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도서]

유치원에 다시 갈 순 없으니, 그림책을 읽어야겠다.
글 입력 2020.01.2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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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우스갯소리로 ‘유치원 다시 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스스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라는 노래도 자주 부른다. 예의 없는 사람을 보고는 ‘저 사람 유치원 다시 가야겠다.’라며 웃기도 한다. 유치원에서는 기본적인 삶의 가치와 예의, 그리고 사람과 사회 안에서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아이들의 올바른 자아 개발을 돕는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공감하며 이해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이 기본적인 것들을 잊는다. 타인과 공감하는 법보단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에 몰두한다. 어른의 사회에선 그것이 옳은 것이라 여겨진다. ‘노키즈존’에 대한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노키즈존’은 논란이라 말할 수도 없다. ‘노키즈존’은 아이와 보호자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기초적인 공감 능력을 상실한 어른들의 이기심이자 차별일 뿐이다. 이런 어른들에게 정말로 유치원에 다시 가라고 할 순 없으니,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책은 약자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그림책 작가들은 어린이들이 편견을 갖지 않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은 잊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과 삶의 가치들을 알려준다. 앞만 보며 달리다 지나쳐버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일깨워주며, 돈과 명예만을 쫓는 삶이 아닌 어린이의 눈으로 본 상상력 넘치는 삶을 보게 한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른들 또한 그림책을 보며 기본적인 도리를,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어떤 가치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한, 더 나아가 어린이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나는 아직 ‘그림책 애호가’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림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주 개인적으로 좋았던 그림책을 몇 가지 소개해보려 한다.


 

 

앙트아네트 포티스, 『엄마,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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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잠깐만!』은 한 아이와 엄마의 외출을 그린 그림책이다. 엄마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빨리 가자!”라며 아이를 재촉한다. 아이는 한쪽 손을 엄마에게 붙들린 채 자꾸만 뒤 돌아보며 “엄마 잠깐만!”을 외친다.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길 가던 강아지, 아이스크림,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아주 많은 것들이 아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책장을 넘겨도, 넘겨도, 아이는 뒤를 보며 엄마에게 ‘잠깐 멈추고 얘 좀 보라’며 엄마에게 공감을 요구하고, 엄마는 ‘나중에, 빨리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며 앞을 보고 걸어간다.

 

걸음을 재촉해 기차역에 다다르고, 아이는 이번엔 ‘진짜 진짜로 잠깐만요’라며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그 말에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하늘에 쌍무지개가 걸려 있다. 엄마는 아이를 안아 올려 ‘그래 우리 잠깐만…’이라 말하며 아이와 함께 무지개를 바라본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만 보고 빨리 가려 한다. 과거는 잊고 미래만 보며 달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재를 볼 줄 아는 눈이다. 아이처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무지개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설령 지나가는 강아지엔 큰 감흥이 없더라도, 그 사소한 것들에 감동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함께 바라봐주어야 한다. 충분히 느끼고 상상하며 자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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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항상 혼자 집을 지키는 아이에게 고양이 친구가 생겼다. 아이는 고양이가 자꾸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한다고 말한다. 고양이와 아이는 함께 파리도 쫓고, 깜깜한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창가에 앉아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이는 ‘내 친구는 고양이밖에 없고, 고양이 친구도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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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오늘부터 내가 고양이를 따라 해야지!’라고 결심한다. 아이는 고양이를 따라 깜깜한 어둠도 용기 내어 바라보고, 높은 책장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고양이처럼 몸을 크게 부풀리기도 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고양이를 따라 당당하게 밖으로 나간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논다. 아이와 고양이가 친구들과 무리 지어 놀러 나간 후,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고양이가 또 다른 아이를 찾는 듯 수풀에 숨어 눈을 빛내고 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고양이처럼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든 옆에서 든든히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올바른 어른의 모습을 배운 후 용기 내어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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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위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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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봐요!』의 주인공 수지는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아이처럼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수지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어 항상 창문 너머로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림도 모두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그리고 있어, 독자들도 수지의 시선에서 함께 보게 된다.

 

수지는 창밖의 걸어가는 사람들과 강아지, 우산의 행렬을 그저 바라본다. 위에서는 사람들의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 단조로운 풍경들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수지는 그 까만 풍경에 대고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라고 말한다.

 

그때, 길가의 한 아이가 수지를 발견하고 말을 건다. 수지가 다리가 아파 내려가지 못한다고 말하자 아이는 길가에 눕는다. 아이가 눕자 수지는 머리 꼭대기가 아닌 사람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누워있는 아이에게 뭘 하는 것이냐 묻고,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강아지도, 자전거도 모두 데리고 눕는다. 그림책 내내 아래만 내려다보던 수지도 위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그리고 수지는 친구와 함께 이제는 무채색이 아닌 형형색색의 거리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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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어른들은 앞만 보며 걸어가지만, 길가에서 수지를 처음 발견한 아이는 『엄마, 잠깐만!』의 아이처럼 주변을 살필 줄 알았다. 하늘을 제대로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어른들은 수지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휠체어를 위한 저상 버스는 많지만, 막상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을 보는 건 정말 흔치 않다. 장애인은 쉽게 가려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 같은 눈을 가지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 그리고 먼저 길가에 드러누워 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따라서 누워주는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 『돼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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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에는 ‘아주 중요한 회사’로 가기 위해 집안일을 모두 아내에게 미루는 남편과, ‘아주 중요한 학교’로 가기 위해 집안일을 모두 엄마에게 미루는 두 아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집안일은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닌 걸까? 집안일을 묵묵히 하다가 피곳 부인은 결국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짧은 편지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돼지로 변해버린 세 부자는 피곳 부인 없이 엉망진창인 밥을 지어 먹고, 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들 앞에 피곳 부인이 나타나고, 피곳과 아이들은 떠나지 말라며 빈다. 피곳 부인이 다시 집에 돌아오고, 남편과 아이들은 요리와 다림질을 나누어 한다.

 

처음엔 책이 이 장면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안일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 다음에는 ‘엄마는 차를 수리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공구를 들고 차를 고치며 활짝 웃는 피곳 부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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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형적인 공주를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정장을 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아빠와 앞치마를 입고 집안일을 하는 엄마를 그리는 그림책과 교육 자료가 파다하다. 우리는 성 역할과 장애나 인종에 대한 인식 등 다양한 가치들을 처음으로 배우고 고착화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또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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