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수한 선과 형태가 가진 움직임, "알렉산더 칼더 展"

알렉산더 칼더 展 : 칼더 온 페이퍼
글 입력 2020.02.0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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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에서 만났던

January 31, Alexander Calder, 1950

 

 

원색을 띠는 기하학적 형태들이 균형을 이룬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은 듯 이 균형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칼더 뒤에 가장 먼저 따라오는 수식어는 역시 ‘모빌’이다. 처음 그의 작업과 마주했을 때, 모빌이 가진 이미지와 칼더 작업 사이의 괴리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추상적이면서 정돈된 언어들은 계속해서 눈길을 끈다. 모빌의 스케일에 압도된 감각은 여전히 단단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다시 한번 그가 공간에 그려낸 감각의 쾌감을 기대했다면, K현대미술관 <칼더 온 페이퍼>에서는 평면 속에 녹아든 그의 생각을 읽으며 지성적 쾌감 또한 배가 된다. 알렉산더 칼더는 모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모빌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흐름을 따라 걸으며 선명하게 남겨진 생각의 발자취를 조심스레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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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그 ‘움직임’에 대하여


 


그는 1923년, 내셔널 폴리스 지에서 삽화가로서 일하게 되었고, 1925년, 링글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를 2주간 취재하였다. 칼더는 서커스에 출연하는 동물들, 곡예사, 광대 등을 드로잉 하며 그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고, 이는 이후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칼더는 서커스 취재 당시 동물들을 그리는 데에 큰 관심을 가졌다. 칼더는 주로 동물들의 움직임을 담아낸 단선 드로잉을 즐겨 그렸으며, 이 외에도 이솝 우화 등에 들어갈 삽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여러 묘기를 선보이는 작은 서커스 공연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가 있을까? 아슬아슬한 곡예를 따라 마음도 짜릿한 줄타기를 한다. 전시장의 처음 발 딛는 공간에서, 그가 서커스 그리고 서커스에 출연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품었는지 잘 보여주는 드로잉을 만난다.


동물, 서커스, ‘움직임’을 사랑하는 칼더의 마음은 여러 일화에서 잘 알려져 있다. 칼더는 특히 동물원에서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것을 선으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수백 점의 드로잉을 모아 <동물 스케치하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가 담아낸 동물들은 역동적이다. 그가 그어낸 선은 살아 숨 쉰다. 대상을 선으로 잡아끌어본 사람은 안다. 선이 자유롭게 춤을 추기까지는 정말 많은 마음을 쏟아야 한다. 대상이 가진 선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을 때, 비로소 선은 춤을 추고 평면 속 대상들은 자유를 만끽한다. 그의 선에서 춤추는 마음의 자취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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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는 이 시기에 엘머 E.스콧이 쓴 시, <요-상한 개, 또는 오줌 누는 강아지>의 삽화를 담당했다. 프레임 속에 다양한 볼거리와 핵심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이 다 같이 오줌을 누고 있다.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공간 묘사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측하게 하는데, 상점 앞 그리고 철로 근처에서 강아지들이 줄지어 다니는 모습은 굉장히 재치 있다. 함축적인 언어들은 머릿속에 웃음 가득한 이야기가 흐르게 한다.

 

실제로 그는 본인의 서커스 공연을 몇 차례 진행한다. <칼더의 서커스 Cirque Calder>에서 철사, 가죽, 천으로 만들어진 곡예사들이 다양한 묘기를 선보인다. 그가 작은 동력을 주면 그들은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난 듯 본인이 가진 생명력을 맘껏 뽐낸다. 전시장에서 재생되고 있는 그의 공연은 유튜브에서도 되돌려볼 수 있는데, 영상 속의 이동식 가방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곡예사들은 때로는 간단한 원리, 때로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원리를 이용해 움직인다. 움직임에 대한 연구, 인물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연구에 얼마나 집중했을지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서커스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평면 속의 그의 재치가 ‘움직임’으로 나타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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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의 코스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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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속의 입체에서 ‘입체 속의 평면’으로


