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정치적인 짝짓기 -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 [도서]

글 입력 2020.01.20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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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와 쌍둥이처럼 등장한 것이 가부장제라는 말이 있듯, 성차별과 혐오의 역사는 유구하다. ‘나’와 ‘너’의 이분법 안에서 자연스럽게 ‘너’를 타자화하는 행위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다.


그러나 인간 역사와 차별의 역사가 맥을 같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늘 궁금했다. 정말 이브가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유구한 차별과 혐오가 이어져왔을까? 기독교가 문화의 맥을 좌지우지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성차별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차별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이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인간의 성과 사랑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다. 영문학자이자 몸문화연구소 소장인 저자 김종갑은 인간 사회 속에서 성이 어떻게 정치와 맞닿아왔는지를 문학과 예술 속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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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남성의 완벽함과 대비되는 존재로서 어리석고 사악한 여성을 내밀었다. 성행위 역시 여성의 불완전함을 채울 수 있는 ‘여성의 본능’으로 규정했다. 물론 관계를 주도하는 주체는 남성이었지만, 남성은 완전무결한 존재였기 때문에 성적 본능은 여성의 탓으로 몰렸다.


이러한 차별적 관념이 생성되는 데에 과학도 한 몫을 했다. 갈레노스는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성의 생리와 남성의 정액을 대비하며 둘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 이론은 수 세기 동안 하나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여 남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자리 잡았다.

 


갈레노스의 이론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그가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주목한 것은 여자가 주기적으로 자궁에서 출혈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리혈은 정액처럼 생식기에서 분비되지만 정액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만약 여성에게 혈액이 부족하다면 그 아까운 혈액을 바깥으로 방출할 리가 없다. 분명 필요한 것보다 양이 너무 많아서 남아도는 잉여를 주기적으로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당연히 여자는 남자보다 혈액의 양이 많다. 이것은 여성의 몸이 건조하지 않고 습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이 이론은 당시의 관점으로서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합리성에 의하면 과학이 발전하면서 해당 이론은 폐기되어야 맞다. 그리고 이 과학 이론에 근거하였던 여성혐오와 차별 역시 한꺼번에 소멸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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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노스(130~210)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여성혐오의 맥락도 바뀌는 현상이 일어났다. 폐기가 아니라 수정된 셈이다. 여성을 설명하는 방식이 변하면서 여성이 열등한 이유도 변했고, 성에 대한 관점이 변하면서 여성을 경멸하기도, 숭배하기도 했다.

 


이처럼 줄곧 여성을 남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던 이유가 뭘까?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 눈이 모든 것을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눈은 개념화된 것만 볼 수 있다. 개념화되지 않은 것들은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는 작은 물고기처럼 지각의 장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지식의 체계에 등록된 것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문장이었다. 여성혐오가 시대별로 모습을 달리하지만 결코 뿌리가 뽑히지는 않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호명되는 존재이자 ‘나’로서 존재하는 남성과 달리 ‘너’로 타자화되는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고 과학이 발전했지만, 르네상스 시기까지 여성기와 여성의 특성을 칭하는 명확한 언어가 없었다. 모든 것을 남성을 기준 삼아 여성을 해독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성적 쾌락과 성행위, 성욕까지 죄악시하며 성 그 자체를 억눌렀던 중세 시대와 달리, 르네상스 시대로 오면서는 조금씩 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성적 욕구에는 관심이 있지만 여성 자체에는 관심이 부재했던 묘한 시기다. 이러한 모순적인 관심은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욕을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로 간주했던 중세의 화가들은 밋밋한 가슴의 소년 같은 모습으로 마리아를 그렸다. 가슴이나 성기가 노출된 여자를 그렸다면 그것은 사악한 유혹자의 알레고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뱀이나 두꺼비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으로 그리곤 했다.


그러다가 중세 후반부터 성모 마리아는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여자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14세기는 에로틱한 대상으로서 유방을 발견한 시대였다.



터부시되던 여성성에 남성적 욕망이 더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체 접촉 없이 예수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는 기독교적으로 완벽한 여성상이었다. 성적 문란함과 거리가 멀었으며, 예수라는 인류의 구원자를 탄생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즉 ‘처녀성’과 모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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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푸케, <믈룅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 여성성을 제거한 채 묘사했다던 대목에서 중세가 얼마나 여성을 죄악시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르네상스시기로 넘어오면서부터 그의 여성성은 제거되기는커녕 아름다움과 결부하여 한층 강조되었고, 이는 ‘완벽한 여성’을 규정하는 프레임에 처녀성보다 아름다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부터 강조되어 온 아름다운 여성성은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볼륨감 있는 몸매와 뚜렷한 이목구비, 붉은 입술과 뺨, 흰 피부 등은 여전히 여성들을 옥죈다. 즉 몸매와 외모에 가해지는 잣대는 수천 년 가부장제의 역사가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여성성을 가진 여성을 미워하기보다 그 여성성을 아름답다고 규정해 온 남성들의 역사를 삿대질하는 편이 맞다.


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이 책은 성소수자와 다성성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 이후는 바야흐로 성해방의 시기다.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면서 오랜 세월 지배적이던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의 언어적 구분은 해부학이나 유전학이 아니라 윤리적이며 문화적인 문제다. “바보라고 부르면 정말로 바보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라고 부르면 장애인이 되고, 비정상이라고 부르면 비정상이 된다. (...) 대상을 부르면서 대상은 물론이고 세상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함부로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에필로그였다. 호명에 주의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을 남성과 분리해 이해하려던 시도가 없어 여성기에 관해 명확한 지칭도 부재했던 과거처럼, 언어에는 상당한 힘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좁디좁은 정상 범주 바깥의 수많은 존재들을 ‘비’ 한 글자로 묶어 호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게으른 처사가 아닌가.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여성이 차별받은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기원을 찾아가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발전의 길 한 가운데 있기에 걸음이 바쁘다. 어쩌면 걸은 길보다 걸을 길이 더 멀지도 모른다.


진정한 성적 해방은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을 해체하는 데서 온다. 두터운 벽을 모두 허무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되새겨야 할 역사,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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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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