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결한 자, 돌을 던져라. – 연극 마터 [공연]

글 입력 2020.02.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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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 본 연극 중 가장 자극적이고 강렬했던 극, <마터>

극장을 나온 후에도, 나는 연극 속 학교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옆에서 벤야민이 숨을 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쏟는 혐오의 시선이 나를 향하지 않을까 무서웠고, 그러한 시선을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극을 보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문득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연극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그리고 극복해야 할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솔직하게 마주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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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찬
한 학생이 불러온 파국
순결한 자, 돌을 던져라.

종교를 넘어 자신의 신념에 과몰입한 사람의 모습을 강렬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변에 존재하는 비정상에 대한 혐오로 둘러싸인 사회의 이기성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구분 짓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일까?

 

마터 MARTYR


1. 순교자 - 어느 종교에서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자

2. 순교자인 체하는 사람

3. 끊임없이 시달리는 사람

 

 
 
벤야민; 자신만의 신념에 빠진 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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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알코올 중독인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이혼 가정으로 그들은 피상적으로만 가족의 모습을 띌 뿐,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벤야민의 종교적 신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머니도 잘 모른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아들이 약을 했다는 둥 잘못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 벤야민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성경을 들고 성경의 구절들을 외우다시피 하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게 된다.


그 시작으로, 비키니를 입은 여학생들과 함께 수영 수업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수영 수업을 거부한다. 과학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 교장 선생님까지 이 일에 관여하게 되어 결국엔 여학생들의 수영복을 제한하는 교칙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과학 선생님인 로트가 올바른 피임 방법과 콘돔 사용법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자 이 또한 성경 구절을 읊으며 거부한다. 교장 선생님은 벤야민의 말에 편들며 결국엔 로트는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계속해서 학교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막고 고릴라 탈을 쓰고 고릴라인 척 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행위들을 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벤야민은 성경의 구절에 따라 육체의 정욕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에 대한 무시와 성희롱이 담긴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혼한 엄마는 그에 따른 벌을 받을 것이고, 로트 선생의 이름이 유대인의 이름이기에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며 모함하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엄청난 혐오를 느낀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학급의 여학생에게 정욕을 느끼며 사랑을 나누고 게오르그의 입맞춤에도 응한다.
 
자신의 신념이 맞다고 믿지만, 그 신념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묵인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과는 달리 제멋대로 성경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입맛대로 성경의 말씀을 세상에 구현하려고 한다. 결국엔 순교자인 체하는 사람이 되어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자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희생자로 만든다.
 
 
 
로트; 벤야민에 의해 탄생한 마터

 

학교 수업에서 계속해서 유별나게 행동하는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학 선생님 로트는 성경을 공부하게 된다. 성경을 보면 과학적, 논리적 설명이 불가한 부분들이 있다. 수많은 고난과 억압을 이겨내고 부활한 이야기와 지구, 이 세계가 탄생한 과정을 과학 선생님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면 억지와 모순덩어리이다. 인류의 탄생, 남성과 여성, 지구의 탄생 등 사사건건 과학 수업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훼방을 놓는 그에게 올바른 과학적 사실과 논리를 알려주기 위해선 성경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기에 그녀는 성경에 매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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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과학 수업에서까지 성경 속 논리를 끄집어내어 수업을 망치려고 하는 와중에 교장 선생님은 말도 안 되는 벤야민의 편을 들며 성적인 농담과 희롱을 별 생각 없이 로트 선생에게 던진다. 점점 주변인들도 로트 선생을 이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지만 벤야민이 말하는 성경 속 논리가 틀렸음을 이야기하고 벤야민이 더 이상 종교에 과몰입하지 않길 바라며 그를 설득한다. 하지만 벤야민의 반항을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엔 오히려 역으로 로트는 가정과 학교에서까지 배제당한다. 벤야민의 거짓 증언에 이어 ‘비정상에 대한 혐오’의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는 종교에 과몰입된 미쳐버린 여자가 된다. 벤야민이 만들어낸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 벤야민은 로트 선생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로트 선생이 학교에서 추방당하게 만든다. 극 내내 눈에 광기가 서려 있던 벤야민은 거짓 증언을 할 때만큼은 일반적인 피해 학생처럼 보이며 끝까지 로트 선생이 미치도록 조작하고 상황을 제어하는 모습이 너무나 소름끼쳤다.


벤야민에게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로트 선생의 이성은 무너졌고 그녀의 설득 또한 실패했다. 결국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비정상으로 내몰았고 그 혐오의 시선은 그녀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이 맞다고 외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학교에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이 맞음을 보이기 위해 벤야민이 가져온 못과 망치로 자신의 발에 못을 박는다.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순교자의 모습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마터를 바로잡기 위해 그녀는 결국 마터가 되어버렸다.


 

 

게오르그; 혐오에 시달리는 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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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를 저는 게오르그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하루하루 학급생들에 의해 왕따를 당한다. 그런 폭력이 일상이 된 듯 애써 괜찮은 척하는 그에게 벤야민은 구원자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수영과 과학 수업 거부 사건으로 학교에서 제일가는 ‘또라이’가 된 벤야민은 게오르그에게 이제는 더 이상 네가 학급생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건넨다. 이제 내가 그런 괴롭힘을 당할 이상한 학생이 된 것이니 걱정 말라며 그를 안심시키면서 자신을 따르도록 한다. 학교에서 자신을 받아주거나 같이 시간을 보냈던 친구가 없었던 게오르그는 벤야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를 자연스럽게 따른다.


