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기다림은 누군가를 살아 있게 하므로 [시각예술]

이주요의 Love Your Depot
글 입력 2020.01.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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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올해의 작가상》은 기존 규범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미술관이라는 느슨한 토론장에 거침없이 비판을 제기하는, 다소 신랄한 메시지가 많이 보였다. 홍영인은 인간의 소통방식의 동등성에 의문을 표하며 새의 소통방식을 찾아 나섰고 박혜수는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집단 개념의 폭력성을 지적했으며 김아영은 세계를 내·외부로 가르는 폭력적인 경계선을 이주를 소재로 한 픽션 작업을 통해 단호하게 드러냈다. 직접적으로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현실을 외면 없이 들춰내어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불쾌감을 의식화하는 데 집중한 듯한 전시에서는 시종 비판과 비관의 중첩에서 오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느껴졌다.


이주요의 작업은 다른 결을 하고 있었다.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의 흐름에 동승하면서도 낙천성을 놓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이 제도의 바깥에서 안을 바라보며 규범의 모순을 통렬하게 밝히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이주요는 제도의 안에서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바꿔나가는 방식을 취하며 대안적 형태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하였다.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업물인 《Love your depot》는 전시를 소개하는 섹션의 제목처럼 ‘유예와 지속, 그리고 창작을 위한 어떤 곳’이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시작으로 향후 3년 동안 작가가 실제로 구현할 이 창고 시스템은 제도로부터 거처를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 작품의 전 생애를 지원한다는 목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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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창고와 랩(lab), 콘텐츠 연구소 ‘팀 디포’로 이루어진 이 공간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보관하면서 동시에 작품에 대한 연구 및 해석과 관련 콘텐츠 제작, 온·오프라인을 통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단지 작품을 보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차적 창작 과정을 유도함으로써 예술의 소멸을 유예시키고 무한한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창조적 공간인 셈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강하게 받는 전시라는 매체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향유될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게 된다.


작품명에 있는 ‘Depot’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보관소나 창고라는 뜻이지만 더불어 공항, 정류소, 정거장 등의 뜻을 가지기도 한다. 공항은 권위적인 장소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개인의 무한한 자아를 함부로 분류하고 재단하며 검열한다. 국경뿐 아니라 어떤 경계를 지나는 이들에게라면 응당 그래도 된다는 듯이 배제와 소외가 저질러진다. 2010년 이태원의 집에서 시작된 작가의 전시 ‘나이트 스튜디오’가 여러 국경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서도 그러한 일은 수없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공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방식대로 공간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새로운 맥락에서 전복을 성취했다. 그리하여 공항은 판단이 아닌 유예의 장소, 검열이 아닌 해석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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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유예와 해석의 장은 불완전하고 모호한 현실에서 분리될 수 없으나 결코 무책임하지도 않다. 그가 어느 날 집 벽면에 적었던 ‘2년 살 겁니다’라는 작은 목소리의 다짐처럼 그는 자신에게 약속한 시간만큼은 반드시 살아보려고 한다. 사실 이는 주택 계약을 맺을 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건넬 법한 매우 제도적인 발화이기도 하다. 제도를 전복시키는 데 제도의 내부를 활용하고 조정하는 그의 흥미로운 접근법은 여기서도 발현된다.


이주요는 제도에 대한 약속을 뒤집어 자신에 대한 약속으로 치환하고, 더 나아가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약속으로 확장한다. 그렇게 《Love Your Depot》가 탄생하였다. 소멸에 맞서기 위한 대안으로 영원이 아닌 유예를 택한 그는 사라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존재라면 누구나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책임질 수 있는 시간만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한다. 공간을 둘러싼 외부는 그렇지 않으나 공간의 내부는 그럼에도 잃지 않은 희망으로 인해 강인해진다.

 

큐레이터 찰스 에셔는 그의 작업이 전시 공간에 들어맞지 않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어느 한 장소의 배제가 아닌 두 공간의 화해를 불러온다고 해석한다. 전시 공간 중 창고에 빼곡하게 혹은 불규칙적으로 자리한 작품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정갈하지 않은 ‘어색한 배치’로 서로 얼기설기 모여 있다. 그들의 관계는 명쾌하지 못하므로 도리어 풍부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규정되지 않았으므로 누구에게나 가닿는다. 큐레이터 김장언은 공항이 분류와 검열을 통해 인간을 걸러내는 ‘멸균의 장소’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얼룩이 묻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공항은 가상적 공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룩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이 무늬가 되기까지 마땅히 기다리는 이주요의 공항은 작가의 촘촘한 상상과 견고한 인내 속에서 현실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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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요의 작업은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의 감시로 인해 환영(phantom) 그 자체가 되어버린 세계에 동아줄과도 같은 일말의 희망을 본다. 하이데거가 예언했듯이 지금의 기술 사회는 ‘강요된 탈은폐’를 통해 폭력적으로 들춰지고 또 드러나게 하며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고 무엇이든 곧바로 보여주기를 요구한다.


천연덕스럽게 자행되는 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환영에 익숙해지거나 자기 자신을 환영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는 ‘조작’이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SNS 계정으로 정체성을 대신한다. 미디어가 잠식한 사회에서 진실이란 소망하기조차 사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주요는 오히려 미디어에서 희망을 찾는다. 어차피 환영이 만들어질 것이라면, 어차피 들춰지고 드러날 것이라면 그것을 유예와 지속이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데 역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주요의 공간에서 기꺼이 구현된다. 이를테면, SNS로 퍼져나가는 작품들의 정보나 관련 콘텐츠들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환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떻게든 작품의 소멸을 유예한다.


환영이 날아올라 이곳 저곳을 유영하다 보면 어딘가에 있는 진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과 함께 말이다. 환영을 이용했지만 이를 통해 작품은 작가와 관객과 더불어 호흡하며 꿈꾸고 생을 이어갈 수 있는 실존적 유기체가 된다. 놀라운 전복적 접근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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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낙관이 멸균을 실행하며 휩쓸고 간 자리에 낙관은 그 자체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조건적인 낙관, 즉 존재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기다린다는 조건 하에서 가능해지는 어떤 목표를 향한 기대를 품는다. 기대라는 것은 어떤 시간만큼은 존재를 꼭 기억하겠노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존재하기도, 기억되기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불안정한 환영의 세계에서 그가 초연히 만들어낼 새로운 세상을 기대한다.

 

 

참고자료 : 김선정 外 5인, 『나이트 스튜디오』, 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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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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