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첫사랑을 경험하는 방식,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글 입력 2020.01.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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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 해, 여름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의 리마스터판이다. 후속작 <파인드 미>와 이어지는 파스텔톤 표지가 아름답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07년 람다 게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가 주연한 영화 역시 각색상, 작품상 등 많은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열 일곱 살 소년 엘리오는 교수인 아버지 집에 찾아온 손님 올리버를 만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그와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의 마스터피스'라는 찬사답게 소설은 소년이 첫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고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올리버와의 사랑 말고도 엘리오가 열 일곱 살을 지나가면서 겪는 감정의 격동이 인상 깊다.

 


오늘, 통증, 감정의 부추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분감, 손끝 너머에 있을 게 분명한 커다란 행복, 속마음을 잘못 읽을 수도 있고 잃고 싶지 않으며 항상 예측이 필요한 사람들 주위에서 보이는 내 서투른 행동, 내가 원하고 또 간절히 나를 원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쓰는 절박한 간계, 세상과 나 사이에 자리하는 듯한 몇 겹의 얇은 미닫이문 같은 장막, 애초에 암호화되지도 않은 것을 변화하고 또 해독하려는 충동....


- p18


 

서술자는 엘리오이기 때문에, 사랑에 들뜨고 실망하는 엘리오의 내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답답함,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 시시때때로 널뛰듯 변하는 감정, 자기 자신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생각 등 엘리오의 미숙함은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게 된다. 올리버의 말버릇 '나중에!'를 회상하는 엘리오는 자신의 사랑에 이유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온몸 바쳐서하는 첫사랑에는 대개 이유가 없다.


자신도 모르는 갈망과 결핍감이 있을 때, 사람은 사랑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럴 때는 머리를 쓸어올리는 버릇이나, 사소한 말버릇 때문에 평생 못 잊을 사랑을 하기도 한다. 숭배에 가깝게 푹 빠지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다는, 그라는 존재 자체가 나의 전부가 된다. '사랑 아니면 죽음뿐이에요' 식의 극단적인 엘리오의 사랑은 강렬하고 애틋하다.

 

첫사랑을 다룬 작품은 꽤 많지만, 이 작품만의 특징은 엘리오가 올리버를 향한 성적 욕망에 솔직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서로 알몸이 되어 쾌락을 함께하는 것이다. 수줍음의 내면에는 잡아먹을 듯 올리버를 원하는 엘리오가 있다. 이런 다양한 성적 묘사는 소설에 자주, 중요하게 등장한다.


내면 독백과 묘사가 주를 이루는 서술에서 둘 사이를 이어주는 건 성적인 행동과 묘한 긴장감이다. 남녀 사이의 첫사랑 서사에서는 보기 힘든 이 솔직함이 신선하다. 첫사랑은 수줍음과 망설임의 시간만이 아니라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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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을 함께 보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집, 한 여름의 풍경 등 영화의 영상미가 좋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책의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엘리오의 내면 독백이 없어지면서 원작에서도 약했던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마르시아와 키아라 등 여성 인물은 소모적 도구로 쓰일 뿐인데, 영화에서 과도한 노출신과 부족한 분량으로 그 빈곤한 캐릭터성만 남았다. 원작에서 올리버가 꾸준히 왕래하며 직접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한 것과 달리 전화로 소식을 전한 것이 아쉬웠다. 책에서 첫사랑의 순간을 간직한 채 점차 나이 들어가는 엘리오와 올리버가 깊은 여운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1983년 이탈리아에서 끝을 맺지만, 책은 빠져 죽어도 좋았던 사랑이 마음에 어떤 빛과 그늘을 남기는지 말하고 있다. 엘리오의 성장과 사랑으로 채울 수 없는 고독감 역시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것이다.


 

올리버 말고 다른 사람이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의아했다. (..) 전혀 바뀌지 않거나 지금의 내가 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 다른 삶이 더 행복한지, 혹은 다른 나의 삶과 지금 나의 삶이 올리버로 인해 얼마나 멀어졌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언젠가 짧게 다른 나의 삶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까? 그는 내가 마음에 들까?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할까? 우리 둘 다 사실은 남자건 여자건 이런저런 유형의 올리버를 만났고, 그 여름 우리 집에 누가 왔건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랄까?


- p290


 

'Amr ch'a null'amato amar perdona,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단테의 상당히 낭만적인 이 말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아름다운 비현실성을 보여준다. 사랑은 보통 베푼 만큼 대가를 돌려받지 못한다. 마르시아를 생각해보라. 엘리오의 사랑에 이용당하는 역할인 그녀에게 단테의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일,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는 일, 깔끔하고 아름답게 인연이 끝나고, 그 경험을 내 자양분으로 삼는 일에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넓고 고풍스러운 집과 3개 국어를 하는 가족, 집안 가득한 책과 피아노,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나, 내 진심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모님, 친절한 가정부, 평화로운 시골 마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는 그만한 조명이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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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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