더구나 벤야민은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아버지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이어받은 현시대의 구원자라도 된 양, 게오르그의 자라지 못한 한쪽 다리를 늘려줄 수 있다며 그를 이 종교의 세계로 이끈다.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해왔던 게오르그는 그를 구원자로 생각하게 되고 그의 말을 따른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장면들이다. 의학적으로, 아니 그냥 봐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당사자들은 광적으로 이를 믿고 실행한다. 또한 로트 선생은 유대인이고 우리의 계획을 망치려고 모함하고 그녀를 제거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벤야민은 그녀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고장 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게오르그에게 제안하고 그에게 오토바이를 몰래 고장 내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벤야민은 게오르그에게 당근과 채찍을 함께 주며 그를 자신의 영원한 순종자로 만든다.


어느 날, 게오르그는 벤야민에게 성적 감정을 느끼고 입맞춤을 시도한다. 벤야민은 게오르그가 자신을 배신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도 제대로 늘어나지 않은 것이라며 분노한다. 결국 그에 합당한 벌이라며 게오르그에게 돌을 던진다. 그게 과연 아버지의 말씀일까…? 이는 그저 벤야민 자신의 알량한 신념에 갇힌 처단일 뿐이다.


이 극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벤야민의 희생자는 로트 선생이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오는 피해자는 게오르그다. 게오르그가 벤야민을 광적으로 믿고 따르게 된 이유도 결국엔 비정상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된다. 그가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그에게 비정상에 대한 혐오를 퍼부었고 매일 쓰레기통에 처박혀 굴려질 때마다 벤야민과 같은 구원의 손길을 바랐을 것이다. 그가 벤야민을 믿게 된 과정과 결과가 현대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암흑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극이 끝나도 강렬하게 게오르그가 기억에 남는다. 그의 결말도 로트 선생만큼 비극이다. 어쩌면 더 슬픈 비극일지도 모른다.


비정상에 대한 혐오에 어릴 때부터 시달렸고 혐오의 칼날을 끊고자 벤야민을 믿고 그가 자신의 다리를 늘려주길 빈다. 사실 그도 벤야민을 믿는다고 해서 다리가 자라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혐오의 시선을 없앨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절박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벤야민의 눈치를 보면서 그를 따른 것이다. 로트 선생의 오토바이를 고장 내라는 벤야민의 명령에는 차마 그럴 수 없어 따르지 못한 게오르그는 결국 벤야민의 신념에 어긋난 비정상이 되어 벤야민의 혐오에 대한 처단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매일매일을 배척과 혐오에 시달리다가 벤야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죽음을 선택당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터



자신의 신념에 가로막혀버린 마터 벤야민,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해 마터가 되어버린 로트, 혐오에 시달리는 마터 게오르그까지 극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짓고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혐오의 시선을 품는다. 일상 속에 퍼진 혐오는 이 연극 속 학교를 잠식하고 그들 모두를 희생시킨다. 하지만 그들이 구분 짓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굉장히 모호하여 자신과는 조금 다르면 바로 이기적인 혐오의 시선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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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교의 목사는 그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이해하지 못한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학교의 목사님 설교에 빠져 신도가 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들의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극의 마지막, 주변 사람들은 겉으로 벤야민을 아끼고 오히려 로트 선생을 배척한다. 모두가 처음에는 이상한 행위를 하는 벤야민에게 혐오의 눈빛을 보냈지만, 순식간에 그 칼날이 다른 곳에 꽂히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위선적이면서 무섭다.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지만, 분위기상 사회적으로 더 ‘비정상적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혐오의 대상이 바뀌는 흐름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처음에는 약자의 모습으로 다리를 저는 장애인, 게오르그에게 혐오와 비난이 쏟아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학급생들은 그를 혐오해왔다. 그러다가 수업을 거부하기 위해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옷을 다 벗어버리는 ‘비정상적인 퍼포먼스’를 한 벤야민에게 혐오를 퍼붓는다. 그리고 벤야민의 거짓 증언으로 성추행범이 되어버린 로트가 선생님으로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며 벤야민을 때리고 발악하자 그녀를 추방하면서 엄청난 혐오와 배척의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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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사이 혐오는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다. 교장 선생님이 ‘사소하게’ 생각하며 여선생에게 건네는 성희롱적 발언, 학생들끼리 약자를 당연히 무시하는 발언,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 성별, 인종, 장애, 성 고정관념 등에 대한 차별적 발언 등 이렇게 농담 삼아 던지는 모든 이야기와 폭력행위에는 혐오가 내재하여 있다.


결국 그들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느끼며 혐오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너무나도 모호한데 말이다. 그리고 혐오의 대상이었던 게오르그와 벤야민을 진심을 담아 품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로트조차도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연극 속에서 희망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마녀사냥은 우리에게도 분명 존재한다. 연극 속에서는 이런 혐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끝맺는다. 우리 시대의 혐오는 절대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진실을 마음속에 새기고, 사실 그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느끼며 이 극의 리뷰를 마친다.


 

순결한 자, 돌을 던져라.

그 돌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을까?

연극 <마터>는 무엇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나는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내가 돌을 맞지 않기 위해 도리어 숨어있는 건 아닐까?

 

 


 

 

마터
- MARTYR -



일자 : 2020.01.29 ~ 2020.02.16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선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백수광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극단 백수광부



극단 백수광부(白首狂夫)는 1996년 연출가 이성열과 젊은 배우들이 실험연극 공동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장정일의 시집을 해체 재구성한 <햄버거의 대한 명상>이 창단작이다. <굿모닝? 체홉>, <야메의사> 등 배우들의 몸과 즉흥연기에 기반 한 공동창작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최근에는 문학적 텍스트에 기초한 정밀한 무대 또한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햄릿아비>,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벤치>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해체된 일상의 낯섦과 강렬한 시적 충동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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