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 가져오는 시간의 유동성 - 파인드 미

글 입력 2020.01.16 16: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 - 복사본.jpg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대리석 조각상이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관객들에게 노출한 것처럼, 관능적인 소년의 육체를 표현한 이전 시대의 화려한 유물은 이상적이고 완벽하다. 퀴어 소재를 다룬 유명한 다른 영화 <브로큰 백 마운틴>과 비교를 통해 본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가 완벽한 비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상을 반영이라면, 후자는 현실의 밑바닥에서 구르는 불협화음을 반영이다.


한쪽에서는 아름다운 햇빛 아래에서 서로의 육체에 찬 물을 끼얹으며 목을 깨물고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서로의 부르튼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브로큰 백 마운틴>와 <콜미 바이 유어 네임>를 비교해서 감상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완벽한 아름다움, 황금률 안에서 빛나는 이상.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점과 한계가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필자가 좋아하는 점과, 싫어하는 점을 그대로 때다 박고 있다. 우선 좋은 점은, 사랑을 그 대상의 특성에 맞추지 않고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춰 해석했다는 점이다. 사랑의 갈망은 갑작스러운 순간에 발생한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의 갈망을 확인하고, 마침내 한 몸이 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너와 나의 구분은 없는 것이다. 구태여 이들의 사랑을 '특수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배경도 자연스러웠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조심스럽지만 도발적으로 다가간다. 그 과정은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멋진 영화다. 하지만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이질적인 몇 가지 점들이 있었다. 우선 모든 캐릭터들이 모두 지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점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표현은 철학적이고 은근하며, 또 아름답다. 이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조각상처럼 모든 갈등의 굴곡이 오직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해제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조각상을 쓰다듬는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이 영화도 황금률을 어루만지고 있다. 꼭 '퀴어'라는 특수성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만 좋은 퀴어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성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을 펼쳐간다.


필자는 이 점은 좋았다. 두 인물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정욕에 압도되고 변화하며, 마지막 순간 눈물로 쏟아진다. 영화는 그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 교수 아버지와 완벽하게 지적인 어머니 밑에서 인정받는 사랑을 하는 아름다운 두 남자의 연애는 무언가 보기 거북한 부분이 있다.



movie_image_(1).jpg



유명한 영화의 후속작으로 거론되는 도서다 보니 서론이 길었다. 오늘의 리뷰 도서인 <파인드 미>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그렇듯, 책 <파인드 미>도 대리석 조각상 같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심오한 철학책처럼 이야기하며, 지적으로 완벽하다. 전작이 열병같이 앓고 지나갔던 첫사랑 이야기라면,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골적으로 소설은 사랑의 상대를 찾으라 말하고 있다. 여전히 책은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작가는 본 작에서 젊고 싱싱한 육체의 향연은 덜어내고, 관능만 남겨놓았다. 이렇듯 강렬함을 덜어냈지만, 무언가 좀 더 모호해진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 외전이라고 기대하고 이 책을 들었다면, 꽤 많은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본격적인 이들의 결합과 사랑이야기는 뒤쪽에 아주 짧게 나온다.

 

본 책의 내용의 많은 부분을 엘리오의 아버지인 세뮤얼과 그의 젊은 연인 미란다의 이야기이다. 이혼한 엘리오의 아버지는 로마로 가는 기차에서 미란다를 만나고, 두배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다. 두 등장인물들은 시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죽음과 노화를 마주 이 연인은 책의 전반적인 주제인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음 장에서 등장한 엘리오는 아직도 올리버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올리버를 떠올리게 하는 늙은 남자 미셸에게 빠지게 된다. 그 후에서야 미국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올리버에게 초점이 옮겨 가는데, 그는 이미 결혼하고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오를 떠올리며, 엘리오와 대화하고, 엘리오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을 갈망한다. 이들의 결합은 마지막 순간의 짧은 부분뿐이다.

