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저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입니다

학교 도서관 노동 현장을 이야기하다
글 입력 2020.01.2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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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열정페이, 수당 없는 초과 근무, 부당계약, 과중한 업무량...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해진다. 보기도 듣기도 떠올리기도 싫은 여러 단어들이 사회를 장악한 요즘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계속 싸우고, 정작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은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현실이다.


학교라고 해서, 도서관이라고 해서 이 현실 밖에 있진 못하다. 도서 <저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입니다>는 6년간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로 학교 도서관을 지킨 저자의 ‘현장보고서’다. 어느 날은 보람, 어느 날은 억울함으로 가득찬 저자의 글들은 학교 행정의 비인간적인 대우와 도서관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해내고 있다.

 



/열악하다/



조용히 책을 읽다가 이용 학생들 대출반납 업무하고 책 정리하면 퇴근하는 꿈의 직업 같았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만 생각했고 사서 선생님 모습이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런데 겉모습만 우아한 백조였다. 물 아래에서 요란하게 물갈퀴질을 해야 하는 숨은 노력이 가려진, 오해받기 딱 좋은 직업이다. - p.76


저자는 재능 기부를 하다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도우미 일을 하게 된다. 책이 많은 곳에서 일을 한다니 마냥 좋을 것 같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업무 시간 내내 쉴 새가 없다. 마치는 시간은 분명 오후 4시인데, 평균 퇴근 시간이 7시다. 저자는 과중한 업무에 수당도 없이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 사서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정사서도 아닌 저자가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했다는 것부터가 이해 밖의 일이다.


일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저자가 일을 시작하는 과정은 ‘배움’보다는 ‘터득’에 가까웠다. 일을 새롭게 시작했으니 일을 ‘배워야’ 하는데, 관리자는 업무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방관했다. 저자는 스스로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얻고, 불만을 보고하며 일을 개선해나갔다. 심지어 부족한 인력 지원은 학교가 아니라 저자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학교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업무에도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 과정이 무척이나 이상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때의 일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라고 서술했다.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아무런 지시도 없어서,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고. 당연한 줄 알고 했다고. 정작 필요했던 지시와 지원은 없었고, 당연시 되는 노동만 남았다. 이 노동 환경은 누구를 위한 걸까.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속 노동자는 혹사당한다.


 


/부당하고 불안하다/



“선생님, 이런 계약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많은 업무는 정사서교사도 다 못해내는 일입니다.” - p.96

“해드릴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애당초 그런 계약을 하면 안 되지요.” 참담했다. 무식하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 창피했다. - p.137

부당한 일을 여러 차례 겪고 나니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나? 되짚어보게 되었다. 먼저 나로 말미암아 발생한 일이기에 과한 충성과 헌신으로 스스로를 병들게 한 어리석음에 한탄하며 자책을 했다. 무능한 내 탓을 오랫동안 했다. - p.164


남발된 거짓 약속, 열정페이, 고용불안, 실제 노동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 서류, 비인간적이고 치사하고 눈치보이는 대우, 노동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 관리자. 그리고 반복되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계약. 저자가 이 일을 하면서 마주해야 했던 노동 현장의 실체들이다. 사람을 지우고, 도서관의 업무를 무시하고, 비용 위주로만 이루어진 대우와 조건에 저자가 얼마나 긴 시간 분노에 끓었을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직장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이유로, 노동 계약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 절박함을 인질로. 고용불안과 부당계약은 반복된다. 결국 부당한 일들의 책임은 개인에게로 돌아온다. 어째서 모든 병폐와 부당은 개인의 부족함과 자책으로 돌아갈까? 여기에 고용인은, 시스템은, 국가는 왜 빠져있을까? 모든 책임이 노동자에게로 전가된다.


이 책 속 노동은 대번에 요약 가능하다. 불신과 불안의 연속. 믿음과 신의가 무너지고,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초조하고, 끝내 속이 타들어간다. 절망적이게도 이 책의 노동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보람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일을 사랑한다. 3부의 제목에도 명시되어 있다. ‘상시직이지만 시급제, 그래도 제 일을 사랑합니다.’ 굳이 분명하게 적지 않아도, 저자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글에서 전부 드러난다. 도서관의 중요성이, 이 일의 가치와 보람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과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책 곳곳, 애정어린 문장들이 사투의 연속에도 살아남아 반짝거린다.


내가 지켜야 할 곳! 일하다 쓰러져도 나가야지! - p.31

힘들 때만 되면 아이들이 힘을 준다. 이상하게 우리 학교 아이들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건지 내가 그때마다 기운이 없어 보였던 건지 가끔 받는 아이들의 손편지는 정말 짜릿하다. 켈로그를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의 격려와 감사, 그 힘으로 6년을 버텼다. - p.32


노동엔 대가가 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노동의 가치를 전부 설명할 순 없다. 아무렴 노동의 보람은 글로도 다 풀 수 없을거다. 그 보람의 흔적들이 저자의 문장에 따뜻하게 묻어있다. 저자가 이 책을 완성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여기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향한 사랑으로, 도망치지 않고 바꿔보고자 입을 연 것이다.


 


/발화하기/



시작하는 글에서 왜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왔는지 밝혀져있다. 무엇을 얻고자 쓴 글이 아니었다. 당장 이 글로 상황이 변할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저자는 차갑게 병든 사회를 고민했다며,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발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다 함께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 - p.234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아직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슬프다.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조용히 묻혀 개개인만 병드는 사회는 그릇되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안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바뀌고 있는 것들이 있다. 저자는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펜을 들었다. 함께 하는 발화와 연대가 필요하다.


***


저자 석정연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종류 불문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고 놀았다. 한때는 책과 담을 쌓기도 했지만, 귀소 본능인지 다시 책과 함께하는 사서의 삶을 산 지 6년째다. 운명의 반쪽인 남편을 만나 25년을 꽉 채우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멋진 아들과 예쁜 딸,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좋으면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는 미련함과 서툰 사회생활이 몸 고생 마음고생의 원인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용 계약의 불평등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의 미래이기도 한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목차


시작하며

1부 학부모 재능기부 하다가 사서 도우미 되다

2부 제가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인가요?

3부 상시직이지만 시급제, 그래도 제 일을 사랑합니다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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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입니다


저자 : 석정연

출판사 : 산지니

쪽수 : 224쪽

판형 : 국판(128mm*210mm)

ISBN : 978-89-6545-636-0 03320

가격 : 15,000원

발행일 : 2019년 12월 20일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지/출판 > 서지/문헌/도서관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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