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어진 운명 속 내 자리를 찾는 여정 - 내 몸이 사라졌다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글 입력 2020.01.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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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느 어두운 방, 냉장고 문이 갑자기 열린다. 안쪽에서 누가 밀어내듯이 열린 냉장고 안에는 안구, 뇌와 같은 신체 기관들이 보관된 것을 보아 장소는 병원 해부학실인 듯하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속해있었으나 더는 아닌 것들 사이로 잘린 오른손이 움직인다. 손은 냉장고의 문을 열고, 인기척에 자신을 숨기며 창문을 통해 병원 밖으로 빠져나간다.

 

영화는 손이 파리의 옥상과 지하철, 도로 등을 헤매고 비둘기와 쥐 등에게 위협당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그 주인인 나우펠의 인생을 동시에 비춘다.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싸우고 대응하는 손과는 달리, 나우펠은 다소 소극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인다.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나 우주비행사이며 동시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는 불우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친척 집에 맡겨진다. 따뜻한 조언과 사랑을 주었던 부모님과 다르게 무관심한 친척 집에 맡겨진 그는 성인이 된 후 피자집 배달부로 일한다. 그마저도 매번 일이 서툴러 사장에게 그만두라는 이야기만 계속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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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배달 도중 실수를 한 그는 피자를 주문한 가브리엘라와 인터폰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에게 끌리게 된다. 가브리엘라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나우펠은 도서관을 찾는다. 그러나 이미 퇴근길의 가브리엘라에게 말한마디 걸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뒤를 쫓는다. 결국 가브리엘라 삼촌의 집까지 다다른 나우펠, 목재소 주인인 듯한 가브리엘라의 삼촌에게 즉흥적으로 구직하고 있다고 말하며 숙식 있는 일자리를 얻어낸다.

 

이후 나우펠은 자신이 그날 대화를 나누었던 피자집 배달부라는 걸 숨기고 가브리엘라와 친분을 쌓는다. 가브리엘라에게 북극에 관한 책을 추천받은 후, 나우펠은 그를 위해 목재로 이글루를 만드는 등 점점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나우펠은 이글루에 가브리엘라를 초대해 사실 자신이 그 피자 배달부였다는 것을 밝힌다. 이에 가브리엘라는 불쾌해하며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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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펠과 그의 오른손이 보내는 일상은 너무나도 달라 보인다. 가브리엘라를 만나기 전까지 나우펠의 삶은 파리의 흐린 날씨처럼 우울함이 기저에 깔린 날들의 반복이다. 손의 여정은 그 시작부터 위태롭다.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걷고 뛰면서, 위협을 가하는 존재와 맞서고 아슬아슬하게 철로 밑을 오가는 등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동시에 가야 할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현실의 나우펠에게는 이미 과거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손의 여정 속에 마치 그를 응원하듯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잠시 쉬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손의 모습에서 나우펠에게 그것들이 온전히 과거의 것이 아님을 현재까지도 그의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손은 나우펠의 삶에서 결여된 것들을 비춘다. 그렇게 영화는 나우펠의 삶과 손이 걸어가는 여정의 외로움과 처연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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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했던 대화, 음악, 그리고 마지막 사고의 순간까지. 그 모든 순간이 녹음된 테이프와 녹음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나우펠이 어렸을 때의 행복과 동시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잃었다는 죄책감을 계속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브리엘라가 떠난 후, 손까지 잃으며 더한 절망에 빠질 것 같은 나우펠은 몸을 일으킨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우리가 아예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 저 크레인으로 점프하는 거예요. 하면 안 되는 뭔가 즉흥적인 일, 금지된 행동을 하는 거죠. 덕분에 다른 세상에 가게 돼서 잘 됐다며 후회도 안 해요.

 

 

떠나기 전, 나우펠은 가브리엘라와 이야기하던 옥상에서 발판을 딛고 크레인으로 점프한다. 크레인으로 점프하기 전 준비 과정부터 성공한 후에 나우펠의 환호성, 그 과정이 가족의 사고가 녹음된 부분에 덮어진다. 새롭게 발 디딘 세상을 바라보는 나우펠, 가브리엘은 나우펠이 없는 곳에서 그가 남긴 녹음기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손은 조용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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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넷플릭스에서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body)”의 썸네일을 봤을 때는 유체 이탈, 혹은 영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누군가 죽은 후 영혼이 이승을 떠돌며 벌어지는 소재의 작품은 많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여긴 것 같다. 결과적으로 제목의 주체가 잘린 손이라니, 영화의 소재 및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본 애니메이션은 영화 <아멜리에>의 각본에 참여했던 기욤 로랑의 소설 <행복한 손>을 원작으로 한, 제레미 클라핀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누군가 운명을 어떻게 마주하며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내 몸이 사라졌다"는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았으며 칸 국제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비평가주간 그랑프리를,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크리스탈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2월에 있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로 오른 상태이다.


“내 몸이 사라졌다”는 프랑스 영화 특유의 우울함과 운명, 인생, 고통이라는 소재를 철학적으로 풀어나가려 한 감독의 시도가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더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는 희망적인 요소가 담긴 결말이 마음에 든다. 앞으로의 삶이 더 나아진다는 약속은 없지만, 적어도 다시 새로이 채워갈 자신만의 여정에 첫발을 디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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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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