 


칼더는 몬드리안이 예술적인 실험을 위해 계속하여 배치한 직사각형의 색깔 종이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한 이후 칼더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사용하는 추상미술의 세계로 뛰어든다. 또한 그는 몬드리안이 주로 사용하였던 빨강, 파랑, 노랑 등의 강렬한 원색과 검정, 흰색을 대부분의 작품에 사용한다. 더 나아가 칼더는 몬드리안이 거절했던 작업, 즉 추상 미술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고, 곧 움직이는 조각인 ‘모빌’을 만들게 된다.


 

K현대미술관에서 칼더가 작업한 방대한 양의 드로잉과 페인팅을 만날 수 있다. 의도되었다기보다는, 마치 그 자체가 생명을 얻은 듯 흘러내리고, 쏟아지고, 굴러가는 선과 면은 마음속에 순수한 생명력을 남긴다. 추상미술은 순수해지려는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평면 속에서 입체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거부되고, 건축적이고 조형적 요소를 모두 배제한 평면 그 자체를 추구한다. 추상미술은 대상을 묘사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왜 예술은 반드시 정적이어야만 하는가? 추상을 본다고 해보자. 조작된 것이든 그려진 것이든, 그것은 굉장히 흥미롭게,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면, 구, 핵으로 조합되어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조각의 영역에서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움직임이다." - 칼더


그는 몬드리안의 작업을 보고 감명을 받았고, 그 직사각형들이 움직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내 그림들은 이미 아주 빠르거든’ 제안을 거절한 몬드리안과 달리 칼더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추상 미술을 움직이게 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평면 속에 올려진 기하학적 형태들은 다시 공간 위에 올려진다. 칼더의 작은 조각은 관객의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인다. 이후에 그가 모빌을 만들기까지 어떤 고민들과 생각을 했을지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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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현대미술관의 <칼더 온 페이퍼>는 시작부터 논란이 있었다. 주로 그의 평면 작업이 배치된 전시장은 중간중간 공간 전체를 독특하게 연출하여 관객들이 공간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였는데, 그곳에 설치한 오마주 작품이 표절 논란에 휩쌓였다. 결국 그 작업을 철수하여 현재는 볼 수 없다. 이렇듯 시작부터 논란이 있는 전시였으나 단순히 작품 향유의 공간이 아니라 공감각을 느낄 수 있는 전시이리라 작은 기대를 걸었다.

 

전시장 공간을 나누어 흐름을 따라 걷게 하는 것은 좋았으나, 관객들에게 공간적 재미 요소를 주려고 의도한 부분이 오히려 전시 전체의 흐름을 끊어지게 하여 아쉬웠다. 칼더 작업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부족해 보였다. 몬드리안과 칼더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연출한 공간은 심지어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의 즐거움조차 부족했으며, 마지막 공간의 벽에 그려진 수식들은 칼더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였다. 액자 속에 칼더의 드로잉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리가 소홀한 듯 보였으며, 벽면의 화질 낮은 포스터는 전시 몰입도를 방해했다. 오래된 놀이공원 위에 서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작권 이슈로 내부 촬영이 불가하다던 전시 설명과는 달리, 촬영은 자유롭게 가능했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에는 관람객이 4-5명 남짓으로 매우 작았는데, 작품보다는 사진 촬영에 적당한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이 많았다. 전시 후기 중에 ‘작가보다는 미술관을 위한 전시’라는 평을 읽었는데, 그 말대로 전시 기획이나 연출 부분에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관객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조금만 더 고민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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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더 칼더 작품 세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디어 아트로 구성했다는 공간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와 칼더 작업의 관계성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K현대미술관의 <칼더 온 페이퍼>가 아쉬움이 많이 남음에도 좋았던 것은 칼더의 평면 작업과 그 흐름을 있는 힘껏 들이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향력 있는 작가의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인 만큼 작품과 기획 사이의 관계성에 더 주목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K현대미술관의 기획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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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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