 운동하고 있었다. 정석대로 일일이 코치를 받으며 웨이트를 했더니 세상에, 팔다리가 정말 표현 그대로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는 게 아닌가! 너무 민망하고 당황스러워, 트레이너 쌤한테 이유를 묻기도 했다. 당연히 근육 부족 탓이었다. 난 갈길이 먼 학생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에너지가 부족해 어지럽고 입맛도 사라졌다. 근손실을 막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자니, 운동의 운 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몸 움직이는 건 죽어도 싫었는데 이제는 피땀 흘려 번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운동을 하는구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해졌다. 딱히 몸매를 가꾸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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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에서는 현대인이 우울을 겪는 이유를 호르몬과 연관지어 가며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 중 가장 크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건 뻔하지만 운동이다. 거창하게 ‘운동’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는 유익한 신경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내가 죽어라 몸을 움직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이다. 몸이 힘들면, 나는 몸에 집중을 하게 된다. 일, 직장 사람들, 인간관계, 취업난, 사회 문제, 그 무엇에도 우울감을 느낄 여력이 없다. 어찌 보면 건강한 도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많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공허함에 휩싸이는 사람이라면, 격렬한 운동이 제법 해결책이 된다.


아니, 이런 게 건강한 도피가 맞는 걸까?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잊기 위해 다른 걸 한다는 건, 무책임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의 나는 이런 류의 질문에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의 고리, 자기검열의 고리를 자를 수 있는 수단이 운동이 될 수 있다면 무책임해도 뭐 어떤가.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며 살기에는 이미 세상이 충분히 피곤하니까. 그보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체육관에 출석 도장을 찍는 편을 택하겠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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