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트렉의 눈으로 바라본 파리의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 툴루즈 로트렉展

대도시 밤거리의 산책자
글 입력 2020.01.28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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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관람한 <툴루즈 로트렉>전은, 솔직하게 말해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전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흥미로운 부분들, 인상깊은 부분들이 있었고 전시를 보며 느낀 가장 큰 인상은 '파리 도시의 산책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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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Flâneur) 개념은 19세기 이후 파리를 비롯해 발전한 현대 도시를 거니는 이들을 표현한 것으로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도시의 시각적 자극들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자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대도시의 스펙터클과 빠른 리듬 속에서 속도를 낮추어 일상의 매력을 발견하는 자들로 이 개념을 정의했다. 산책자는 단순히 도시의 풍경을 보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끝나는게 아닌,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는 사람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전시를 감상하며 로트렉이야말로 진정한 산책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발걸음으로 도시의 곳곳을 다니며 인간상을 발굴해내는, 그의 시각은 때론 날카롭고 때론 온정이 깃들어있으며 그 안에 함께하면서도 철저한 외부인으로서 바라본다.

 
앞선 프리뷰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툴루즈 로트렉은 어릴 적의 사고로 인해 부유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과 제대로 어울릴 수 없는 작은 키를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병원 생활을 하다가 대도시 파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그에게는 당시의 많은 이들처럼 술과 공연, 사교 파티에 완전히 매료되기엔 어려운 상황이기에, 그만큼 당대의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벌어진 대도시의 스펙터클은 그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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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트렉은 오래전부터 쥐어온 연필과 함께 자신의 느낌을 기록했다. 온전한 자신의 시각과 사고로 그려진 파리의 생활상은 누구보다 독특했고, 신선했다. 전시는 이와 같이 산책자 로트렉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개된다.
 
대부분의 작품이 드로잉이라는 것이 아쉬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의 스타일이나 포착 능력을 확인하기엔 좋은 예시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로트렉의 드로잉은 그가 제작한 포스터나 기타 작품들보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한 점은 생각보다 그의 선이 깊고 강하게 눌러지지 않고 꽤나 편안하고 자유롭게 그려졌다는 점이었는데, 그에게 연필이라는 도구가 얼마나 익숙한지, 그리고 얼마나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드로잉이 보여주는 솔직함은, 그가 대상으로 삼은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로트렉의 드로잉은 인물 드로잉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상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지나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그의 단순하면서도 특징적인 드로잉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한 스타일은 페인팅이나 포스터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나지만, 상업적 목적이 달려 있는 포스터에 비해서 훨씬 솔직함이 강하게 드러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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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나온 석판화 연작과 로트렉의 포스터들 역시 전시에서 다뤄지고 있었는데, 각각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전자는 모두 여성을 대상으로 제작된 작품들인데, 그는 모델과 주제를 지정해두지 않고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며 발견한 이들을 담았다.


신분이 높은 귀족 부인들부터 댄서와 매춘부들까지 이 연작에 담긴 여성들의 모습은 다양한데, 나는 여성을 그릴 때의 로트렉의 시각이 남성을 담을 때보다 더 공감적이고, 내면을 잘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더 가까이 지냈기 때문일까,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정감이 가는 연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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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포스터 시리즈는 로트렉의 주된 미술사적 업적으로 남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시각이 들어있다. 단점이라고는 하기에는 그의 창의성과 시대를 뛰어넘는 디자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는 점이 크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포스터들을 레플리카로 제작하여 설명과 함께 디스플레이했는데, 여기에서 관람자는 로트렉이 그랬듯 당대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랑 루즈(Moulin Rouge)를 비롯한 여러 댄스홀과 공연, 파티, 바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한 기분은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19세기 말의 한밤중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 하다. 전시의 전반부가 조금 정적이었다면 중간 중간 등장하는 포토존과 마지막 섹션은 그들이 즐겼던 화려함을 엿볼 수 있게끔 하는데, 개인적으로 포토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보았다.
 
전반적으로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툴루즈 로트렉을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장을 거닐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운 겨울 <툴루즈 로트렉>전을 감상하며 또다른 산책자로서 이 아름다운 시대를 거닐어보기를 바란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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