 

하지만 처음 읽은 솔직한 감상으로 말하자면, 와 닿지는 않았다. 두 커플이 갑작스럽게 형성하는 친밀감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당장 사뮤엘이 왜 그의 아내와 헤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납득도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전작을 소설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 나름대로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작에서도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책은 좀 더 노골적으로 사랑이 가져오는 특이현상으로 시작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 미란다와 새뮤얼은 자질구레한 과정, 심지어 이름을 나누는 것 마저 잊는다. 사뮤엘과 미란다는 오랜 친구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름을 늦게 나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 우리가 기대하는 멜로의 기회, 썸, 로맨틱 성공적 과같은 과정 없이 갑자기 두 사람은 화살에 꿰뚫려 버렸다. 두배나 달하는 나이차 앞에서 사뮤엘은 자신의 사랑이 너무 늦었나를 고민하지만, 미란다는 사뮤엘의 존재를 과거나 현재와 같은 시간의 개념으로써 구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일축하였다.


 

시간영어표현_엔구화상영어1.jpg

 

 

사뮤엘과 미란다의 이야기는 그 특성상 독자들에게 다소 진부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작가가 발견한 사랑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은 놀라웠다. 우리는 늘 현재를 직시하라고 이야기하면서 과거나 미래를 본다. 현재를 직시한다고 믿는 사람조차도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산다. 피드백과 비전, 두 단어로 쌓아 올린 현대 자본주의 첨탑 아래에서 우리의 시간은 늘 앞에 있거나, 뒤에 있다.


사실 우리가 현재라고 믿는 그 순간조차도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심리적 현상, 심지어 시간을 초월하여 나를 뒤흔들고 통합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순식간에 사고를 가속시키고, 느리게도 만드는 그 기묘한 사건 말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새미는 태어나기 전부터 미란다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로맨틱한 서술 속에서 독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사랑하고 잃었으며 어쩌면 다시 찾을 수도 있는 한 사람을 상기시킬 수 있겠다.

 

그래서 새뮤얼이 그의 아내와 이별하고, 엘리오가 미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전 사랑의 기억은 다음 사랑을 풍족하게 만들고, 시간을 초월해서 다시 한번 사랑스러운 얼굴을 내민다. 시간의 흐름은 삶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고, 성별이나 나이가 사랑을 막는 가림막이 되지 않는다. 새뮤얼은 삶의 시간을 닫아놓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올리버는 시간을 닫아놓은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엘리오를 잊지 못하고 , 20년의 삶을 낭비라고 주창한다. 올리버의 입장에서 엘리오와 보낸 여름 이후로는 하등 가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필자에게 꽤 충격이었다. 사랑이라는 개념 속에서 시간은 열려있고, 또 유동적인 것인데도 그는 그 스스로 닫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엔딩이 조금 의아하다. 왜 굳이 엘리오와 올리버의 재회로 마무리해야 했을까? 책의 '파인드 미'라는 이름의 제목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라는 한여름의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유명세를 타 출간한 책이기에 마무리로 두 사람의 사랑으로 엔딩을 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둘은 재회하지 않아도 영원한 시간 속에서 기억되며, 올리버도 20년간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했던 기억은 다른 사랑에 활기를 주고 색깔을 입힌다. 사랑은 시간을 초월하고, 결코 책에서 이야기하는 '당신'은 '엘리오' 혹은 '올리버'가 아니기 때문이다. 벽난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년은 '영원한 사랑의 대상'의 상실이 아닌, 너무 아름다운 첫사랑의 애도가 필요했을 뿐이다. 책에서 말하는 사랑의 철학은 아름답고, 두 사람의 재회는 아름답지만, 이별을 몰래 기원하는 필자의 나쁜 마음을 페이지 끝에 접어본다.

 


표지1.jpg

 

 

도서 정보

 

제목: 파인드 미 (원제: FIND ME)

부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편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정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12월 16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300쪽

정가: 13,800원

ISBN: 979-11-90234-02-3 03840

 

 

[손진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