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일상적이고, 기괴한 가족 여행 "듀랑고" [공연]

"내가 내 체면 하나 살리자고 이러는 것 같아?"
글 입력 2020.01.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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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이라는 단어는 위험하다. 개개인이 가진 특성이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의 범주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하나로 개념화되어 버린다. 스스로가 알고 있는 선에서 타인을 자신에게 투영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적 대상화, 타자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범주화는 때로 ‘나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이유와도 결부된다. 기존의 프레임이 적용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며, 나의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개념화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태어나는 순간 부여받는다. 나의 시작점에 있는 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 공동체는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것을 알 거라 생각했던 관계는 내내 삐걱거린다. 누구보다 가깝고 먼 존재들에게, ‘보편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바라본다.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가족은,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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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적인 아버지, 반항적인 첫째 아들, 이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째 아들. 이제는 이 프레임이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역할놀이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쯤, 아버지 부승은 듀랑고로 향하는 여행을 제안한다.

 

첫째 아이삭에게 가족 여행은 숨 막힌다. 좁은 차 안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감옥과도 같으며, 차라리 밖의 사막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가 속한 가족과 그 속의 자신은 퍽퍽하고 메말라 있다. 둘째 지미는 신이 난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제안한 여행에, 형까지 설득했으니, 모두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하지만 일상 속 규정화된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행은, 정형화되어 왔던 자신의 역할을 다시 상기시킬 뿐이다. 의대 진학이라는 아버지의 꿈을 버거워하던 아이삭이 터트린 말에 부승이 답한다. “내가 내 체면 하나 살리자고 이러는 것 같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던 의대 진학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숨 막힌다. 이 말속에, 아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부승의 역할이 있고, 아들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아이삭의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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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삭은 그 체면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체면 살리기로 전락해버리는 자신의 역할이 끔찍하게도 싫었을 것이다. 그건 둘째 지미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미가 역할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아이삭과 조금 다르다. 상을 휩쓸 만큼 수영 실력이 뛰어난 그는 사실 부승이 생각하는 것만큼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마주친 선배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얼어붙었고, “어이, 꼬마 게이 새끼, 공 가져가.”라는 말을 들은 뒤로, 수영장은 언제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걔는 수영을 좋아해. 지미는 내가 잘 알아. 걔는 정직한 애야.” 부승의 말속에는 이 모든 역할과 체면을 살리고 싶은 그의 바람이 묻어나있다. 지미는 그런 아버지 앞에서 수영을 좋아하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그의 비밀은 형 아이삭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아버지 부승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듀랑고로 향하는 고독하고 고요한 사막에서 들리는 건 서로의 말소리뿐이다. 그들의 말속에서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들이 걸어온 삶의 흐름에 대해 듣는다. 부승에게 훈장처럼 감겨 있던 손목시계는 해고 통보와 함께 멈춰버렸고, 아이삭은 의대 인터뷰 당일 본인이 했던 일과를 이야기한다. 지미는 히어로 레드 엔젤 이야기를 그리며 위로받는다. 그리고 그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의 괴리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괴리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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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역할 놀이에서 미국에 사는 한국계 가족이라는 상황은 또 다른 갈등의 결을 만들어낸다. 부승은 아이삭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괜찮아요. 저는 동양인의 영어 발음도 아주 잘 알아듣거든요.” 아버지의 엉망인 영어 발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주변의 말에 대한 아이삭의 대답은 부승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대충 둘러댄 것이라 이야기하는 아이삭과 달리 부승은 그것들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한국계 이민자인 부승이 수없이 겪었던 차별의 말과 별거 아닌 듯 웃어넘기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아들에게서 보았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국계 이민자와 아버지라는 역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면은 어느새 중요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 인물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상처는 ‘부재’다. 부승의 아내, 아이삭과 지미가 가진 엄마의 부재는 이들에게 또 다른 역할과 책임감을 부여한다. 그가 남기고 떠난 말과 기억은 각 인물에게 다르게 인식된다. 다른 감정의 맥락들은 그들 사이에 또 다른 균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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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무시당했던 기억을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떠올릴 때마다 처절하고 비참한 기분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하는 기억을, 줄리아 조는 <듀랑고>에서 끄집어 낸다. 아버지 부승의 정리해고, 첫째 아들 아이삭이 가지 않았던 의대 진학 인터뷰, 둘째 아들 지미가 수영장에서 얼어붙었던 기억.

 

부승과 아이삭, 그리고 지미가 고백하는 기억과 감정은 3인칭으로 이야기를 지켜보던 관객을 1인칭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이 읊어내는 1인칭 시점의 기억들은 다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비인칭 시점이 된다. 아버지 부승이 정리해고를 통보받던 시간은 이제 관객의 서사가 되어 눈물을 훔친다. 첫째 아이삭이 까칠하게 내뱉는 모든 말은 내 마음속의 말과 동일시되며, 둘째 지미의 기억은 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과 이어진다.

 

마침내 도착한 듀랑고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조차 없다. 이 여정이 끝난 후에는 집으로 곧장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문득 그들에게 돌아갈 집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우리의 역할극은 어쩌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 길 위를 빙빙 걷는다.

 

하지만 그 길은 위, 아래의 구분이 없지 않던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이 길은 역할 구분의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집단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지, 그것은 듀랑고로 향하는 길 위의 가족 여행이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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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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