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드나잇 선(Midnight Sun). 나는 나의 태양이다. [영화]

글 입력 2020.01.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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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설, 노래 등 장르에 상관없이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주로 제목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편이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부터 전체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는지, 또는 내 마음에 확 와 닿는 표현인지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제목을 음미한다. 한 밤중에 뜨는 태양이라는 모순적인 이 영화의 제목은 꽤나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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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선’은 햇빛이 피부에 닿으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인 색소 건피증을 앓는 소녀 케이티가 찰리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둘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밖을 나가지 못해 특수 제작한 유리 창문 너머로 세상에 대한 동경만 품었던 케이티는 항상 같은 시간에 보드를 타고 같은 곳을 지나던 찰리를 지켜봤었고, 기차역에서 버스킹을 하던 중 우연히 이를 구경하다 케이티에게 빠져버린 찰리와 밤마다 어울리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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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라는 건 바래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희귀병, 전염병 같은 것을 앓는 사람을 볼 때 우리의 시선이 바로 저 대사 안에 모두 담겨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한 사람을 병균 취급하면서 또 다른 마음의 병까지 얹어준다. 짧은 한 마디의 대사에 지금까지 케이티가 겪은 모든 경험을 담았다.

 

우리들 중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상처 받거나 질병에 걸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런 아픔이 그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희귀병이나 전염 벙을 앓는 사람들을 볼 때의 시선에 은연중에라도 케이티가 뱉는 말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칼날을 숨겨둔다. 그 칼로 그 사람들의 심장에 칼집을 내건, 아주 살짝 찌르건, 칼날을 쑤셔넣건 간에 원치 않는 마음의 병까지 더해준다.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해주기를 바라는 건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욕구다. 별다른 잘못도 하지 않았고, 마땅한 이유도 없는데 무시당하거나 경멸받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좋은 아버지 아래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자란 케이티였지만 애인에게서 오는 사랑, 친구에게서 오는 사랑,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호감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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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 건피증은 백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발병하는 매우 희귀한 병인 탓에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고 질병 연구를 위한 지원도 적은 편이다. 혹여나 내가 케이티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아마도 이런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운명을 원망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느라 바쁘지 않았을까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케이티의 아버지는 진정한 어른이자 아버지였다. 딸의 수발 때문에 본인의 마음도 피폐해지고 일상이 지칠 것이 당연한데도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면서 케이티에게도 의사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이렇게 낮은 확률에 뽑힐 정도로 운이 좋은 아이라고 의사에게 당당히 선포한다.


자식이 아픈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는 부모는 없지만 주변에서 보내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담긴 시선이 케이티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름을 알기에 아버지는 언제나 억지로라도 이렇듯 긍정적인 모습만 보이려 애 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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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햇빛을 피하기만 했던 케이티는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처음으로 찰리와 함께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하늘 아래서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여태까지 보여주던 햇빛을 두려워하고 숨느라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닌 모든 것에서 벗어난 듯 평온하고 해맑은 미소로 생에 처음으로 맑은 낮의 태양을 즐긴다.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햇빛을 피하며 살아왔던 케이티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난 이후 생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햇빛 아래로 당당히 나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아래서 연인인 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케이티는 여지까지 햇빛을 보면 얼굴에 드리워졌던 겁에 질린 표정이나 긴장이 아닌,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난 평온하고도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태양을 마음껏 즐긴다.

 

*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 대부분은 하기 싫은 일, 어려운 일, 또는 무서운 일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하면 이를 피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보냈다. 그렇기 도망치고 회피하려다 뒤에서 나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피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당당히 마주치고 부딪히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처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데 덜 힘들었을 수도 있다.

 

미드나잇 선처럼 남들과는 다른 불행하거나 힘들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이들을 보여주는 영화를 볼 때면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온 모든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게서는 눈을 돌리고 나쁜 것들만 열심히 찾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내가 나를 더 불행하고 힘들게 만든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어쩌면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밤은 어둡고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즈넉한 것이 편안하고 차분하기도 하다. 모두가 잠드는 한 밤이 되어서야 케이티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와 자기 노래를 뽐내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집 밖의 세상을 마음 편하게 누비며 추억의 앨범을 채울 사진을 눈으로 잔뜩 담는다.


우리에게는 잠들며 하루가 끝나는 밤이 케이티에게는 잠에서 깨어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날들은 밤마다 그녀를 깨운다. 한 밤중에 날벼락이 아니라 한 밤중의 눈부시 빛나며 떠오르는 태양이 케이티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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