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콜바넴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와 책

한 번 우린 우롱차와 그 촘촘한 찻잎
글 입력 2020.01.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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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년 전,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이름을 올렸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 안드레 에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출판사 잔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몇 년 전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던 관객 중 한 명으로서, 책과 영화의 분위기를 비교해가며 읽었다.

 

책의 특징은 먼저, 빨강 주황 초록색의 그라데이션으로 이탈리아의 여름 B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생생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표지를 한 장 벗기면 나타나는 책의 또 다른 표지도, 원작 소설의 나라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책들은 하드커버와 같은 권위 있는 외양을 선호한다는데, 출판사 잔이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책의 주인공인 독서광 엘리오가 들고 다닐 법한 간단하고 가벼운 모양이라 좋았다.

 

책을 비평하기 보다는, 흥미로웠던 지점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여러 명을 원작 소설로 인도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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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사랑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어딨을까. 책을 사랑하든지, 영화를 사랑하든지, 사람을 사랑하든지. 애정이든, 관심이든, 우정이든, 성애이든. 의미의 폭이 좁아보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많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는다. 가장 최근 읽었던 사랑에 관한 작품은 젊은작가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라는 박상영 작가의 소설이었다. 우연치 않게도 그 다음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엘리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올리버에게 빠져든 그 순간부터 시선이 가는 대로, 감정이 가는 대로 이끌린다. A라는 사건에서 B라는 사건으로 이어지는데에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나요? 그 감정은 이래요’라는 엘리오의 포효에서 ‘심지어는 이렇기도 해요’라는 심층의 포효로의 이행만이 전부다.


그래서 독자들은 ‘엘리오가 올리버를 이만큼 사랑했구나, 벌써 이만큼이구나’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그 묘사들이 아주 뜨겁고 풋풋하고 파괴적이라 아찔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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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통증, 감정의 부추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분감, 손끝 너머에 있을 게 분명한 커다란 행복, 속마음을 잘못 읽을 도 있고 잃고 싶지 않으면 항상 예측이 필요한 사람들 주위에서 보이는 내 서투른 행동, 내가 원하고 또 간절히 나를 원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쓰는 절박한 간계, 세상과 나 사이에 자리하는 듯한 몇 겹의 얇은 미닫이문 같은 장막, 애초에 암호화되지도 않은 것을 변환하고 또 해독하려는 충동...... 이 모든 것이 올리버가 우리집에 온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것들은 그해 여름에 유행한 곡과 그가 머무는 동안 그리고 떠난 후에 읽은 책들, 뜨거운 날의 로즈메리 냄새부터 오후의 요란한 매미 소리까지 모든 것에 새겨졌다. 여름마다 접해서 익숙해진 냄새와 소리들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 여름의 사건들로 영원히 다른 색조를 띠게 되었다."


책의 엘리오는 대단한 사랑꾼이다. 젊은 시절 이렇게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겪는 엘리오의 모습이 행운아처럼도, 너무 열렬해 괴로워도 보인다. 독자들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말그대로 ‘열병’같이 뜨겁고 아픈, 치명적일 정도로 흥분되는 사랑을 바라본다.


 

 

2.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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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보았던 관객이 호기심에 책을 들게 된다면, 놀라게 될 것은 엘리오의 감정 묘사가 앞서 언급한 부분과 같이 아주 세밀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예술이나 예술가는, 그 사람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들과 그런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엘리오의 사랑은 이 기준에 잘 맞는다.


누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난 후 그 상황을 ‘몸을 굽혀 이틀 전 당신이 내 영혼에 나이테를 더했다는 말도 하지 않을거에요’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보였던 그 동안의 무관심이 사실은 그런 척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말하지 않는 척 하지만 서로의 사이에 낀 서리가 가짜라는 것을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표현을 올리버에게 빠진 엘리오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영화를 회상해보자면, 그것은 이탈리아의 여름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할만큼 말이 적었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있었다. 그렇게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영화 속에선 풍경화 같은 모습이었다면, 바탕이 된 책은 그것보다는 훨씬 말이 많고 더 촘촘하고, 빈 공간이 적다. 둘 사이의, 서리가 낀 그 침묵은 엘리오의 시선 속에서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속마음과 점점 깊어가서 나중에는 감당이 불가한 정도의 긴장감으로 고백과 절규와 사랑으로 가득차버렸다.


영화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책을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영화는 활자로 이루어진 엘리오의 속마음에서 나타난 표면의 상황들만을 카메라의 시간으로 가져오기로 한 것이다. 한 번 우린 우롱차는, 그 잎이 너무 촘촘해서 그 자체로 맛이 좋았나보다.


 

 

3. 결국 : 책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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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책과 영화를 읽고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아직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종이 위에 활자를 새기는 방식의 이야기 전달 방식도 화려한 이미지와 소리들이 이어가는 동영상의 시대에서도 강력한 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영화와 책으로 본 뒤에 느낀 것은 영화의 이미지성과 책의 촘촘함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 감독과 책을 감독하는 작가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책은 밀도의 미학을 영화는 이미지의 미학과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담당하고, 그것에 탁월하다.


이 탁월점이 존재한다면, 계속 유의미하다면 책은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올리버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엘리오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테고 엘리오는 올리버의 앞에서 책을 읽는 척을 하며 마음을 숨길 수 있을 테니까.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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