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행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연극 "듀랑고"

글 입력 2020.01.2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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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괴로운 나머지 여행을 떠나기만을 고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방학이 되자마자 티켓을 끊고 어딘가로 떠났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본래 내 기대와는 달랐다. 흔히 사람들은 여행을 다녀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그때의 기억으로 힘든 것들을 위로하면서 산다고 했다. 혹은 책을 읽으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성장하고 현실에 마주한 일들이 턱턱 해결되는 듯했다. 혹은 여행 중 무엇인가를 깨달아서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과 달랐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기분전환이 되었고 현실을 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절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났다고 나 자신이, 혹은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 해결되거나 나아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다시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여행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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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Arizona) 주에는 어느 한국계 가족이 살고 있다. 한국계 이민자 아버지 이부승(56),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첫째 아들 아이삭 리(21), 전국 수영 챔피언인 둘째 아들 지미 리(13). 이들에게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부승 아내의 빈 자리는 여전히 크다. 어느 날, 아들들을 위해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부승이 은퇴를 4년 앞두고 정리 해고된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혼란스럽다. 모든 게 막막하기만 한 부승은 아들들에게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한다. 목적지는 콜로라도(Colorado)의 듀랑고(Durango). 어쩌면 이 여행이 부승의,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 줄지 모른다. 각자의 아픔을 숨긴 채 이들은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듀랑고로 가는 길 위에서 부승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아이삭과 지미는 이에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공감도 잠시, 집을 떠나 온 거리만큼 이들 사이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간다. 서로 가까워지려 하는 모든 노력은 길을 헤매게 할 뿐이다. 사막을 넘고 주 경계선을 넘어 마침내 도착한 기차역에는, 듀랑고로 가는 표가 없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갈 수 없어 부승은 망연해지고, 화가 난 아이삭은 자신과 지미의 비밀을 폭로한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들에게는 비밀이 있었고, 가족 관계를 지탱해 줬던 아내는 이제 없다. 부승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모른다. 집에 돌아온 부승 가족은 말없이 앉아 있다. 하지만 곧 아이삭과 지미는 부승을 위로하며 다시 가족의 일상을 회복하려 한다. 방황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끝내 흩어지지 않는 가족의 사랑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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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부승도 여행을 통해 자신의 현실보다 나아질 것을 기대했을 수 있다. 혹은 그저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멀리 떨어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해고된 당일, 두 아들에게 다음날 바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통보한다. 장남인 아이삭은 그러한 부승의 통보에 불만을 느꼈고 그와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차남인 지미의 설득으로 다음날 아침 세 가족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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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그들은 서로가 몰랐던 점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알게 되는 방식들은 서로가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삭은 지미의 비밀을 그의 직접적인 말을 통해 알게 되지 않는다. 지미의 물건을 통해 숨겨진 비밀을 알아채고 그것을 그에게 알린다. 즉,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는 계기가 아이삭에 대한 지미의 신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족 중 가장 솔직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바로 아이삭이었다. 지미와 달리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했으며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부승에게도 화내듯이 알렸다. 그러나 아이삭을 제외한 두 가족은 끝까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아이삭의 진실되고자 했던 태도는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미의 비밀을 그의 허락 없이 부승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아이삭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셋이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는 것 같은 답답함 등이 말이다. 아이삭의 생각처럼 어쩌면 그들은 솔직했다면 서로 이해했을 수 있다.

 

서로의 바람과 달리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혼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을 지레짐작한다. 그러한 태도는 결국 세 가족의 소통 단절로 이어졌다. 가족 중 지미만이 가족을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삭이 지미에게 솔직해짐을 ‘강요’하면서 지미 또한 마음을 닫게 된다. 이로써 세 가족은 서로에게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 그들만의 사랑 표현 방식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그 방법은 결국 모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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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관계는 듀랑고의 은색 기차 티켓과 같았다. 막연하게 아름다울 것이라고만 부승 혼자 생각한 여행. 그리고 여행 중, 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알리거나 잘못 길을 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음과 무계획(어쩌면 이 또한 소통의 단절)이 은색 기차의 티켓 당일 매진을 마주하게 했다. 그 누구도 유명한 듀랑고의 기차 여행이 한 달 이전부터 매진된다는 사실을 찾아보지 않았다. 서로를 막연하게 믿기 때문에 누구도 찾아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레짐작은 결국 그들의 관계를 여행 중에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꼭꼭 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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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는 가족극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준 연극이었다. 흔히 가족 감동극을 떠올린다고 한다면, 가족이 위기를 겪어도 끝에는 결국 화해를 한다. 그들의 행복할 미래가 암시되듯 끝이 난다. 처음 <듀랑고>를 보기 전 이 연극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듀랑고>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가족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지미의 상상 속 히어로 레드 엔젤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미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때 레드 엔젤을 통해 벗어나고자 한다. 레드 엔젤이 무대에 오를 때 극은 신비로워진다. 이 신비로움과 상상은 현실과 더욱 대비되어 점점 이들이 멀어지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회피성 여행은 서로의 소통을 오히려 단절시켰고 미웠던 감정만 증폭시켰다. 더욱 서로를 탓하게 되었다.

 

해결되지 않은 채 응어리가 지속되는 그들의 관계. 중요한 말들이 오고 가지 않은 결과였다. 서로에게 소통하지 않고 그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 이것이 결국 그들의 회피성 여행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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