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 마이 그랜파 (Dirty Grandpa). De Oppresso Liber. 나의 삶을 사는 것. [영화]

글 입력 2020.01.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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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 B급 영화다. 연출, 소재, 촬영기법 따위에 감명을 받을 작품은 아니었고 그럴 생각으로 본 것도 아니다. 세일이라 샀더니 내 취향에 딱 맞아서 뜻하지 않게 그것만 먹게 되는 경우. 별 기대도 안 했는데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는 그런 어이없으면서도 왠지 그 날 하루가 보람차게 느껴지는 그런 날들. 영화가 끝난 후에 내 기분이 그랬다. 겨우 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 할 줄은 몰랐고 그래서 더 좋다고 느낄 줄은 더더욱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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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특별한 점은 없는 이야기였다. 특수부대에서 복무했던 딕은 손자인 제이슨의 아버지, 즉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 해준 게 한이 되어 그때의 미련을 손자에게나마 풀기 위해 제이슨과 함께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녀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아버지가 정해준 인생을 살던 제이슨은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외로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따라가지만 첫날부터 일이 꼬인다. 살면서 할아버지가 자위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자기 친할아버지가.

 

영화는 사소한 잡음으로 시작한 여행의 첫걸음부터 다사다난의 연속을 보여준다. 대학 동창을 만나고, 할아버지와 클럽에서 동창의 친구와 미팅을 하고, 약에 취하기도 하고, 결혼식을 파투 내고, 할아버지와 대학 동창의 친구가 결혼을 하고, 그리고 끝에 제이슨은 아버지에게만 의존하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대학 동창과 함께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여행을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참으로 정신없는 영화다.

 

*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외설적이지만 난잡하지 않은 소위 말하는 ‘섹드립’이 난무했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할아버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그 입담은 어찌 보면 인생의 지혜가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솔직하고 당당하게 뱉어내는 딕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유머와 지혜가 매력적이었을 뿐이다. 젊은 나이에도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남에게 휘둘리면서 억눌려 있는 사람들도 많기에, 나는 딕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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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라는 대상은 이상하리만큼 민감한 존재다. 이 녀석이 화두로 등장하기만 하면 열띤 토론을 넘어 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조심히 다뤄야 할 섬세한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금기처럼 숨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죄악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내 사고와는 다른 것 같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말이다.

 

어느 누가 그 어떤 사람과 어떤 이유로 관계를 가지건 그건 그 사람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그 사람이 단지 그 순간에 매력적이었든, 사랑에 빠져서든 간에 제삼자가 사회의 통념을 들먹이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할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보편적인 가치관을 절대적 가치관으로 착각하면서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공유하는 기준이 맞춰 그 입맛대로 낙인을 찍기 바쁘다. 불법이나 한쪽의 일방적 강요만 아니라면 그 어떤 낙인이나 비난도 받을 이유가 없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그 누구나 언제든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성적 욕구가 끓어오를 때도 있다. 동물로서의 본능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 탓이다. 이런 본능에 대해서 사회는 가식을 강요한다. 모두가 느끼고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이자, 그 순간의 상대에게서 느끼는 매력에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감탄과 존중임에도 허물없이 드러내는 것을 죄악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나의 불만스러웠나 보다. 호쾌한 한 마디에 청량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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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제이슨의 할머니는 상당히 엉뚱한 사람이었나 보다. 집에서 마리화나를 키우고 항문성교를 시도하기도 하는 모습은 누군가는 엉뚱함을 넘어 몰상식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모습이다. 나에게는 그저 자유롭게 서로 행복하고 재밌는 인생을 살았던 부부의 회고록일 뿐이다. 이미 너무 나이 들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료하게 마지막을 기다리는 삶보다는 마지막까지 인생의 재미를 찾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이 나는 부러웠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필요한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게 두려워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는 시간을 살아왔고 나는 아직 그 시간에 묶여있다. 딕의 말처럼 이제는 잃을 것이 없기에 노년에 접어들어서야 더 용감하고 더 대담하게 새로움을 찾아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아직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지금이 더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기회비용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딕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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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은 마지막에 특수부대 시절이 사용하던 칼을 제이슨에게 건네주며 칼과 등의 문신에 적혀있던 문구 ‘De Oppresoo Libero’의 뜻이억압으로부터의 자유임을 알려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저 가볍고 재밌게만 보고 넘겼던 모든 장면과 대사가 이 한 문장으로 인해 깊고도 진한 맛을 품어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러가지의 자유와 억압을 떠올렸기에, 내가 나에게 얹어 놓았던 억압과 그 억압에서 벗어나 누리고 싶었던 자유를 떠올린 탓이다.

 

*

 

이제는 생각 없이 행동하면 안 될 나이다.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나이다. 좋아하는 것만 쫓는 건 철없는 시절에나 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서 나에게로 주어진 나에 의한 나의 억압이자 여전히 남아있는 나를 얽매는 족쇄다. 내 남은 인생은 길고 나는 젊기에 아직은 고민하고 도전해도 될 나이라는 것을 알고 주변의 어른들도 그리 말을 해 줄 때가 많음에도 나는 그 두려움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키웠고 이성적 계산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습관이 들어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제이슨보다 딕에게 더 끌리고 그의 인생이 보다 참된 인생이라고 느끼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인지도, 나와 비슷한 모습에서 나오는 동족 혐오 인지도,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외침 인지도 모르겠다. 무엇하나 알 수가 없는 나는 억압받고 있는지 이제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고민이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는지는 그 본인 외에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어디에서 오는 억압에 맞서 싸우는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본인만이 알 수 있다. 내가 딕으로 살아갈지 제이슨으로 살아갈지도 나에게 달려있다. 내 억압을 잘라낼 나이프를 줄 누군가를 만날지 아니면 나 스스로 만들어낼지도 나만이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억압에 눌린 삶이 아닌 자유를 얻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계산적인 삶이건 이상만을 쫓는 삶이건 그 중간의 삶이건 간에 그것은 반드시 자신만의 자유여야만 한다. 억압을 이겨낼 나이프를 찾아내어 나의 억압을 끊어내고 훗날의 나는 제이슨에게의 딕이 되어 나의 제이슨에게 그 나이프를 건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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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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