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이 마침 그때 거기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도서]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글 입력 2020.01.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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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마침 그때 거기에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모든 사랑의 만남은 떠내려옴과 건짐의 오래된 신화라고. 누군가가 바구니에 실려 떠내려오고 강가에 머물던 다른 누군가가 마침 그때 그 바구니를 건진다. 당신은 떠내려오는 나를 건져 올리고, 떠내려오는 나는 거기에 있는 당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우연의 순간을 기준으로 삶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게 된다. 당신을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로. 그 구분선이 만들어진다는 건 삶이 주는 선물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엘리오와 올리버의 만남도 “마침 그때 거기에라는 오래된 우연의 신화”[1]처럼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성인이 된 엘리오가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불현듯 무심하고 퉁명스럽게 “나중에!”라고 말했던 올리버의 한 마디, 목소리, 태도를 떠올린다. 눈을 감고 따라 말하는 순간 기억 저편에 자리한 1983년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지중해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그해 여름,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서 지루한 계절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물넷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머물게 되면서 모든 순간이 특별해진다.

 

그러니까 때마침 올리버가 바구니에 실려 떠내려왔고, 강가에 머물던 엘리오가 '마침 그때 거기에서' 바구니를 건진 것이었다. 아니면 해변이나 테니스장에서, 혹은 그가 도착한 날 우연히 폐철로를 향해 함께 걸었을 때 시작된 걸까. 그렇게 사랑은 떠내려옴과 건짐의 오래된 신화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다. 첫눈에 반한 두 청년은 6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를 만나기 전의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엘리오의 처음이자 올리버의 전부가 된 그해는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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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의 차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건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늦게나마 필자는 소설을 먼저 읽은 뒤 영화를 보았는데 이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소설에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싱그러운 복숭아와 살구의 이미지, 사이프러스 나무를 가로지르며 자전거를 타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는 점은 인상적이다.


일련의 서사를 접하면서 머릿속 도화지를 상상이라는 스케치로 가득 채워 나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영화를 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훨씬 더 공감각적으로 풍부하게 다가왔다. 영화 또한 소설 못지않게 한여름의 따스한 영상미가 돋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제작 의도가 관객을 햇살에 취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들의 사랑을 "가득한 햇살로 그 여린 날들을 축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설은 영화 스크린 타임의 한계상 미처 보여주지 못한, 형용할 수 없는 인물의 감정이나 내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15년, 20년 후의 이야기까지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편 작품 속 사랑은 두 가지 양상으로 그려진다. 하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르치아와의 사랑, 다른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올리버와의 사랑이다. 마르치아의 사랑은 여느 로맨스 소설에 등장할 법한 달콤한 사랑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기 남녀의 사랑을 보여주지만, 올리버와의 사랑은 첫 만남부터 섹슈얼한 긴장감이 맴도는, 못다 이룬 첫사랑의 상흔과 아픔을 보여준다.

 

소설은 후자에 중점을 둔 채 엘리오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는 엘리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시선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면 영화는 3인칭 시점에서 엘리오와 올리버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 툭툭 끊어지는 점프컷, 흐릿한 초점, 오래된 필름 자국이 지나가는 장면 등을 통해 누군가가 회상하는 기억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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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엘리오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올리버에 대한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올리버는 이를 눈치채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날것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엘리오는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올리버에게 고백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남모르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당신이 알았으면 해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당신 말고는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 안드레 애치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잔 출판사, 2019, 95쪽. 

 

 

마르셀 프루스트는 『기쁨의 나날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의 기쁨은 그 사람의 발견만이 아니다. 그건 내 안에 들어 있던 나도 몰랐던 나들의 발견이다. 세상에, 내 안에 이런 비밀스러운 부드러움이 있었다니, 이런 다정함, 이런 친절함, 이런 예민함, 이런 애착과 기쁨이 있었다니······."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발견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통과해 온 그 사람의 지난 모습까지 남김없이 알고 싶은 마음, 서로를 알아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도 눈에 담아내려는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엘리오는 "그동안 난 어디에 있었던 거지? 올리버, 내가 어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이게 없는 삶은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이기도 했다."(p.172)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리버에게도 말했다. "펄럭이 셔츠도 가질래요. 에스파듀도. 선글라스도. 그리고 당신도요."(p.211)라고.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소한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을 아는 것, 그 사람의 물건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의 속삭임으로 말 대신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 안드레 애치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잔 출판사, 2019, 173쪽.

 

 

당신이 이름을 불러주기에 내가 존재하고,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에 당신이 존재하듯이. 엘리오는 올리버가 되고 올리버는 엘리오가 된다. 김혜리 평론가가 "온 우주가 합심해 사랑을 가르쳐준 그해 여름"이라고 말했듯이 햇살이 축복하고, 온 우주가 합심했던 사랑의 여름이 그들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후 엘리오는 그해 여름, 이름을 가져간 사랑을 추억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넘어, 내 안에 살아있는 그 사람과 살아가는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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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주어지는 삶 그리고 사람


 

여름이 끝나갈 무렵, 올리버는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 사흘 동안 두 사람은 로마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낸다. 흐릿한 새벽에 반쯤 취한 채로 레몬소다를 마시고, 사랑하는 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로마의 반짝이는 자갈길을 걷고 또 걷는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의 키스, 움푹움푹 팬 자갈길을 축축한 공기 속에서 걷는 지금, 그리고 너무 많은 것, 모든 것을 본 텅 빈 도시가 우리만의 것이라 생각할 만큼의 충만함까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윽고 사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엘리오는 별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아버지는 "자연은 교활하게도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낸다"(p.283)라며 엘리오에게 말한다.

 

 

“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건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찍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 안드레 애치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잔 출판사, 2019, 284쪽.

 

 

이후 엘리오는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고, 15년 만에 올리버의 대학 강의실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이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의 삶은 현실과 동떨어진, 강 건너의 다른 세계였다. 그곳에서 서로는 다른 곳을 바라 보았고,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확인되었을 뿐." 엘리오는 말했다.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p.309)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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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숨죽여 울었던 날, 난생 처음으로 어딘지 무척 소중한 곳에 도착한 느낌,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원히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신경과 말단과 감정이 멍들고 짓밟히고 으스러졌던 기분. 이 모든 것은 올리버가 그해 여름에 온 이후로 시작되었다. 여름마다 접해서 익숙해진 냄새와 소리들이 갑자기 엘리오에게 달려들었고, 그 여름의 사건들도 영원히 다른 색깔을 띠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단 한 번의 첫사랑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해 여름이라는 걸 알기에.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질릴 때까지 사랑하고, 미워하고, 감정에 충실하다가 언젠가는 이름을 부를 수조차 없는 사이가 될 것을 알기에. 한 철 피었다 지는 꽃처럼 미성숙하고 아픈 사랑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존재라는 사실이자 증거이기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 한번 서로의 이름을 불러본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올리버.”

 

 

참고자료

[1] 김진영, 『이별의 푸가』, 한겨레출판, 2019, 15쪽.

[2] 안드레 애치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잔 출판사, 2019, 10-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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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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