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름에게, call me by your name,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도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연인을 부른다.
글 입력 2020.01.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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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어느 해변가에 사는 엘리오, 매해 여름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원고 편집을 돕는 손님이다. 손님이 올 때마다 엘리오는 자신의 방을 내주며 마을을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가족과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한다. 매해 있는 연례행사 같은 손님이지만, 이번에 도착한 여름 손님 올리버는 그 이상으로 엘리오 눈에 들어왔다.

 

*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로 먼저 접했다. 이름을 들어보고 인생 영화라는 소리가 워낙 많아서 기대했던 영화다.


아름다운 휴양지와 잔잔한 배경음악, 배우 연기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다만 나는 이미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그래픽, 자극적인 전개에 길들여있어 다소 심심했다. 그래서인지 잠시 다른 일 때문에 감상을 그만둔 이후로 다시 이어보지 않았다.


웬 우연일까? 영화를 다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던 내 앞에 원작 소설이 등장했다. 원작은 영화와 다른 느낌일지 궁금했다. 게 중에서도 물감이 번지는 듯한 그라데이션 표지가 내가 생각했던 콜미바이유어네임의 분위기에 부합하다고 생각했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이 살아있다면 내 인생 작품 반열에 넣어놓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할 만큼 공교롭다.

 



소설,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먼저 보다 보니, 소설 속 엘리오와 올리버의 외향은 영화의 것으로 상정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영화의 장소와 음악 등의 분위기가 책 속 세계관으로 그대로 옮겨갔다. 영화를 다 보지 못했던 게 오히려 운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맺어지기 전에 최상의 환경을 구비해놓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과는 달리 소설에서는 엘리오의 내면을 좀 더 진득이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소년의 풋풋한 짝사랑으로 시작하는 것만 같았는데, 소설에서는 엘리오의 감정과 성적 묘사가 적나라했다.


영화에서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인물의 감정 동요로 독자들을 간질거리게 만들었다면 소설에서는 감정 소용돌이가 계속해서 내게 빗발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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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폭풍 속에 휘말려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필자는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마음을 직선으로 내다 꽂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행동과 대사 위주로 감상했기에, 눈치를 보며 관심을 표하는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소설 속 엘리오는 세상에 올리버 하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올리버만 생각하고 안달 내고 끙끙거린다.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고 싶어 낑낑거린다. 작 중에서도 엘리오 주변 인물들은 눈치챌 정도다. 대형견이 상처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고양이 흉내를 내는 것만 같다.


감정이 범람하고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나는 이미 휩쓸려서 엘리오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육지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조각배를 응원하다가 어느새 같은 합류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당연히 엘리오에게 무심한 올리버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얄밉고 원망스러운 감정마저 내게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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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옮겨와서 그런가 중반까지, 올리버가 무척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도 눈치챌 정도인데, 똑똑하고 기민한 올리버는 당사자니까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보이다가 말다가, 이랬다저랬다 무시하고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 것처럼 비쳤다.


왜 저렇게 의연하고 묵묵하게 대처할까? 간을 보나? 마음이 없는 것 같지 않은데, 볼수록 얄밉다. 주인공, 엘리오. 엘리오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건가? 아직 내가 순수와 동심을 지녀서 올리버 입장을 응원하게 되는 걸까? 이 정도로 소설은, 묘사가 탁월해서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순식간에 독자에게 옮겨놓는다.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입장을 헤아려가면서 읽는 것도 리딩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이름에게



우리가 이미 중독돼버린 해피엔딩이 아니다. 소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 각자의 세상에서 서로는 가장 큰 존재였다.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세상이 점점 커지지만 서로는 그대로였다. 커지는 세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은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해지는 엘리오와 올리버 둘의 대처와 대화 하나하나가 명장면이었다.


올리버와 엘리오의 그것은 사랑으로 한정 짓기 아쉬웠다. 수줍은 그것은 특별한 우정 같기도 했으며 운명 같기도 했고 격렬하기도 했다. 그 해 여름,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장악했다는 점에서 8주는 너무 짧았다. 그러나 8주의 감정 교류가 그들에게는 그때나 이후나 무척이나도 컸다. 단순히 연애와 사랑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감정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절정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행위는 영원히 이렇게 지속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직감했던 것에서 파생됐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엘리오 입장에서는 말이다. 헤어짐을 직감해서 이별을 미리 걱정하기 보다 감정에 충실하면서 서로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길 원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건 자신을 잊지 않길 바라면서 상대의 세계에서 내가 그리 큰 존재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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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미바이유어네임.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연인을 부른다.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고, 그의 셔츠와 수영복을 입고 그가 쓰던 침대에 알몸으로 눕던 것이나 그의 정액이 묻은 복숭아를 먹은 것이나 또 자신-자신의 정액이 묻은 복숭아-을 먹는 올리버를 보는 엘리오가 충만한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나. 나를 잊지 말아요. 기억해줘요.

시간이 흐른 후, 엘리오는 올리버를 불러본다. "엘리오". 그러나 올리버는 자신은 올리버라면서 잊어버린다. "올리버야."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재회했을 때, 엘리오의 엽서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잊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당시의 올리버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기에, 엘리오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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