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나기 힘든 가족 - 연극 듀랑고

글 입력 2020.01.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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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가부장적 형태의 가족. 요즘엔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가부장적 사회가 만연했다. 자식과 남편 사이에서 새우 등이 터지는 건 항상 ‘어머니’. 이 연극에 나오는 부승의 가족에겐 중간 다리 역을 해줄 어머니가 없다. 아버지 뜻에 따라 억지 인생을 사는 아들 둘과 정리해고를 당한 무뚝뚝한 아버지. 이렇게 셋. 지금도 간간이 볼 수 있는 가족 형태다.

 

이 연극을 보는 내내 결말이 궁금하진 않았다. 어떤 결말일지 너무나 뻔해서. 그리고 소재 자체도 드라마에서 너무 흔히 쓰이기에 스토리의 신선함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한다. 이 변수가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연극이 그랬다.

 

수영에 재능이 있는 둘째, 지미. 부승의 뜻에 따라 의대를 진학하려는 아이삭. 정리해고를 당했지만, 자식들에겐 티 내지 않는 부승. 이 셋은 대화의 단절과 깊은 소통의 부재로,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됐다.

 

둘째 지미는 사실, 수영을 관뒀다. 이걸 말하지 않은 채 그는 그림으로 취미생활을 하는데, 그 그림에 바로 지미에 비밀이 담겨있다. 지미는 사실 동성을 사랑하는 게이이다. 근데 수영을 하면 수영복 특성상 지미의 비밀은 지켜지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수영을 관둔 것이다.

 

수영에 재능이 있어서 아버지인 부승의 관심과 칭찬을 받는 지미를 부러워하는 아이삭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사실 의대에 가고 싶지도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하와이로 의대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아이삭의 비밀은 하와이에 있다. 바로, 면접을 보지 않은 것! 뒤에 나오지만, 부승이 친한 친구를 통해서 부탁해 놔서 아이삭은 면접을 보기만 하면 합격할 기회였다. 아이삭은 이걸 몰랐고, 하와이에서 미국 집으로 돌아와서는 계속 기타만 쳤다. 그는 기타 칠 때가 가장 즐겁다.

 

이렇게 각자의 비밀을 가진 셋이서 여행을 떠난다. 정리해고를 당한 아버지가 제안하고, 지미는 좋다면서 아이삭을 설득해서 어찌어찌 출발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들은 삐걱댔다. 특히 아이삭과 부승은 서로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자주 부딪혔다. 지미가 중간에서 둘의 관계를 풀려고 애를 쓰지만, 문제는 듀랑고로 가는 기차역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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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내일도, 모래도, 한 달 뒤에도. 아이삭은 짜증을 냈고 부승은 듀랑고 쪽을 바라보며 얘기한다. 부승에게 있어서 듀랑고가 어떤 존재인지. 부승은 양성애를 가진 사람인 듯하다. 아내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남자였던 걸 보면. 부승에게 듀랑고는 마치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자유의 상징. 그리움의 상징.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두 아들은 흥분했고, 이내 다른 형제의 비밀을 까기 시작했다. 지미는 아이삭이 하와이에서 면접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아이삭은 지미가 수영을 관뒀으며, 관둔 이유는 평소 지미가 그리는 그림에 있다고 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지미는 아이삭에게 엄마가 살아있을 때의 얘기 듣는 걸 좋아하고, 아이삭도 엄마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엄마 편지엔 부승을 잘 돌봐달란 내용이 있었지만, 아이삭은 아버지를 미워하며 삐뚤어져 갔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교육비에 큰돈이 들지 않았으면, 무엇보다도 자식을 위해 이런 것들을 바라고, 지원해주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이게 부승의 마음이다. 반대로 자식들은 아버지의 명예와 자랑을 위해 이러는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은, 뻔했던 결말이 뻔해지지 않았다. 나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해피한 결론을 생각했는데 이 연극은 결말조차도 너무 현실성 있게 다뤘다. 자신의 가치관과 타인의 가치관을 타협하며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부승의 가족은, 타협을 봤다. 아이삭은 기타를 치면서 부승에게 면접 날짜를 다시 잡아달라 한다. 아버지인 부승의 뜻과 자신의 욕심을 참으며 나름의 절충안이라 생각하고 말한 걸 거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족애를 느끼거나 문제의 실질적 원인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들은 듀랑고에 가기 위해 떠났던 그 여행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여행이 가족을 바꾸게 할 거라 생각했던 부승 또한 여행 가기 전과 같이 행동했다. 셋 다 문제에 부딪히기보단 평소처럼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이렇게라도 가족이란 틀을 유지하고 싶은 거겠지. 가족에게 변화가 찾아오는 게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반복되고 반복되는 뫼비우스 띠를 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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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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